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덕 작가 문학칼럼] 섬

섬
-강위덕
저 바다 가운데 우뚝 선 섬 바위
뭍이 그리워 뭍을 바라보고
서 있어서 섬인가 보다
마냥 혼자 서려는 고고한 욕심
알아줄 이 없는 망부석 되어
서 있어서 섬인가 보다
해설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힘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시도이며 생각을 생각하게 하는 생각, 생각의 생각이다. 오늘의 문학이 요청하는 상상력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망본초란(忘本招亂)이라는 경구가 있다. 기본을 무시하면 혼란이 빚어진다는 뜻이다. 감정이입과 의인화라는 기본에 충실하지 않을 때, 시는 무너진다. 시가 무너진다는 것은 읽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서 있다, 혹은 서다의 명사는 ‘섬’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인 섬(島)은 서있다는 뜻과 동시에 바다 속에 우뚝 솟은 섬과의 이중성을 지닌다.
이 시는 의인화가 없었다면 성립되기 어려운 시이다. 갈매기의 똥받이 역할을 할 뿐 외롭게 서있는 작은 섬을 인간의 영역으로 편입시킴으로서 섬 바위는 곧 사람이 되어 인간 세계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를 현대시라고 한다.
2연에는 다른 시각으로 섬을 바라본다. 돌처럼 굳은 고집과 욕심을 지닌 섬 바위이다. 결국 인간도 돌처럼 굳은 마음을 가지고 욕심만 부린다면 섬처럼 고독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2연의 섬은 1연에서의 외로운 섬보다 위상이 높다. 결국 바다의 섬은 인간보다 더 오래 살면서 인간의 스승으로 올라선다. 인간 세계로 편입된 바위섬이 도리어 인간을 안내하는 것이다. 이런 의인화를 역의인화라고 한다. 역의인화는 주체가 역전되는 것을 말한다.
바다 위에 돌기된 섬 바위가 꼭 인간을 닮았다는 뜻을 넘어서서 인간들의 스승으로서 인간들을 교훈하고 있다. 단순 의인화는 이야기에서의 역할 사회의 풍조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역의인화는 입법 자체를 거부하면서 인간을 선도하는 도덕적 율법이다. 감정이입과 의인화라는 두 채널, 알레고리, 은유, 상징, 패러디 등이 보태지면서 문학적 상상력은 우주까지 인간화한다. 감정이입과 의인화라는 기본에 충실할 때 시는 참으로 아름다워진다.
미국의 법 문화는 은연중에 “너 죽일 꺼야”해도 상대방의 신고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미국은 말을 조심해야 하는 나라다. 인권침해를 중히 여기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살인을 하려는 사람은 결코 죽인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마치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말과 상통한다.
어떤 아이가 시끄러운 공장에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회중시계를 잃어버렸다. 아이는 사방을 뒤졌으나 찾을 길이 없어 아버지에게 말했다. 직원들과 함께 찾아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자 아버지는 모든 하던 일들을 멈추고 전원을 끈 채 조용히 있어 보자고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얼마 되지 않아 째깍째깍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계는 주위 환경이 조용해지자 구석진 바닥에서 자신의 위치를 주인에게 알리고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기 위해서는 60년이 걸린다고 한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섬 바위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