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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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한창인 1888년 8월16일 그간 몰핀중독과 위암으로 투병중이던  펨버튼이 갑자기 사망했다. 투병중에도 실험실에서 셀러리 추출액으로 코카콜라와 유사한 음료를 개발하던 발명은 천재이나 경영은 둔재였던 펨버튼은 자신의 작고 초라한 집에서 57세의 일기로 사연 많은 이승을 하직했다. 그의 부음이 전해지자 애틀란타의 모든 신문은 한결같이 "애틀란타의 저명한 약사이며  발명가 그리고 위대한 시민이었던  펨버튼의  죽음"을 애도했다.


펨버튼, 고향 컬럼부스로 돌아가다

펨버튼의 영결식 당일 애틀란타 약사회 회장인 아사는 애틀란타의 모든 약사들은 약국을 철시하고 펨버튼을 추모하기로했다. 그리고 운구위원을 겸한 아사는 조사를 통해 "오늘 우리는 한 시대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며 신약개발로 일생을 보낸 존경스런 동료를 잃었다" 고 펨버튼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사는 또한 운구중에도 눈물을 계속 흘려가며 일찍 그의 친구가 되지 못했음을 애석해 했다. 펨버튼의 유해는 영결식 다음날 특별히 마련된 열차편으로 그가 젊어서 청운의 꿈을 키워왔던 컬럼부스로 운구되어 린우드 공원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매장식날 장지까지 동행한 아사는 펨버튼의 미망인 앤 엘리자 클리포드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아사는 앤으로부터  코카콜라라는 상표 사용권을 정식으로 허락받았다. 


코카콜라 상표권 미망인으로부터 취득

이후 아사는 앤에게 사례금으로 300 달러를 전했다. 그리고 앤에게 "훌륭한 거처와 노후 생활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아사가 코카콜라의 권리를 정당한 가격에 사지않고 터무니없이 저렴하게 평가하였다며 아사를 사기꾼이라고 괴롭히던 알콜중독자 펨버튼의 아들 챠알리는 6년 후 1894년 6월24일 애틀란타의  '오리올'이라는 레스트랑의 쪽방에서 몰핀과 함께 혼수상태로 발견되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챠알리는 어머니 앤이 지켜보는 가운데  10일 후 사망했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펨버튼의 미망인 앤은 아사의 약속과는 달리 1909년 9월28일 사우스 캘로라이나의 '왈하라'는 작은 도시로 흘러들었다가 빈민촌에서 쓸쓸하게 사망했다.

아사 캔들러가 운영하는 약국은 애틀란타 최고 번화가인 피치트리 거리에 있었다. 아사의 약국이 들어선 이 건물은 전면의 폭이 30피트, 측면 100피트, 높이 20피트의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되어 있었다. 아사는 1층은 매장으로 사용하고 지하실에서는 코카콜라와   B.B.B.를 비롯한 각종 특허약품을 제조했다. 지하실 한편 대형 난로 위에는 규모가 큰 보일러로 연신 코카콜라를 비롯한 각종 약품을 제조했다. 그리고 2층에서는 여인네들이 둘러 앉아 약품을 병에 담고 병에 라벨을 붙이는가 하면 12개씩 묶은 약을 상자에 넣고 포장했다. 이곳에는 줄잡아 1만여 달러어치의 상품이 쌓여있었다.

아사의 연 거래액은 무려 10만 달러로 당시 애틀란타에서는 규모가 가장 컸다. 은행도 아사에게는 4만여  달러의 현찰은 즉석에서 내줄 정도였다. 1890년 당시 아사의 개인자산은 무려 17,326 달러에 달했다.


소매용 코카콜라 일반 가게에서 판매

당시 세일즈맨들은 마차에 약같은 상품을 싣고 북을  치며 온 마을을 돌았다. 이렇게 북을 쳐가며 손님을 모았다. 아사의 코카콜라를 비롯한 상품들은 세일즈맨의  마차에 실려 애틀란타를 비롯한 조오지아, 앨러배머, 미시시피 등 을 거치며 퍼져나갔다. 아사는 또한 코카콜라를 소다판매에만 의존하지 않고 코카콜라 시럽을  병에 담아 25센트에 잡화상의 선반에 올려놓았다. 이같이 코카콜라가 잡화상까지 진출하자 매출은 당장 늘어나 이후 잡화상에서 코카콜라 매출은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했다. 애틀란타를 중심으로 매출이 일어나던 코카콜라는 점차 남부 일원으로 퍼져나갔다. 1890 년 총 매출의 40%가 애틀란타를 중심으로 일어났으나 1891년도에는 그 비중이 27%로  줄어들었다.

두통을 비롯하여 정신불안, 우울증 등에 특효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코카콜라는 단 시간 내에 애틀란타에서 가장 인기있는 청량음료가 되었다. 애틀란타에서 소다 판매대를 운영하는 호웰이라는 상인은 "어느날  코카콜라 세일즈맨이 두통에 직효라고 갈겨쓴 라벨을   붙인 시럽을 들고 찾아왔다. 이후 불면증 등으로 고생하던 환자들이 줄을 지어 이 음료수를 찾았다. 어느 환자는 한 자리에서 5잔까지 마셨다. 사실 얼마 후 코카콜라만 찾는 '콜라광'까지 생겨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호웰은 소비자들에게 절대 한밤에는 마시지 말라고 권했다고 했다.

코카콜라 시럽은 물 36 갤론에 콜라잎 10 파운드를  넣고 제조되었다. 이같은 양이면 콜라 한 잔에 무려 0.13 글레인 즉 0.145 밀리그램의 코케인을 함유한다. 이 처럼 두통에 코카콜라가 효험이 있자 아사는 각 가정에 코카콜라 시럽을 상비약으로 비치하고 필요할 때 마다 와인글래스 한 컵의 물에 시럽 1티스푼을 타서  마시라는 전단을 뿌리기도 했다.


코카콜라 시럽 가정상비약으로 권장

별다른 광고 없이 1889년 코카콜라 시럽은 모두 2,171 갤론이 팔려나갔다. 즉 6만명 이상이 코카콜라를 마신 셈이다. 애틀란타의 겨울은 유난히 음산하고  매섭게 춥다. 그러나 여름이 성수기인 코카콜라는  1890년 1월 한달 무려 168 갤론이 팔려나갔다. 1890 년 아사는 전년에 비해 4배나 많은 8,900 갤론의 코카콜라 시럽을 팔았다.

이처럼 매년 코카콜라의 매출이 눈에 뜨이게 늘어나자 아사는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만약 코카콜라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면 어떨까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코카콜라 사업에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한 아사는 자신의 권리를 보다 확실히 하기로했다. 그리고 워커와 코카콜라 회사를 세울 때 베나빌과 채무관계로 권리 일부가 불분명했던 제이컵스 약국의 조오 제이컵스의 지분을 완전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모든 증빙서류를 연방 특허청에 관계 자료를 제출하여 코카콜라를 100% 자신의 권리로 했다. 또한 아사는 코카콜라에 전념하기 위해 그간 자신이 경영하던 잡다한 사업은 모두 정리했다. 이렇게 해서 아사는 이 지구상 어느 곳이든 태양이 있으면 코카콜라가 있는 회사를 만들었다. 


"태양이 있으면 코카콜라가 있다."

아사는 특허약품인 B.B.B와 치아표백제를 제외한  자신이 소유한 모든 약품의 특허와 5만여 달러에 달하는 재고상품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피치트리에서 임대료가 저렴한 42 1/2 디카처(Decatur) 거리의 허름한 건물 2층으로 이사했다. 아사가 이전한 건물의   1층에는 흑인들이 주로 드나드는 싸구려 술집과 중고의류매장, 전당포가 있었다.

아사의 코카콜라 회사가 이사한 건물 2층은 전체가  마루바닥이었다. 아사는 한쪽 벽에 설치된 벽난로에  40 갤론짜리 구리솥을 매달고 이 솥에서 코카콜라 시럽을 제조했다. 난로 주위에는 단을 설치하여 단에 올라서서 시럽을 제조했다. 우선 구리솥에  36 갤론 물에 10파운드의 콜라잎을 삶은 물을 붙고 물이 끓으면 특별히 고안된 기구를 통해 끓는 물에 설탕을 쏟아넣었다. 그리고 설탕이 바닥에 눌어 붙지않게 대형 나무 주걱으로 저었다. 그러나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넘친 설탕물이 아래층 옷가게나 전당포로 흘러가 상품을 망치면  아사는 이들 가게주인으로부터 비난을  받아가며 그 피해를 변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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