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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덕 작가 문학칼럼]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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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강위덕


미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 국민, 스트레스가 많은 백성으로 명성이 나 있다 

돈 한 푼 지키기 위해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하이에나처럼 떠돌다 썪은 고기도 챙기고 나무 위에 올려놓고 남의 법을 엎어 끌어내리기도 한다 


스트레스 없기로 일등나라 멕시코는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끌려 다니면서 욕심도 없이 몸 굴려 산다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다가 문득 내 안에서 뻗어나간 바리새인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 

후진국에 비해 좋은 국적을 가진 내가 그들을 부리고 산다 해도 등허리 긴 그림자 안고 멀리서 바라보니 세리들의 고샅길이 아스라히 비춰진다 

쥔 것 없는 손목으로 돌아와 허물 벗어 홀가분한 영혼의 그림자까지도 ···


얄팍해진 카렌다 속에 남은 생의 부피를 보며 열 발가락으로 생의 굴곡을 써레질한다 

천년이 딛고 온 풍상이 검은 이끼 되어 써렛발 틈을 덮고 있다 * 


당대 양반 계급의 바리세인이 쌍놈계급의 세리들을 업신여기는 이야기가 성경 눅18:11 에 기록되어 있다.

해설

 2주일 전에 고사리라는 시를 쓴 것이 인연이 되어 이범용 선생님과 고사리를 뜯으며 주말을 보냈습니다.

그는 코리안 투데이 신문사에서 역사칼럼을 쓰는 분이고 나는 아리조나 타임즈 신문사에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끼리 만났으니 하루의 대화도 가간이 아니었습니다. 

기시감(旣視感)이라는 말이 좋을 듯 합니다만 처음 보는 분인데 이전에 보았다는 느낌이 드니 말입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지요. 

“선생님을 보니 한국에서 고위 정치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금뺏지 아니면 장관급 정도?” 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같이 보입니까”라고 대답하더군요. 

제노사이드(Genocide)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무서운 말이지요. 

지금 우리와는 아주 먼 남의 일인 것으로 치부하기 쉬운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정치란 남을 죽여야 자기가 사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을 방불케 합니다. 

정치판이라니. 

정치판 배후에는 인권이 유린당하는 민족 대학살의 현장과 같은 무서운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2002년 5월 1일 수요일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할머니 어린이 등 남자여자 100여명이 철사로 코가 꿰어 북으로 압송당하는 탈북인들> 

지난 16일이라 했으니 2002년 4월 16일에 일어난 사건이지요. 

이북의 보안관 정복을 입은 사람들이 중국 투먼에서 코가 꿰이고 손바닥이 꿰어 이북으로 압송되어 갔다는 내용입니다. 

인간으로서 상상 못할 끔직한 일이지요. 


우리 교포들은 좋은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 세계에서 제일 좋은 나라에 거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평균 수입이 미국 총인구의 평균 수입의 상위 1 % 안에 들어간다고 하니 한국인의 경제 수준을 가히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길바닥에 서있는 인력시장의 남미인들을 보며 나는 저 사람들처럼 저렇게 길에 서서 일을 찾지 않아도 됨을 하나님께 감사하다가 문뜩 바리세인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LA 폭동 때 흑인 여러 명이 한국인 상가를 지키며 보호했다는 보도를 들으면서 평소에 인종차별을 하지 않고 남을 억울하게 하지 않았으므로 저렇게 흑인 폭동 때에 흑인들로부터 보호를 받게 된 것을 생각하며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