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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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만 달러는 현금으로 나머지 1000만 달러는 새로 설립되는 회사의 우선주로 지불합시다." 1919년 7월1일 뉴욕의 왈돌프 (Waldorf) 호텔에 마주 앉은 샘 캔들러 돕스와 우드러프는 이렇게 합의하고 만족한 듯 두손을 맞잡고 굳게 흔들었다. 근 30여 년간 미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온 전 국민의 청량음료 코카콜라는 이제 아사 캔들러의 품을 떠나 기업 사냥꾼 우드러프의 품으로 옮겨 앉게 되었다. 2년 반 전  거의  성사 단계에서 아사 캔들러의 "반대"라는 단 한마디로 무산되었던 코카콜라의 매각은 이제 완전 결실을 본고 세부적인 절차만 남게되었다.


몇년 간 코카콜라의 앞날은 예측 불허의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1920년에 있을 메이필드와의 “코크 케이스”의 최종판결은 코카콜라측을 매우 불안하게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을 끝내면서 밀어닥칠 세금폭탄, 제1차 매각협상의 실패로  성과급으로 받게되었던 1백만달러의 주식을 손해보았다고 보상을 협박하는 콜비와 브라운 두 변호사 때문에  코카콜라 측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샘 돕스 우드러프와 재협상 마무리

아사 캔들러가 자신의 전 법적지분을 자녀들에게 양도한 상태에서 샘 돕스는 꾸준히 우드러프 측과 언젠가 있을 기회에 대비하여 물밑교섭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호워드 캔들러 등 코카콜라 측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샘 돕스는 우드러프와 1년 반 전의 가격 2,500만 달러에 협상을 마무리했다. 

며칠 후 체이스 내쇼날 뱅크의 부사장 유진 스티슨과 개런티 트러스트 회사에서 나온 직원 등 우드러프의 인수팀이 애틀란타에 도착했다. 이들은 철저하게 신분을 가린 채 코카콜라 측과 매각에 따른 세부 사항을 협의했다. 우드러프는 뉴욕의 한 호텔에 자리잡고 애틀랜터와 뉴욕 간에 직통 전화를 놓고 협상을 지휘했다. 또한 양측간  이견이 있을 때마다 샘 돕스는 양측을 오가며 중재에 나섰다. 드디어 1919년 7월26일 우드러프 측은 1919 년 8월28일까지 현금 1500만 달러와 1000만 달러 상당의 우선주를 코카콜라 측에 지불하고 코카콜라 측은 일체의 권리를 우드러프 측에 넘기기로 했다. 실제 코카콜라 측의 부동산, 빌딩, 장비, 기계, 재고 등 유형의 자산은 2백만 달러 미만이었다. 우드러프는 시럽의 제조비법, 상품명과 로고, 미국민의 코카콜라에 대한 호감 등 무형의 재산을 약 2300만 달러로 인정한 셈이다.

우두러프 측은 곧 인수준비에 들어갔다. 우드러프의 개런티 트러스트는 8월2일 중역회의를 열고 예측 불허상태인 "코크 케이스" 재판 건을 다시 검토하도록 법률 팀에 일임했다. 그 결과에 따라 인수 여부를 최종 확정짓기로 했다. 이번  중역회의에는 샘 돕스가 트러스트의 중역으로 변신하여 참석했다. 8월13일 열린 중역회의에서 법률팀은 결심공판은 코카콜라 측에 유리하다고 보고하자 정식 인수작업이 진행되었다. 당시 우드러프의 트러스트 회사가 확보할 수 있는 현금은 애틀랜터 7개 시중은행에 예금된 180만 달러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우드러프는 자금확보에 자신 했다.

중역회의에서는 우선 새로 설립되는 코카콜라의 주식을 주당 40 달러로 50만 주를 일반 공모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드러프에게는 2만 주를 배당하는 한편 별도로  450만 달러를 증자하기로 했다.

지불 기일을 6일 앞둔 8월22일 애틀랜터 컨스티튜트 신문 제1면에는 대문짝만한 글씨로 "애틀랜터인들, 코카콜라를 매입: 조오지아 트러스트 회사 국민음료를 사들이다"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코카콜라의 매각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놀랬다. 그러나 애틀랜터의 자랑인 코카콜라가 다행히 애틀랜터인들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에 안도했다.


주당 40달러에 50만주 일반공모

한편 트러스트 측 인수팀들은 개런티 트러스트의 전 주주들에게 195달러를 입금하면 신규 발행하는 코카콜라 주식을 주당 5달러에 1주를 배당받을 수 있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나머지 190 달러는 10월1일까지 되돌려 받는다고 했다. 트러스트 측은 주주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주주들에게 미리 이 사실을 설명했다.

일반공모는 8월26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후 3시45분 공모주는10만 주를 넘어 1만5천 주나 초과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드러프는 자신의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코카콜라를 계획대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우드러프는 또한 회사 설비 비용이 저렴한 델라웨어에 코카콜라 회사를 세웠다. 아사의 바로 손위 누나 아들인 샘 돕스는 델라웨어 코카콜라의 사장이 되고 호워드 캔들러는 아무 권한이 없는 이사회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회사의 실권은 우드러프, 유진 스티슨, 샘 돕스  3인방이 차지했다. 캔들러의 자녀들은 거금을 손에 쥔 것 만으로 만족했다.


아사도 모른채 회사 팔려나가

"허사로구나! 허사, 모든 게 허사로구나!" 1919년 7월도  한참 지난 어느 날 저녁, 손녀 딸 로오라의 집에서 저녁을 먹던 아사는 코카콜라가 타인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심한 충격에 잠시 말을 잊은 아사 캔들러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거실로 향한 벽쪽으로 난 문에 몸을 향하고 한 참만에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뒤이어 "애들이 드디어 일을 저질렀구나"하고 울부짖었다. 늙고 작은 거인의 두 뺨에 주르륵 흐르는 눈물은 좀체 멈추지 않았다. 아사의 다섯 자녀 중 누구도 아사에게 매각건을 알리지 않았다.

제44대 애틀랜터 시장직을 물러난 1919년 초부터 아사에게는 액운의 연속이다. 아사는 취임 초 무려 15만 달러에 이르던 애틀랜터 시의 부채를 2년 후 퇴임 시에는 43,000 달러 흑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유방암을 앓던 8세 연하 부인 루시 '리지' 엘리자베스는 1919년 2월22일 사망했다. 엄청난 충격에서 미처 헤어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자식처럼 아끼던 코카콜라 마저 잃었다. 이제 그에게는 옛날을 반추하는 추억만 남게 되었다.


부인 사망에 이어 코카콜라도 잃어

외롭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던 아사는 또 다시 이별을 맛보아야 했다. 평생지기로 그의 곁은 지켜주던 프랭크 로빈슨이 떠나갔다. 슬픔과 비통함에 겨운 아사는 "나만 남겨두고 루시도, 로빈슨도 모두들 가버리는구만. 하긴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너무 길어."하고 중얼거렸다. 펨버튼이 코카콜라를 개발했다면 자칫 사라질 뻔 한 코카콜라를 미국민의 국민음료로 만드는 데는 로빈슨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겸손하고  침착한 성격의 로빈슨은 좀처럼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성격이었으나 전 미국 광고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광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14년 은퇴 후에도 코카콜라회사의 중역직을 역임한 로빈슨은 펨버튼이 남북전쟁때 부상당한 차타누가 강변에 40 에이커의 대지를 마련하고 그곳에 6채의 집을 지어 친지들이 무료로 거주하게했다.

아사는 독실한 감리교 신자로 에모리 대학에 100만 달러를 기증했다. 이후 생활할 수 있는 약간의 돈만 남겨두고 남은 재산은 모두 에모리 대학에 기부했다. 아사는 생전에 미식 축구를 시간낭비이며 거친 운동이라고 좋아하지 않았다. 에모리 대학은 그의 유지를 받아들여 대학 내에 미식축구팀을 지금도 두지 않았다. 

아사는 1916년 완공된 드루이드 힐  1500판스 더 레온 거리의 거대한 저택에서 1926년 9월 오후  심한 뇌졸증으로 에모리대학 병원에 입원했다. 아사는 이후 투병생활을 계속하다 1929년 3월12일 사망했다. 작은 거인이 운명하자 애틀랜터 시는 그의 죽음에 심심한 조의를 표하고 관공서는 휴무하는 한편 전 시민에게 조기를 게양할 것을 권했다. 그는 그의 부인 루시가 잠든 풀톤 카운티의 웨스트 뷰 공원묘지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그가 평생 일군 코카콜라는 오늘도 전세계 200여 나라에서 18억명의 애호가들이 즐기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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