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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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란타를 벗어난 코카콜라는 조오지아, 플로리다, 앨라배마 남부일대를 지나 드디어 전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아사 캔들러가 잡다한 업무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코카콜라에만 전념한지 2년여. 이제 코카콜라에 낯선 남부의 여러 주에서도 코카콜라를 취급하겠다는 요청이 밀려들었다. 공장과 사무실을 허름한 디카쳐 거리로 옮기고 로빈슨이 광고와 영업을 총괄하고 전 직원이 아사의 지휘아래 한몸처럼 뭉치자 코카콜라의 매출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코카콜라가 전국민의 청량음료로 발돋음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다. 아사는 필요한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코카콜라 법인체를 설립하기로했다. 아사는 1888년 울포크 워커, 챨리 펨버튼과 일차 코카콜라 회사를 설립한 바 있었으나 아사의 기우와는 달리 1892년 1월29일 액면가 100 달러 1,000 주 발행 자본금 10만 달러의 주식회사를 설립허가를 받았다. 아사는 자신의 코카콜라에 대한 권리를 새로 설립된 법인체에 제공하고 대신 전체주식의 반인 500주를 확보했다. 아사는 나머지 500주 중에서 10주는 창업공로자 로빈슨에게 배당했다. 나머지 490주는 보스톤의 증권 브로커  프레스컽( F. W. Prescott)과 버어지니아의 베어리(J. M. Berry)가 취득했다. 이렇게 해서 아사는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충분한 자금과 와전한 발판을 마련했다. 


창업 공로자 로빈슨에게 10주 배당

아사의 대륙진출에는 몇몇 증권 및 금융 브로커들의 도움이 컸다. 아사는 처음  중견 기업을 상대로 열심히 코카콜라의 장래성을 설명하고 코카콜라가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가를 설명했으나 대부분 동부의 기업가들은 변방 애틀란타에서 올라온 키가 작은 신사의 열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행히 벌티모아의 다아비 (Darby) 매뉴팩쳐링은  메릴랜드 주 일대에 10년간 독점판매권을 갖는 조건으로 코카콜라에 참여했다. 대신 코카콜라 시럽 500 갤론을 구입할 때마다 코카콜라 주식  1주를 양도하기로 했다. 다아비 매뉴팩쳐링은 1899년까지 주식 18주를 확보했으나 이후 캔들러 가족에게 되팔았다.

프레스컽의 도움으로 아사는 뉴 잉글랜드 지역에도 진출할 수 있었다. 아사는 코카콜라 주식 50주를 매입한 세드(Seth and Sons) 법인체에 20년간 뉴잉글랜드 주의 판매독점권을 주었다. 세드 형제들은 자전거 달리기 같은 각종 운동경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코카콜라가 이 지역에 자리잡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이렇게 해서 아사의 코카콜라는 전혀 발을 붙이지 못했던,  진출하지 못했던 동부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하나의 코카콜라 등장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아사는 1892년 5월 코카콜라의 상표와 로고를 보호하기위해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신청했다. 무난하리라고 본 그의 특허신청은 "이미 동일한 상표가 등록되었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크게 놀란 아사가 확인한 결과 이 코카콜라는 1889년 1월22일 뉴 저지주의 패터슨 시에 거주하는 약사 켄트 (Benjamin Kent)가 이미 "켄트의 코카콜라" 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880년대 중반 코카 잎과  콜라 넛을 혼합한 치료제는 두통에 특히 효과가 있다는 여러 편의 논문이 떠돌았다. 켄트는 1884년 프레데릭 스틴스의 캐달로그에 나와있는 컬럼을 보고 신약개발에 나섰다. 그는 코카 잎과 콜라 넛의 추출액을 환약 형태로 비졌다. 그리고 이 환약을 물에 타서 마시면 숙취 등 두통에 특효라고 선전하여 패터슨 일대에서 판매에 성공했다. 이어 그는 캐나다까지 판로를 넓혔다.

그러나 켄트의 코카콜라는 펨버튼의 코카콜라보다 약 1년 여가 앞섰으나 상표등록은 펨버튼 보다 약 1년반이 늦었다. 펨버튼은 1887년 6월6일 코카콜라 시럽과 상표를 애틀란타 법원에 특허신청하고 그해 6월28일 허가받았음이 밝혀졌다. 켄트는 아사에게 10000 달러의 보상금을 요구했으나 아사는 단돈 400 달러를 지불하고 코카콜라의 상표와 로고등록을 끝낼 수 있었다.


법인 설립 후 판로를 전국으로 확대 

모든 장애물이 사라지자 아사의 코카콜라는 마른 들판의 불꽃처럼 전국적으로 퍼져갔다. 1891년 법인체 설립전 20,000 갤론이던  코카콜라 매출은  1892년 미국 전역이 심각한 불황이었음에도 전년의 약 2배인 35360 갤론이 팔렸다. 그리고 1893년에는 48,427 갤론, 1894년에는 64353 갤론, 1895년에는 무려 76244 갤론을 기록했다.

이처럼 매출을 늘리기위해 아사는 엄청난 광고비를 투자했다. 1892년 법인체 설립 이후 10개월간 시럽제조용 재료비는 22500 달러인데 비해 신문,잡지 달력제조등 각종 매체에 지불한 광고비는 11400 달러에 달했다. 아사는 또한 광고 및 영업 총책임자 로빈슨과 함께 각종 판촉물에도 많은 돈을 투자했다. 5피트 3인치로 키가 무척 작은 아사보다 더 작은 로빈슨의 빼어난 광고와 당시에는 볼 수 없는 과감한 판촉 덕분에 코카콜라의 매출은 놀랍게도 빨리 늘어났다. 아사와 로빈슨은 약국을 비롯한 소다수판매대가 있는 업소에는 "마시자 코카콜라! 5센트"라는 차일을 달아 고객을 끌어들였다. 판매점에는 로고가 새겨진  캐비넷이나 케이스, 시계같은 기념품을 무제한 제공했다. 또한 상점의 출입문 손잡이나 "미시오" "당기시오" 같은 표시에도 코카콜라의 로고를 게시하여 소비자들에게 어디를 가도 코카콜라의 로고가 눈에 띄게했다.


텍사스에 처음으로 지사를 설립

아사는 부모로부터 쉽게 잔돈 5센트를 구할 수 있는 어린이를 주요 고객으로 삼았다. 5센트를 들고 가게를 찾을 수 있는 어린이는 숙취를 달래려고 가게를 찾는  고객보다 그 수가 더 많았다. 아사는 코카콜라 로고가 새겨진 연필이나 책받침같은 학용품을 무한정 어린이들에게 돌려 이들을 가게로 유인했다. 그리고 해군복장의 귀여운 어린이들을 모델로 삼아 "우리는 코카콜라를 마신다."라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무료 시음권도 무한정 발행했다. 1894년에는 무료시음권 7000 달러어치를 발행하여 각 가정에 배달했다. 이 시음권으로  14000 명이 코카콜라를 마셨다.

애틀란타를 벗어나 미 대륙의 심장부 동부로 진출한   코카콜라는 무서운 기세로 그 영역을 넓혀갔다. 아사는 1894년 3월 처음으로 텍사스에 지사를 설치하고 조카 대니얼 캔들러를 지사장으로 내보냈다. 대니얼은 얼마 후 델라웨어에도 지사를 설치했다. 이어 아사는 캘리포니아의 L.A.에도 지사를 세우고 새뮤얼 캔들러를 책임자로 내보냈다. 연이어 시카코에도 지사를 세우는 한편 필라델피아에는 대형 물류창고를 세우고 코카콜라가 미국 전역으로 효과적으로 유통되도록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애틀란타의 철로를 따라 산처럼 높이 쌓인 빨간 색깔의 코카콜라 배럴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자 1895년 자못 흐뭇한 아사는 자체 발행 코카콜라뉴스를 통해 전국의 코카콜라 주주들에게 "코카콜라가 주식회사가 된지 4년만에 이제 코카콜라는 독수리가 자유 미국의 상징인 나라 미국의 국민들이 즐겨마시는 음료수가되었다"고 자찬했다. 

사업규모가 엄청나게 늘어나자 디카쳐 거리의 싸구려 술집 2층에 자리잡은 사무실과 공장은 너무나 협소했다. 아사는 1893년  교통의 요지(Ivy and Auburn)에 있는 규모가 더 큰 건물로 이전하고 늘어나는 주문에 대처하여 40갤론들이 구리솥을 100갤론짜리 대형 솥으로 교체했다. .또한 1500갤론들이 대형 탱크도 설치했다. 그러나 사업 규모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자 1896 년 12월9일 코카콜라 이사회는 사옥 신축을 위해 부지 구입비로 10000달러를 책정했다. 코카콜라 본사에는 항상 50000정도의 비축금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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