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범 작가 문학칼럼] 젊음의 한가운데 서서 1

미국 중동부에 위치한 C공항의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솔직히 말해서 전혀 없었다. 내 가슴은 돼려 흥분까지 동반하는 설레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잘 불지도 못하는 휘바람을 나름대로 신나게 불며 게이트 밖으로 나왔을 때, 그러나 사정은 달라져 있었다. 설레던 가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양손에 꼭 잡고 있던 부모의 따스한 손을 놓쳐버린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아, 미아. 나이 25살의 청년을 미아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그렇긴 하나 낯선 곳에 홀로 내버려진 듯한 그런 기분은 충분히 미아가 되고도 남았다. 내 주위에는 온통 이방인 뿐이었다. 아니 내가 이방인이었다. 노랗거나 갈색 머리 백인과 까만 곱슬 머리 흑인만 보일 뿐 나처럼 눈이 가늘게 째지고 콧등이 내려앉은 갈색 피부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게이트 앞에서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빙도는 풍뎅이처럼 고개만 좌우로 돌릴 뿐이었다.
김민호. 내 눈이 닿는 어디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이 오지 않는 낯선 곳에서의 불안감 때문일까. 가족과 친구들에 둘러싸여 북적대던 인천공항이 불현듯 내 가슴을 파고 들어왔다. 정말이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떠나온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새벽 잠이 없는 누나가 남들이 자는 시간에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를 내는 동안, 눈이 반쯤 감긴 채로 내가 전화통화를 한 사람이 김민호였다. 미국 출발을 정확히 일주일 남겨 놓고 있던 토요일 새벽이었다. 유학 갈 대학인 A대학에서 보내준 각국의 학생회 연락처의 딱 중간 쯤에 Korea라는 단어가 있었고 Korea 옆에는 10개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7개 숫자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10개의 숫자는 전화 번호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무슨 전자제품의 시리얼 번호 같았다. 그 번호를 콕콕 검지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자신을 한국 학생회 회장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내 이름도 물어보지 않은 채 다짜고짜 내 전공부터 물어 보았다.
“도시계획이라?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도시계획, 도시계획. 아, 여기 있네요. 김민호씨에게 전화를 하면 되겠네요.”
종이 위를 훑고 지나가던 그의 손가락이 딱 멈춰지는 것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가 불러준 김민호의 전화 번호 역시 10개의 숫자였다. 미국의 전화 번호는 모두가 그렇게 긴 모양이었다. 미국의 국가 코드 01을 누른 다음 나는 그 10개의 숫자를 눌러 보았다. 차분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내 귀로 흘러 들어 왔다. 헛기침 두 번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나 역시 차분한 목소리로 비행기 도착시간을 그에게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제가 공항으로 마중 나갈 테니까 아무 걱정말고 편안하게 오세요.”
비록 손가락은 걸지 않았지만 그렇게 철석같이 약속을 했던 김민호였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내 앞에서 오고 가고 서 있는 많은 사람들 중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나는 영화관처럼 길게 놓인 까만 의자에 덜썩 주저 앉았다. 장거리 여행에서 오는 피곤함은 밀려오는 불안감 때문인지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를 데굴데굴 굴려 보았지만 도무지 무슨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영어 회화 학원의 미국인 강사의 말이 불쑥 떠올랐을 뿐이다. 다소 어눌하긴 해도 당연히 한국말이어서 나는 눈 한번 깜박하지 않고도 알아들을 수 있던 말이었다.
“곤경에 처한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내국인이 뜻밖에도 많아요. 그러니까 외국에 나가면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지세요.”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만에 끝난 영어 회화 수업에서 내가 용기를 낼 만큼 배운 것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A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서를 받고 비행를 타기 전까지 남아있던 시간은 대략 3개월이었다. 내가 의중에도 없던 영어 회화 학원을 찾은 것은 마땅히 할 일 없던 그 3개월을 다소 건전한 방법으로 떼워 볼 요량에서였다. 3개월을 생각하고 시작한 영어 회화는 그러나 부끄럽게도 하루만에 끝나고 말았다. 게을러지기만 하는 일상에서, 늦어지는 기상시간을 앞당겨 보자는 기특한 생각을 한 내가 잘못이었다. 어쩌자고 나는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수업에 덜컥 등록을 했던 것이다. 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학원까지의 시간을 계산하면 나는 아침 9시 전에 일어나야 했다. 발딱 일어나지 못하고 침대에서 조금만 미적거리면 그냥 오후로 넘어가던 그때의 기상시간에 아침 9시는 새벽 4시와 다름없었다. 그래도 첫 날은 기세좋게 8시에 일어나 늘 생략하곤 하던 아침 밥까지 챙기는 부산을 떨었다. 수업 시작 15분 전에 학원에 도착한 것은 내가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작심 하루였다. 다음날, 8시 자명종 소리는 꿈결에서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미국가면 매일 해야 하는 영어인데 3개월 전에 미리 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인가.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10시를 넘긴 시계를 보고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위로했었다. 그렇게 하루 만에 끝난 영어 회화 첫 수업 시간에 미국인 강사는 어눌한 한국말로 외국에 나가면 용기, 또 용기를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입은, 공항 한가운데서 한 시간 가까이 지나도록 벌려지지 않은 채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고 있는 김민호라는 이름만 무슨 철천지 원수의 이름처럼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멀리서 나와 비슷한 사람의 모습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해처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은 공항 의자에 앉아 영어 회화 수업을 하루 만에 끝내버린 나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때였다. 3개월 동안 아침 8시에 일어나는 부지런을 떨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한 시간 동안 의자에만 앉아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공중 전화기를 집어드는 일조차 두려웠다. 주머니에 전화 걸 동전이 없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덥수룩한 머리에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느린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오던 사람은, 저 만치 보일 때부터 일어서 있던 나를 못 본 채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김민호가 아님은 분명했다. 그가 김민호였다면 한 시간이나 늦은 미안한 마음에 숨소리 거칠게 뛰어왔을 것이고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나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창가에 바짝 붙어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창 밖을 외로히 내다보는 그의 모습이 마치 유리창에 붙어있는 그림같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한국 말로 물어보는 용기는 내게 있었던 것이다. 20년 이상을 써온 말은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술술 나와줄 것이었다.
“한국 사람이세요?”
유리창에 그림처럼 붙어 있던 그가 목만 돌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부모 손을 놓아버린 불쌍한 미아가 아닌, 25살의 건장한 청년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마중나온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동전도 없는데다 어떻게 전화거는 줄도 모르겠어요.”
내 말을 듣는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갑자기 그는 고개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고개가 딱 멈춰 선 곳에 공중전화 박스가 세워져 있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동전을 꺼내 전화를 걸던 그가 곧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전화를 받지 않는군요.”
말을 무척 아끼는 사람처럼 그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덩달아 아무 말이 없었다. 내 얼굴에는 난처한 표정만 가득했다. 그를 쳐다보는 나의 까만 눈동자가 애처로워 보였는지 그가 반가운 말을 건네왔다.
“제가 학교까지 태워드리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넙죽 큰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어머니를 따라 간 절에서 부처님 앞에서 하던 그 경배를 누가 보든 말든 그의 앞에서 하고 싶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전 강영훈이라고 합니다.”
“구진웁니다.”
구진우. 그의 이름이 내 귀에 ‘구세주’처럼 들려왔다. 비행기 안에서 느껴지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임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잃은 날개를 다시 찾은 새처럼 이제 나는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기를 완전히 회복한 나는 조금 흥분까지 해가며 이런저런 질문을 그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도 나처럼 유학생이었다. 내가 찾아갈 A대학 학생은 아니었고, 나처럼 석사과정도 아니었다. A대학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대학교의 학부과정 학생이었다. 학부생이긴 해도 군대를 갔다왔다고 했으니 나와 나이는 얼핏 비슷할 것이었다. 약간 느린 듯한 그의 말투는 세상의 실리를 따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고 내가 묻는 말만 조용조용 대답하는 것으로 나는 그를 대뜸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단정해버렸다.
“누구 마중나온 게 아닌 모양이죠?”
“네. 이륙하는 비행기를 보려고 가끔씩 공항에 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왜 이륙하는 비행기를 보려고 하는 지는 물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이륙하는 비행기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 듯 짙은 어둠이 설핏 스쳐 지나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기숙사 건물 이름 아세요?”
높고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캠퍼스로 들어서면서 그가 입을 떼고 있었다. 그가 기숙사 건물 이름이나마 내게 뭘 물어 온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학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는 줄곧 내 목소리분이었다.
“존스 타워. J.o.n.e.s. 타워.”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차창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목소리를 높였다. 지나가는 학생에게 존스 타워 위치를 물어보는 그의 영어는 내 귀에, 마치 버터라도 발린 듯 매끈하게 들려왔다. 그의 유학은 나보다 달랑 1년 먼저였다. 1년 만에 벌써 저 정도면 내가 까만머리 미국인처럼 되는 데는 2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분좋은 생각이 들자, 공항의 의자에 외롭게 앉아 뼈저리게 후회했던 작심 하루로 끝난 영어 회화에 대한 미련을 나는 비로소 떨쳐버릴 수가 있었다. 3개월을 꼬박 학원을 다닌 사람 부럽지 않게 조만간에 나는 꿈 속에서도 영어를 지껄일 것이었다.
기숙사 주차장에서 부르렁거리던 차의 엔진이 뚝 멎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차에서 내리는 내 얼굴을 덮쳐왔다. 나는 가지개를 펴고 주위를 한바퀴 빙 둘러 보았다. 기숙사 건물보다 높은 건물은 내 시야가 닿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3,4층의 낮은 건물들이 캠퍼스를 채우고 있었다.
기숙사 주차장에 내려놓은 가방은 마치 곰 한마리가 풀석 주저 앉아 있는 듯한 형상이었다. 아무리 채워도 다 차지 않을 것 같았던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대(大)자 이민용 가방은 책과 옷을 주섬주섬 집어 삼키더니 금방 불룩해졌었다.
“많이 약해 보이는데요.”
그 이민용 가방에 내 손보다 그의 손이 먼저 가고 있었다. 내가 많이 약해 보인다는 그의 말은 누가 뭐래도 거짓말일 수 밖에 없다. 내가 그런 말을 여지껏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을 뿐더러 각진 얼굴만으로도 나는 절대로 약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민용 가방 하나를 놓고 그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기숙사 건물은 바로 코 앞에 있었다. 이민용 가방을 끌고 가는 그의 뒤를 나는 고마운 생각은 놓지 않은 채 줄레줄레 따라갔다.
기숙사 입주 수속 과정에서도 1년 된 그의 영어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영어를 듣고 말하는 것은 다 그의 몫이었다. 나는 그가 물어오는 말에 한국말로 대답만 하면 그만이었고, 그와 영어를 주고 받던 백인 여자가 말을 끊고 나를 멀뚱히 쳐다보면 나는 무릎에 올려 놓은 가방을 뒤져 필요한 서류를 꺼내면 그만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복도에서 시끄럽게 끌리던 이민용 가방소리가 멈춰선 곳에738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7층 기숙사 방은 아담했다. 한 사람만 누우면 빈 공간이 없을 만큼의 작은 침대와 책상 그리고 철제 책꽂이가 전부였다. 침대가 놓인 반대편 벽에는 벽장이 있었고, 벽장 옆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문에는, 조금만 뒤로 물러서면 왠만한 사람의 몸을 남김없이 비쳐줄 수 있는 긴 거울이 달려있었다.
“긴 여행으로 피곤할텐데 푹 쉬세요.”
수척해진 내 얼굴이 화장실 문의 거울 속으로 쑥 들어왔을 때 나의 구세주는 이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대접할 것 하나 없는 기숙사 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내 손을 내밀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어가는 그의 어깨는 공항의 유리창에 그림처럼 붙어 밖을 내다보던 그 외로운 어깨로 돌아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속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불러세워 어디가서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마셨으면 하는 생각이 언뜻 든 것은 나 역시 낯선 곳에서 갑자기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를 태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힐 때까지 나의 입에선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