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김 원장 라이프칼럼] 대보름달에 그리움을 싣고

대보름달의 멋
정월 대보름달은 유난히도 크고 맑아 마음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금년에는 날씨도 아직 겨울을 벗어 나지 않아 싸늘한 밤공기에 하늘높이 둥그렇게 떠있는 달이 냉기마저 서려 있는 듯 차갑게 느껴진다. 대보름이라면 한국에서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큰 잔치를 벌이는 구정 설을 마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보름의 즐거운 맛은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깝다.
차가운 날씨지만 어찌 대보름달을 보지 않고 넘어 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늦은 밤이지만 휘영청 떠있는 달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뭘 그렇게 오랫동안 올려다 봐?”
함께 바라보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손가락을 입가에 대면서 말하지 말라는 시늉을 한다.
“지금 달님하고 마음 속으로 얘기 했어요. 저 위에 보이는 달님처럼 외로워 보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맑고, 깨끗하고, 유유하게 홀로 서서 남들에게 빛을 주면서 살 수 있을까 하고요.”
가족들의 소중함
부모형제 둘러앉아 오손도손 하염 없이 얘기들을 나눈다. 보름전날 밤에 잠을 자면 다음날 눈썹이 하얗게 샌다는 전통을 얘기하면서 형제들은 자지 않으려고 일부러 온갖 지나온 얘기들로 밤을 새우려고 했다. 역사 얘기를 잘 해주시는 아버지께 우리는 하나가 끝나고 나면 또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내일 상에 올릴 각종 나물이며 오곡밥 준비에 부엌을 드나드시면서 바쁘신 엄마는 늦게까지 떠들고 있는 우리들 때문에 저녁을 이미 먹었지만 또 먹을 것을 만들어 내어 주신다. 밤참을 먹으면서까지 잠을 쫓아 내려고 안간힘을 썼던 생각들이 하나 둘 그립게 떠오른다.
아직도 풍습이 그리워
오곡밥에 각종 나물들을 차려놓고 먹는 풍습, 요즘 같아서는 가정마다 건강을 생각해서 잡곡밥을 해먹는 가정들이 많으니 구태여 오곡밥이 아니더라도 3곡, 4곡 밥 정도는 누구나 해먹는 시대가 아닌가. 그래도 옛 풍습에 호두, 잣, 등 보름을 깨 먹으며 다가오는 여름의 더위를 덜하게 해달라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내 더위 사 가세요” 하면서 외친다. 우리의 문화속에는 이처럼 다양하고 전통이 깃든 습관들이 남아있어 그런 절기마다 가족들이 모이면서 가족들의 애틋함, 따뜻함, 사랑, 끈끈한 정이 가슴속에 차곡 차곡 담겨지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만들어진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김소월의 시 가운데 한소절,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옛날 학창 시절에는 김소월의 시집을 통째로 다 외우고 다닌 적도 있었다. 아직도 소박한 한 줄이지만 그 시절이 그립고 한 줄의 시가 아직도 마음에 와닿아 그리움의 불꽃을 태워 놓는다. 지금이야 시대가 달라져 감정조차도 초 스피드로 달리는 시대가 되었으나 그립다는 말 한마디 하기도 어려워 가슴 태우던 시절을 이해할 리가 없다. 아, 어찌 이리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은 얘기가 되었을까. 내나이 아직 옛날 얘기나 할 나이는 아닌 줄 알았는데.
겨울 눈 얘기도 함께
이런 얘기 나온 김에 아예 겨울눈이나 쏟아지면 안되나? 그래야 격이 딱 맞을 것 같은데. 겨울 눈 얘기를 하니 한마디가 꼭 하고 싶어졌다. 시카고 하면 눈 많이 오고, 바람불고, 빙판으로 조심조심 운전해야 하니 겨울이 반가울 수가 없다.
눈이 와도 웬만큼 오는 것이 아니라 친구네 집에 갔다가 저녁먹고 집에 가려고 나와 보면 아예 자동차가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다. 그 추운 저녁, 눈이 내리면서 얼어붙은 눈을 다 치우고, 얼음을 긁어 내고, 도로를 대충 쓸어내야 집에 올 수 있었다. 이렇게 눈 때문에 지친 시카고 사람들에게 한국에서의 첫 눈 올 때의 반가운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문화의 차이는 바로 이런 소소한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닥터 지바고가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헤매는 눈보라치는 장면이 떠 오른다. 그런 눈보라 속에서 헤매는 지바고의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에 더 각인되는지도 모르겠다.
대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떠오른 그리움들 때문에 올 한해는 그리움으로 가득찬 한 해가 될 것 같다.
2. 21.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