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환 목사 기독칼럼] 한국교회 형성 이야기 23

1945년 한민족은 고대하던 해방과 독립을 이루었다. 국내외적 한민족의 불굴의 독립의지가 바탕을 이루었으나 한민족 해방과 독립의 주동체는 역시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힘이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외적 힘은 해방후 지난 60여년간 한민족의 국내외 풍향을 좌우하는 근본 축을 이루어오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조선봉건주의 사회체제가 붕괴되고 40여년의 일제식민통치를 경험한 한민족교회가 해방후 전개할 최우선적 과제는 민족교회 재건과 갱생에 있었는데 후대 역사가 보여주는 대로 40년대 중반에서 1960년 이전까지 민족교회(특히 장로교회의 경우)는 혼돈과 갈등 그리고 분열의 파행을 보여준다.
1940년대 이후 민족교회의 최우선적 과제였던 민족교회 재건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일제에 의하여 강요되었으나 나중에 부일협력 내지 훼절로 치달았던 민족교회의 반동적 행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의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하여 대다수는 개인적인 신앙의 문제로 치부하고 개인의 결단에 맡길 것을 주장하는 것이었으나 신사불참배운동을 투옥을 각오하면서 전개했던 소수 지도자들과 신자들은 신사참배문제는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과 책임의 문제만이 아니라 민족 공교회가 공적으로 결의한 것으로서 그 해벌의 문제 또한 공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해방후 민족교회는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갈등과 파행을 겪게 되었다.
장로교회의 경우 일제시대 때 신사불참배운동을 전개하고 투옥되었다가 해방과 더불어 출옥한 소위 ‘출옥성도들’ 중의 대표격인 한상동, 주남선 등은 1948년 한국교회 재건과제의 일환으로 보수적 신학교 설립과 더불어 이 신학교를 지지하는 주로 경남노회를 거점으로 장로교 총회차원에서 과거 신사참배행위에 대한 공적 회개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과거의 죄가가 있는 대다수의 지도자들에게 공적 회개운동의 목소리는 달가운 것이 아니었고 결국 1951년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 회개주창자들은 대다수의 횡포로 축출당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해방후 장로교회에서의 첫번째 교회분열사건으로서 고신측 장로교단의 출범의 배경이다.
장로교회 총회에서 축출당한 신사참배 회개 주창자들은 별도의 장로교단을 설립하고 이미 설립된 부산의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교계지도자들을 양성해냈는데 한국 역사가 이만열 교수가 언급한대로 1940년 중반에서 1960년대 이전까지 고려신학교와 고신측 장로교단의 신앙적 외침은 그 당대 민족교회의 양심의 소리였고 박형룡 박사를 위시하여 박윤선 박사의 주경신학과 변증신학은 그 시대 한국 보수신학의 바로미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신측 장로교회의 분립과 더불어 한국 장로교회는 두번째 교회분열을 겪게 되는데 그것은 이미 1930년대 이후 한국장로교회안에서 배태되었던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로서 결국 해방후 장로교회내 진보주의 그룹은 총회를 떠나 1953년 별도의 교단을 설립하였으니 그것이 한국기독교 장로회이며 신학교로는 한국신학교가 그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국장로교회는 주류 장로교 총회, 고신측 장로회 그리고 기독교 장로회 등으로 3분립 되는 듯 하였으나 곧이서 주류측 장로교 총회내에서 대두된 세계교회연합회(WCC)에 대한 입장차이로 인하여 장로교회는 1959년 결국 WCC와의 연대를 반대하는 측(승동측)과 찬동하는 측(연동측)으로 분열하게 되니 해방후 한국 장로교회는 고신측, 기장측, 승동측 그리고 연동측 장로교단으로 분립되었다.
1960년대 이후 80년대까지 한국은 군사독재정권의 통치속에서 경제발전을 이루어왔는데 한가지 역설적인 것은 일제시대 때 일제의 불의한 폭정에 신앙적 항거를 행했고 해방직후 민족교회 갱신운동을 주도했던 보수주의 그룹은 그 이후의 군사독재정권의 불의에 대해서는 대개 관심이 없거나 침묵을 지킨 반면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적이었던 그룹에서는 선언적인 차원을 넘어서 직접적인 행동으로 맞서온 점이다.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역사에서 유례가 드물 정도로 그 짧은 선교기간에 비해 경이로운 비약적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교회성장학파의 이론과 실제성장사례의 도입과 응용은 한국교회의 수적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문제는 교회가 물량주의의 포로가 된 것과 신자들의 영적 질의 저하현상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지나간 시대 교회의 빗나간 궤적에 대한 반성으로 21세기 들어 교회는 건강한 교회의 자아상을 찾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데 이것은 희망적인 일이다.
사실, 빠른 성취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가는 것에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러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면 무엇인들 소용이 있겠는가.
성도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