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칼럼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윤종범 작가 문학칼럼] 젊음의 한가운데 서서 8

yun jon beom.jpg


그는 반바지 차림이었다. 반바지 차림의 교수를 대학 교수실에서 접한다는 것은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보았던 교수들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말끔한 양복에 넥타이로 한껏 멋을 낸 정장 차림이었다. 간혹 젊은 교수들은 중대한 회의나 외부 인사들을 만나는 일이 없는 날은 간편하게 티셔츠 하나만을 윗몸에 걸치긴 했어도 바지만은 양복 바지였다. 젊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청바지는 젊은 교수들에게서조차 비껴나 있었다. 그런데 반바지라니. 그러나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여기는 미국이니까. 문화와 사고방식이 한국과는 영 다른 태평양 건너의 나라니까. 반바지를 입고 있는 교수를 보면서 나는 넥타이에 양복 차림이라면 돼려 더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기이한 생각을 했다. 불과 일주일 만에 일어난 사고의 전환이었다.

아직 개학 전이어서인지 잔디가 파랗게 깔린 넓은 캠퍼스에 교수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그 소수의 무리 중에서도 넥타이를 가슴으로 내려뜨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옷차림만으로는 누가 교수고 누가 학생인지 분간하기 힘든 풍경이 지난 일주일 내내 캠퍼스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얼굴에 인생의 연륜이 제법 쌓인 사람을 그저 교수려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마나 목에 주름을 몇 개 그리고 있는 사람.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팔랑이는 사람. 턱 수염이나 구렛나루가 얼굴을 덮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혹시 교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데, 그런 것만 빼면 정말이지 누가 교수고 누가 학생인지 구분하는 것은 난해한 미적분 문제를 푸는 만큼이나 어렵게 보였다.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책을 읽고 있던 프리드만 교수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을 무성히 덮은 수염이 아니면 그를 교수라 말하기 힘든 차림이었다. 반바지 차림에 신발도 평범하지 않았다. 반바지의 밝은 베이지 색상 탓에 다리의 털이 한층 더 검게 보이는 긴 다리 끝에는 샌달이 걸려 있었다. 이런 모습을 한국에서 접했다면 나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정신나간 사람? 그러나 정신 이상자가 교수가 될 수는 없었을 테니 정신이 나갔거나 미친 교수라고 생각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간주하기는 반바지에 샌달은 한국의 교수 사회에서는 너무나 파격적인 것이다. 그냥, 정말 세상에는 별의별 인간이 다 있군, 하고 웃어넘기고 말았을까.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프리드만 교수의 그런 차림새를 보는 순간 교수실에 도달하기 전에 느껴지던 긴장감이 점차 수그러드는 기미를 보였다는 것이다. 마치 동네 아저씨를 만난 듯, 그것도 마음이 한량같은 동네 아저씨를 만난 듯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교수실을 찾아가는 내 몸은 언제나 경직되어 있었다. 교수실을 찾아가는 경우가 사실 많지 않았지만 간혹 찾아갈 일이 생기면 나는 미루다 미루다 못해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용기를 내곤 했었다. 굳게 닫힌 교수실 문을 두드리는 내 심정은 좀 과장하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같았다고나 할까. 들어오라는 굵은 목소리에 교수실 문을 열면 거기에는 언제나 넥타이를 맨 양복차림의 교수가 앉아 있었다. 정장차림의 근엄한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몸은 교수실을 찾기 전보다 더 경직되어갔고 내 목소리는 안으로만 기어들어갔다. 그런 까닭에 교수실에 머무르는 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을 것이었다. 용건은 간단히. 공중전화에나 적혀있을 법한 문구를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이 나는 최대한 간단하게 용건만 말하는 것을 끝으로 내 입은 침묵을 지켰다. 거기에 교수와 학생의 관계를 떠나 인간의 말이 오고 갈 틈새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드시는 교수님께 어제 술 좀 하셨는지 얼굴이 푸석해 보이신다든가, 곁을 지나칠 때면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르는 멋쟁이 교수님께는 짙은 색의 넥타이가 교수님의 하얀 얼굴에 썩 어울린다든가, 하는 말 따위들은 내 머릿속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일초라도 빨리 몸을 돌려 문 손잡이 돌리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프리드만 교수를 찾아갈 때의 내 심정도 한국에서 경험하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내 몸은 더 경직되어있었다. 세종대왕이 창조한 언어가 아닌 영어 때문이었다. 교수 앞에 서면 입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가 영어로 대화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입이 제대로 떼어지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그래서 나는 교수를 찾아가기 전, 많은 시간을 들였다. 내가 할 얘기를 메모지에 먼저 한글로 적었다. 그런 다음 한글 밑으로 영어를 적어나갔다. 한글로는 빠르고 쉽게 채우지던 메모지가 영어를 적을 때면 왠지 버벅거리며 속도가 나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우기를 몇 번씩 한 내 영작이 마침내 그럴 듯해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을수 있었다. 교수로 부터 예견되는 질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그것들을 또 한글로 먼저 적었다.

한 장의 메모지를 다 채운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내가 해야할 일은 한글과 영어가 뒤섞인 메모지에서 영어만을 골라 읽고 또 읽는 것이었다. 중학교 시절, 영어 암송대회에 나갈 때처럼 저절로 입에서 문장이 툭툭 튀어 나올 때까지 소리내어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감옥처럼 굳게 닫혀 있던 한국의 교수실과는 달리 프리드만 교수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교수는 다리를 책상에 올리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헬로우, 할까 하다가 그것조차 입이 쉽게 떼어지지 않아 마치 문이 닫혀 있는 듯 나는 문을 ‘똑똑’ 두드렸다. 노크 소리에 교수는 읽던 책에서 눈을 떼며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다리는 여전히 책상에 걸친 채였다.

그의 얼굴은 온통 수염투성이었다. 턱이며 코 밑이며 귀 밑이며 보이는 것은 수염 뿐이었다. 수염은,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갈색이었다. 파마를 한듯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역시 갈색이었다. 알이 동그란 안경마저 갈색이었다면 나는 그를 프리드만 교수라고 부르는 대신 브라운(갈색) 교수라고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안경은 까만 색이었다.

“프리드만 교수님이세요?””

나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면서, 늘 교수실에서 보아오던 정장차림의 근엄한 모습이 아니어서였을까, 마치 나를 단단히 죄고 있던 나사가 하나 둘씩 풀려나가는 듯 내 몸은 조금씩 편해져갔다. 나이도 지긋해보여 젊은 교수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이해하는 마음이 깊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미국인의 나이는 가늠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덩치가 있어서인지, 몸에 털이 많아서인지, 내가 가늠한 미국인들의 나이는 실제보다 항상 몇 살이 더 많았다. 어떨 때는 세대를 달리하는 오차를 범하는 경우도 있었다. 새파란 20대 청년을, 자식을 몇 거느린 중년이라 오인한 경우도 가끔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수염투성인 프리드만 교수의 나이는 꽤 가늠하기 어려운 축에 속했는데 50을 넘었을 거라는 처음의 추측을, 반바지와 샌달이 그나마 낮춰 40대 후반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는 40대 초반이었다.  

“What can I help you?”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준비한 말들을 또박또박 토해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메모지에 적었던 문장들을 읽어내려간 것이었다. 내 이름 석자를 말하고 스물 다섯이라는 푸릇푸릇한 내 나이를 밝히고 동방예의지국의 나라에서 왔다는 말을 할 때쯤 그는 내 말을 가로 막았다.

“저기 의자에 앉아요.”

책 읽듯이 그렇게 아무런 감정없이 또박또박 말하는 내가 조금은 이상하고 또 조금은 신기했는지 그는 책상에 걸친 다리를 밑으로 내리며 앉아있던 의자를 돌려 내 쪽으로 향했다. 그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빈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천천히 몸을 옮겨 두 손을 무릎으로 모으며 얌전히 앉았다. 갓 시집 온 새색시처럼.   


프리드만 교수를 찾아가 보라고 말한 건 민호였다. 이틀 전, 또 저녁을 햄버거로 떼운 후 나는 슬리퍼를 끌고서 그의 기숙사 방 문을 두들겼다.

“첫 학기에 무슨 수업을 들으면 좋을지 조언 좀 구하려구요.”

방금 전에 샤워를 마쳤는지 머리카락에 물기가 묻어있는 얼굴로 문을 열어주는 그에게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건 사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직 강의 신청을 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조언을 구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나의 진심은 다른 데 있었다. 나의 최대 관심사는 다음 학기 등록금이었다. 어떻게 하면 다음 학기에 장학금을 탈 수 있는 지에 대한 정보가 내겐 제일 시급했던 것이다. 그와 얘기하는 도중에 무슨 수업을 들어야하는 지는 대충 윤곽이 드러났다.

“프리드만 교수를 찾아가 보세요.”

당장 다음 학기 등록금이 문제라서, 라는 말을 서두로 다음 학기에 장학금을 받을 가능성이 있나요? 라고 본격적으로 그의 방을 찾은 이유를 꺼집어내기 시작했을 때 내 귀로 ‘프리드만’이라는 이름이 흘러들어왔다.

“다음 학기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이 가장 많은 교수가 프리드만이죠. 가만있자, 프로젝트를 몇 개를 하고 있더라?”

그의 눈동자가 잠시 위로 향했다.

“좌우지간 많이 해요. 우리 과 교수 중에 가장 많아요. 이번 학기부터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도 있으니까 학생이 당장 필요할 지도 모르죠.”

옳거니. 나는 쾌재를 불렀다.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 나는 마치 장학금을 받는 것이 결정나기라도 한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비록 그 가능성이 낙타가 바늘 구멍 지나가는 것 만큼이나 희박하다해도 가능성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면 되었다. 일말의 가능성. 군사를 이끌고 알프스 산을 넘은 누구의 말대로 내 사전에도 불가능이 없었으면 싶었다. 그날 밤 나는 모처럼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한국에 한번 가 보고 싶어요.”

프리드만 교수는 한국에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나라라고 턱을 완전히 덮고 있는 수염을 오른 손으로 문지르며 말하고 있었다.

“Why?”

그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내가 갑자기 Why?라는 한 단어를 툭 뱉어서일까, 그는 턱 수염을 약간 위로 쓸어올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금방 후회하는 심정이 되었다. 한국에 가 보고 싶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 한국은 정말 좋은 나라니까 꼭 한번 가 보기를 권합니다, 라든지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뜬끔없이 왜요? 라니. 마치 한국에 가보려는 것이 이상해서 따질 듯 했으니. 어쩌면 그렇게 짤막한 물음은 사실 내 짧은 영어 회화 실력에 적격이었는지도 모른다. 괜히 길게 물어보았다가 다섯 살난 어린애의 영어 실력보다 낫지 않은 나의 영어 회화 실력만 그의 앞에 절실히 드러나게 되면 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는 없었을 테고, 그렇게 되면 다음 학기 장학금은 더욱 멀어져 가는 것이니까.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어요. 아버지가 목숨 걸고 싸운 나라, 가보고 싶지 않겠어요?”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무뚝뚝하게 Why? 라는 말을 내뱉고 난 후 후회하는 심정이 된 나는 가급적이면 말을 삼가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내가 해야 할 말은 오로지 메모지에 적힌, 내가 달달 외운 말에 한정되어야 했다. 적어도 내가 그에게, 장학금을 받을 능력이 있는 학생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전까지는. 

“한국이 생판 딴 나라로 변했다고 하더군요. 2년 전, 아버지는 한국을 포함해서 아시아 여행을 떠났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로 한국을 다녀온 적이 없던 아버지로서는 당연히 한국의 전쟁통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겠지요.”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의 말이 귀에 속속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인사 정도의 대화 외에는 아무 말도 입에서 나오지 않는 영어 회화 실력의 내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긴 문장을 이해한다는 것이 사뭇 신기할 뿐이었다. 그의 말이 느려서인가. 그는 분명 말을 느리게 하고 있었다. 정말로 다섯 살난 어린 애에게 말하듯이. 내가 구사한 짧은 영어에서 그가 내 영어 회화실력을 간파하기는 어려웠을텐데. 아무튼 나는 그의 말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표시로 고개만은 연신 끄덕이고 있었다.

“한국이 많이 미국화 되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아버지는 전철역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도 먹었다고 했어요.”

서울 도심지에 솟아오른 고층 건물들과, 붐비는 역세권 주변으로 들어선 미국 음식의 체인점들을 떠올리며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말 대신 고개로 대답하는 나를 보며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미소가 사라진 그의 얼굴은 이제 빨리 찾아온 용건을 말하라는 표정인듯 보였다. 아니 내가 나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 좀 더 솔직한 표현이다. 빨리 용건을 말하고 교수실을 빠져나가자. 내가 빨리 교수실을 나가고 싶은 이유는 한국의 교수실에서 느껴지던 그 긴장감 때문이 아니었다. 말했다시피 그의 몸에 걸치고 있는 반바지와 샌달을 통해 긴장감은 많이 완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다. 나는 내 짧은 영어 회화가 영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마침내 그를 찾아 온 용건을 말하는 나는 상당히 직설적이었다. 물론 메모지에 적어놓고 읽고 읽기를 거듭한 문장이었다.

“다음 학기부터 반드시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형편입니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꼭 좀 알려주십시요.”

내 입을 거침없이 빠져 나온 말에는 아마도 비장감도 배어있었으리라. 메모지에는 이렇게도 적혀 있었으니까. 괄호를 친 문장이었다. 목소리의 톤을 좀 내리고 비장하게.

고개만 끄덕끄덕하던 내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게다가 목소리까지 비장감을 띠는 것이 이상했던지 프리드만 교수는 눈을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