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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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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로마서 – 깊게 천천히 오래 보기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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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라스테리온’을 시은좌로 번역하면 “하나님은 예수를 그의 피에 의해 시은좌에 놓으시고, 우리들이 이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예수의 신실하심을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언약의 정의)을 입증하셨다”가 된다. 시은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겠다고 약속하신 장소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고 수단이다. 예수는 제사를 드리는 장소이고, 제사에 사용되는 제물(희생물)이며, 동시에 제사를 행하는 대제사장이셨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 죄에 대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이렇게 서로 모순되는 개념인 죄의 심판과 용서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예수의 죽음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대표자이고 모든 인간을 대표한다. 하나님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죄를 심판하시고 동시에 용서하셨다.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언약의 정의를 세우고 세상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드러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속죄 제물의 피가 없이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제사장인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린 후에는 더 이상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20).

소설가 조세희 씨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도시 재개발로 밀려난 서민 가정의 고통, 한걸음 더 나아가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날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가난을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서글프다. 김명인 문학평론가의 글을 인용하면, “그 꿈은 쉽게 이루어질 수가 없다.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모두가 함께 타락한 채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마치 안과 밖이 따로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함께 굴뚝을 빠져나온 두 아이처럼 둘 중 누구도 얼굴이 더럽혀지지 않은 채로 남을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이 타락한 세상은 입구와 출구가 따로 없는 ‘클라인 씨의 병’과 같아서 누구든 마음먹고 길을 따라 나가면 빠져나갈 수 있지만 아무도 그 길을 나서지 않고 이대로 머물러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꿈은 꾸지만 그 꿈을 이룰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꿈을 이루는 행동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 비극적 아이러니이다.”
빈곤과 결핍 때문에 힘들어하고 희망이라는 출구를 찾지 못해 절망의 늪에서 버둥거리는 인간의 배후에는 사탄의 통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희망을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하고 계신다. 이것이 우리가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이유이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바울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그럴까?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완전하게 한다는 말은 성취한다 또는 가득 채운다(Fill full)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바르게 해석하고 율법의 정신과 본질을 가르치셨다. 율법은 완전한 순종을 요구한다. 따라서 순종을 가르치는 토라는 영원하다. 제사, 할례, 음식 관련 규정과 절기 등 의례에 관한 부분은 예수님에 의해 완성되고 폐지되었다. 그러나 우상숭배와 남의 것을 탐내는 욕심을 멀리하고, 도덕과 윤리, 불의를 미워하는 정의, 남을 불쌍히 여기는 컴패션은 여전히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부분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으니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치 없는 싸구려 은혜(Cheap grace)로 전락시킨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막 12:29-30).
30절은 유대인들의 기도문인 ‘쉐마(Shema)’의 기본 신앙고백을 담고 있다. 사랑은 율법의 기초이고 완성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정기원 목사 (602) 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