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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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피닉스의 겨울은 예년보다 조금 빨리 온 것 같습니다. 뜨뜻미지근한 겨울이 아니고 아침이면 화씨 30도 중반의 쌀쌀함도 있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추운건 싫어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정신을 들게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요즘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다 보니 누군가를 불러내어 따끈한 차 한잔 놓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은 많은데 사람이 그리운 계절,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고 다 그리운 사람도 아니고 사람같은 사람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얘기를 나누어 보면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습니다. 최상의 여건을 갖춘 사회 속에서 살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성을 상실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 슬프게 보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롭지 못한 사회에서 살았어도 따뜻한 인정이 많았고 서로를 감싸 안아줄 줄도 알았고, 가슴 절절한 사랑도 느낄 줄 아는 세상에서 외롭다 고독하다는 말을 모르고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가 생기면 그 절반을 나누어 쓸 줄도 알았고, 때로는 그 하나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세상에 살면서 푸근한 사랑을 느끼며 살았기에 사랑도 할 줄 알고, 우정을 돌볼 줄도 알고, 이웃이 모두만나면 따뜻하고 늘 웃음이 있는 그래서 외로움을 모르고 살았던 시절입니다.



오래 전 크리스마스 때 새벽송 돌던 추억이 새삼스럽게 떠 오릅니다. 교회의 성가대가 몇 팀으로 나뉘어서 성도들의 집을 찾아 다니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 다찬양하여라"하면서 성도집 앞에서 찬양이 끝나면, 주인이 수고한다는 의미로 먹을 것을 우리들에게 주었습니다. 그 추운 새벽 5시에 눈이 하얗게 내린 동네길의 뽀득뽀득한 눈길을 밟고 다니면서 추운 줄도 모르고 마냥 행복했습니다. 이 찬양팀을 위해서 떡만두국과 단팥죽을 만들어 주신다고 엄마가 약속했습니다. 결혼을 앞둔 언니와 대학 신입생인 내가 같이 한 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추위에 언 몸을 녹이라고 마음 써 주셨습니다. 떡국을 먹기 위해 우리 집을 제일 마지막 순서로 잡았기에 다 끝난 후 추위에 얼었던 몸으로 먹는 떡만두국과 단팥죽의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바로 추억의 그 맛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사람들 만나기가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만나면 반갑고 무슨 일이든 도와주려고 하고 누구하나 구겨진 인심도 없는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성도들 사이에서도 누구를 험담하거나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참으로 따뜻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교회가는 주일이 즐거웠고 목사님 만나는 날이 기다려지는 시절이었습니다. 교회의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젊은이들이 서로 대접해 드리던 그런 시절이 그립습니다. 큰소리치고 분열 만드는 장로도, 권사도, 평신도도 없는 조용하던 교회, 그런 교회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요?



만나는 사람도 많고 지나쳐 가는 사람도 많건만 그래도 진정성 있는 사람이 그리운계절입니다. 삶이 아무리 허탈하다 하더라도 차 한 잔 앞에 놓고 조곤조곤 서로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첫눈 온다고 불러내고 비가 내린다고 불러내면 어디서든 달려 오던 그런 사람이, 친구가 그립습니다.



요즘 남편의 건강이 조금 약해졌는지 전과 같지 않아서 남편 시집살이(?)를 감내하고 있습니다.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고 해서 저녁에 일본식 오뎅을 해먹었습니다.  노랗고 빨간 불빛이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의 강렬한 빛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 따끈한 단팥죽이면 좋겠다하기에 부엌에 가서 단팥죽에 넣을 새알부터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벽난로의 불빛으로 훈훈한 기운이 도는 가운데 오랫만에 즐기는 단팥죽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불꽃같은 사랑은 아닐지라도 긴세월 동안 변함없는진한 우정을 나누는 둘도 없는 친구같은 사이로 발전해 나가는 부부가 걸어가는 사랑의 과정을 느껴 보는 밤이기도 합니다.


차 한 잔으로도 서로의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아무런사심없이상대방의 말을 들어 줄 수 있는 사람, 상대방을 아끼고 배려해주는 상식이 통하는 사람, 아파하는 사람을 위해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사람, 슬픔을 당했을 때 어깨를 내어 줄 줄 아는 사람, 사랑도 알고 행복도 알고 적어도 구부러지지 않은 사람, 그런 평범한 사람이 그립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사람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12월21일 2015년

미셸 김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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