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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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흠뻑 쏟아진다. 다시 가는 비로 잔잔하게 내린다. 그랬다가는 다시 장대비 처럼 마구 쏟아 붓는다. 그래, 때로는 이렇게 쏟아져 다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하늘이 노하셨나 웬비가 이렇게 무섭게 내리지? 내가 뭘 잘못했나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라도 갖지 않을까. 또 어떤 사람은 이거 무슨 놈의 비가 이렇게 쏟아져 하필이면 내자식 결혼식 하는 날. 아이, 재수없어! 하면서 하늘을 향해 꾸짓는 사람도 있겠지. 강하게 쏟아지는 비는 정신 좀 차리라고 나를 향해 쏟아지는 것 같고, 소리없이 은은히 내리는 가냘픈 비는 답답하고 메말랐던 나의 마음속을 달래가면서 말도 못한채 움켜쥐고 사는 내 가슴 속을 적시는 빗줄기가 되어 주니 도리어 따뜻해 지는 위로를 받는다.  



지난 주간부터 시작된 감사절 시즌에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았음에도 일일이 다 열거해서 감사를 드리지도 못하고 일 년에 한 번씩 맞는 감사주일에 찬송 부르고 감사예배 드리는 것으로 끝난다. 마치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들을 그것으로 다 한 것처럼 일년을 보내고 또 다시 일년을 보내고... 이렇게 살아왔다. 우리가 가진 조그마한 것에도 감사하였던가, 너무나 평범한 것이지만 우리가 이만큼 탈없이 살아온 것을 감사하였던가. 육신의 고통, 해야 할 일들을 다 이루지 못하는 정신적인 고민, 그리고 아직도 쌓여있는 해야 할 일들, 모든 것에서부터 해방되어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 그래도 이루어야 한다고 갈등하는 일들. 마음속에 흐르는 빗줄기를 붙잡고 그것을 희망으로 안고 살아간다.  


   

지금까지 걸어 온길을 돌아보면서 무엇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열심히 허튼곳에 발 딛지 않고 살아 왔다고 자부해 왔지만 어쩌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밖에는 내 놓을 것이 없다는 것에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지나간 두 주간 정도를 남편은 아무 이유도 없이 특별히 어디가 아프다는 것도 아닌데 자꾸 지친 사람처럼 식욕도 없고 피곤하다면서 침대에 눕고 만 싶어했다. 항상 긍정적이고 즐겁게 사는 사람인데 왜 그럴까 옆에서 간병하는 나로서는 답답하지만 건강하던 사람이 왜 저렇게 힘들어 할까 하는 마음이 들어 안타까웠다. 이제는 조금씩 식욕도 생기고(어쩌면 억지로라도) 운동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그것처럼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자부심이 차츰 희미해 지는 것에 대한 인생을 향한 회의가 아닐까 하는 마음까지도 헤아리게 되었다.  


   

어느덧, 내 가슴에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장2-3절)하는 성경말씀이 무심코 입에서 흘러 나왔다. 그렇게 모든 것이 헛됨을 깨닫고서도 은은하게 마음속에서 찬송이 흘러나온다. 어려울 때마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리고 슬픔이 내 곁을 에워싸도 견딜 수 있게 나를 지켜주는 찬송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하여금 푸른 초장에 눕게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도다. 진실로 선함과 인자하심이 인자하심이 나의 사는 날까지 나를 따르리니 내가 내가 여호와 전에 영원토록 영원토록 거하리로다.  아멘" 찬송을 은은하게 부르다가 높은 소리로 크게 목청을 다해 불렀다.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마음속에 고여있던 회개의 빗줄기가 다 쏟아지는 기쁨을 맛본다.  주여, 감사합니다.   



최근에 너무 감동스러운 글을 읽었다. 우리가 배우고 나가야 할 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떳떳하게 지켜야 할 길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글이다. 김철홍 장신대 신약학과 부교수의 "내가 '신앙인,' '학자,' '국민'으로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대 좌익 운동권 출신 김철홍 교수의 검인정 교과서 분석." 시원 통쾌하게 쓴 이 글은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평가할 내용의 글이 아니다. 이런 글을 읽지 않고는 우리가 아끼는 조국의 사정을 이해할 수가 없는, 읽은 것 만으로도 보람찬 내용들이다. 3회에 걸쳐 나온 글이 다소 길다고 느낄 수 있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번 세 번 읽어도 감동이 될 수밖에 없는 글이다. 구글에 들어가면 찾을 수 있다.



마음속에 흐르는 빗줄기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때로는 눈물고인 가슴을 부여안고 산다 해도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손길, 훈훈한 마음을 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11월30일 2015년

미셸 김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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