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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덕 작가 문학칼럼] 기억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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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들의 시간

-강위덕

 

빈손과

빈 가슴에

몸살로 앓던 마음이

어머니의 눌변(訥辯)의 깃 자락처럼

산허리를 휘감아

촉촉이 밴 눈물을 짠다

 

기억들이

퇴적암처럼 겹겹이 쌓여

유유히 흐르는 시간의 강심에

회오리 칠때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잠자던 기억들이

맥박처럼 뛴다

 

염원의

신비스런 눈과

마주친 까칠한 그리움이

세월의 혈관을 돌다


마지막 번지수,

푸른 심장에서

물망초로 피어난다

해설


내가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면 —그 원초적 피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면— 다행히 우리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축복으로 자랍니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중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는 순간의 모든 감촉을 송두리째 돌려주시는 느낌, 이런 느낌으로 내 앞에는 시가 놓여 있습니다.

더듬거리는 말솜씨지만 촉촉이 젖어있는 어머니의 마음씨는 마치 산허리를 휘감은 아침안개와 같습니다.

어머닌 갓 태어난 아이를 씻기고 얼굴과 몸을 닦으며 찬찬히 그 새로운 피붙이를 확인합니다. 닮았지만 낯설고 낯설지만 어딘가 닮은 것 같아 바보처럼 아이를 보고 또 봅니다.

기억들이 퇴적암처럼 겹겹이 쌓여 유유히 흐르는 시간의 강심에 회오리 칠 때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잠자던 기억들이 맥박처럼 뛰기도 합니다

이제는 다 자라 가정을 이루고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아가는 자녀들을 생각하며 빛바랜 사진첩을 뒤지노라면 유유히 흐르는 기억이 회오리치듯 소용돌이 칩니다.

글은 자기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 장래를 위하여 인생의 이정표를 세우는 알뜰한 작업입니다. 엉클어지고 흐트러진 감정을 가라앉힘으로서 다시 고요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묘방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노와 슬픔과 괴로움을 종이 위에 적습니다. 종이 위에 그려지는 순간 그 분노와 슬픔과 괴로움은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로 굳어지기도 합니다. 동시에 나는 떨어진 자리에서 그 분노와 슬픔과 괴로움을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됩니다. 이미 종이 위에 기록된 것은 나 한사람만의 사건이 아닙니다. 안으로 자기를 정돈하기 위하여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싶을 때 글을 씁니다. 아무도 나의 연필의 길을 가로막거나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즐거운 작업입니다. 스스로 좋아서 쓰는 글은 본래 상품이 아니고 매명(買名)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읽기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간혹 절실히 가까운 벗을 독자로서 예상할 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그것은 고상한 취미의 하나로서 헤아려야 합니다.

진실에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내면을 속임없이 솔직하게 쓴 글에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있습니다. 본래는 혼자서 붓장난으로 시작한 글이 뜻밖에도 깨끗한 물건으로 잘 빠진 글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혼자서 읽어보아도 대견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엔가 읽히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기억들이 퇴적암처럼 겹겹이 쌓여 유유히 흐르는 시간의 강심에 회오리 칠 때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잠자던 기억들이 맥박처럼 뛸 때가 있습니다


480-323-9100

시인 강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