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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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낙조의 잔해는 멀리 지평선  끝자락에서 머뭇거렸다. 후덥지근한 대서부 거친 황무지의  바람을 타고 하루를 다하는 저녁놀 사이로 짤랑짤랑 희미한 종소리가 들리는가 하더니 하나, 둘 점처럼 조그마한 물체가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며 다가왔다. 잠시후 낮게 깔린 어둠 사이로 긴 목에 커다란 방울을 매단 25 마리의 낙타가 그 괴이한 모습을 산 안토니오의 황야에 드러냈다. 1857년 6월19일  캠프 버어디 요새의 낙타우리에서 선발된 건강한 낙타는 이제 신대륙  미국의  대서부를 가로지르는  마차 길을 개척하기 위해 오늘의 아리조나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포어터와 히프가 터어키의 스미르나에서 부지런히 낙타 값을 흥정할 때인 1856년 11월, 미 본토에서는 민주당 후보 제임스 뷰카넌 (James Buchannan) 이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뷰카넌은 다음해 3월 1일 버어지니아 출신의 프로이드 (John B. Floyd)를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신해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신임 프로이드 장관은 전임 행정부에서 마련한 뉴 멕시코 주의 디화이언스(Defiance) 요새 (오늘날에는 아리조나 주에 있다)에서 콜로라도 강의 유마 요새까지 35도 선을 따라 마차 길을 내야만했다. 신임 프로이드 장관은 아무도 발을 디디지 않은 대서부 황야에 마차길을 개척하려면 낙타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중동에서 들여와 캠프 버어디에 있는 낙타를 이 작업에 동원하기로 했다.


증기선으로  군수품을 유마 요새까지  수송

프로이드 장관은 1806년 6월1일 버어지니아의 몽고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버어지니아의 주지사였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프로이드는 알칸사스로 건너가 변호사와 목화재배로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1837년 공황으로 파산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변호사업으로 재기한다. 이어 정계로 뛰어든 프로이드는 주의원을 거쳐 주지사, 대통령 선거인단에 당선된다. 프로이드는 1856년 10월2일 뉴욕에서 열린 뷰카넌 후보의 찬조연설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

국방성은 새로 편입된 대 서부에 정착한 이주민들을 인디안으로부터 보호하기위해 세운 군 요새에 물자를 원활하게 보급하기위해 콜로라도 강에 증기선을 뛰워 증기선 편으로 군수품을 유마 요새까지 운반하기로 했다. 유마에서 하역한 군수품을 마차로 군요새에 운송하기위해 미 의회는 1857년 2월14일 새로운 마차길 개척에 20만 달러의 예산을 승인하고 물러나는 피어스 대통령은 2월17일 이를 미 육군에 이 업무를 집행하도록 했다.  


새로운 마차길 건설에 20만 달러를  책정

1850년 오늘의 아리조나는 뉴 멕시코의 일부로 미 연방영토에 편입되었다. 당시 아리조나 지역의 솔트 강 일대는 뉴 멕시코 주의 소코로 카운티, 그리고 가드스덴 조약으로 미 영토가 된 투산 일대는 도나 아나 카운티에 속해 있었다.

아리조나 같은 미지의 땅에 새로운  도로를 내기위해 1851년 12월 육군 측량기술단의 로렌조 시트그리브스와 그의 20여명의 대원들이 처음으로 측량을 벌였다. 로렌조와 그의 대원들은 35도선을 중심으로  뉴 멕시코의 주니 마을에서 아리조나를 가로 질러 콜로라도 강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유마에 이르렀다. 이 35도선을 중심으로 이후 프래그스태프, 윌리암스와 킹맨이라는 도시가 생겨났다. 

2년 후 아미엘 W. 위플 중위와 조셒 C. 아이베스는 알칸사스에서 LA까지 이어지는 철로를 신설하기위해 36도선 근방에 대한 측량을 실시했다. 1863년 12월 에드워드 뱅커 윌리는 치노 계곡에 위플 중위의 이름을 따서 요새를 세웠다. 이 요새는 프레스커트보다 먼저 아리조나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1854년 텍사스까지 철도를 연장하기 위해 존 G. 파아크와 조오지 스톤맨은 32도선을 중심으로 신설될 철도 노선을 측량했다. 

신임 프로이드 장관은 마차 길에 낙타를 도원하기로하고 이 부대를 지휘할  책임자로 예비역 해군 중위이며 캘리포니아주 인디안 대리인 비어얼 (Edward F. Beale 1822.2.4~1893.4.22)을 임명했다. 비어얼은 해군 재무관인 조오지 비어얼을 아버지로 그리고 해군 준장 딸인 에밀리를 어머니로 1822년 2월4일   와싱턴 D.C에서 태어났다. 조오지 타운 대학 재학중 잭슨 대통령의 배려로 해군사관학교로 편입한 비어얼은 이후 멕시코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다. 비어얼은 이후 서부의 전설적인 산사나이며 길안내인으로 명성이 높던 칼슨(Kit Carson) 의 친구가 되어 함께 서부대륙을 횡단한다. 비어얼은 또한 낙타를 운반할 서플라이 호의 선장을 모집할 때 친척인 포어터 중위에게 추천서를 써줄 만큼 낙타에 대한 지식도 많았다. 이러한 여러가지 이유로 프로이드는 비어얼을 이번 탐험의 지휘자로 선임했다.


탐험에 나설 낙타 스물다섯 마리를 골라

비어얼이 측량 탐험대의 지휘자가 되었다는 소식은 그의 고향인 펜실바니아의 체스터 시까지 퍼져 젊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비어얼은 열광하는 젊은이들 중에서 서플라이 호를 지휘한 포어터 중위의 친척인 의사 제임스 포어터의 아들 햄프턴 포어터, 그리고 포어터 중위의 처남이며 낙타를 구하러 함께 여행했던 그윈 해리스 히프의 아들 포어터 히프, 그리고 메이 험프리 스테이스를 뽑아 탐험을 함께한다. 이들 3명은 모두 19세였다.

이들 3명의 젊은 이들은 고향을 떠나 5월15일 피츠버어그에서 비어얼과 만나 비어얼과 함께 기차와 배를 갈아타고 5월26일 뉴 올리안스에 도착했다. 비어얼은 이곳에서 측량을 위한 탐험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한 후 배에 싣고  6월2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선편으로 인디아노라로 향했다. 4일후 일행은 12대의 마차에 물자를 나누어 싣고 6월6일 너른 황무지가 가없이 펼쳐진 텍사스의 산 안토니오로 출발했다. 무덥고 건조한 남부의 바람이 가득한  대평원을 지나 마차  행렬은 마침 거칠게 흐르는 강물을 지나게 되었다. 마차행렬을 지휘하던 히프는 12대의 마차중 8대가 무사히 강물을 건너자 뒤따르는 마차도 무사히 강물을 건넜으려니 하고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나머지 마차는 그날 저녁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일로  히프는 비어얼로부터 심하게 질책을 받았다.


월급받지못한 낙타 몰이꾼 동행을 거부

6월16일 일행은 산 안토니오에 도착하여 벼룩과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가축우리에 야영장을 마련했다. 그리고 비어얼은 함께 탐험할  낙타를 데리러 서둘러 캠프 버어디로 향했다.

당시 웨인이 떠난 캠프 버어디 요새내의 낙타우리에는 제2차로 뉴 올리안즈에서 수와니 선편으로 41 마리의 낙타가 인디아노라를 거쳐 캠프 버어디에  도착하여 우리 안에는 모두 71마리의 낙타가 있었다. 그러나 웨인이 떠나면서 후임자 파머 대위는 낙타기금을 지행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지 못했다. 파머대위는 몇차례 상부에 이같은 사실을 통보했으나 별다른 지침을 받지못해 낙타몰이꾼들은 몇 달째 월급을 받지못했다.

비어얼은 6월19일 71 마리의 낙타가운데 젊고 건강한 낙타 25 마리를 골라 서둘러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산 안토니오로 향했다. 이제 낙타우리에는 34 마리의 낙타와 새끼 낙타 12 마리 등 모두46마리의 낙타가 남았다. 6월21일 25마리의 낙타가 저녁 어스름을 가르고 짤랑짤랑 방울 소리를 내며 산 안토니오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웨인과 포어터가 고용하여 중동에서 데려온 낙타몰이꾼들은 웨인이 떠나면서 지난해 12월분 월급을 지불한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월급을 받지못했다고 동행을 거부했다. 이들의 동행거부로 우선 낙타에 짐을 싣는 것 부터 문제가 되었다. 일행은 서투르게나마 낙타 25 마리에 각각  572 파운드의 짐을 꾸리고 100여 마리의 말과 노새 마차 12 대를 앞세워 6월25일 출발했다. 그리고 측량요원을 비롯한 44명의 대원도 아무도 발을 딛지 않은 미지의 땅 대서부 아리조나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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