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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 목사 기독칼럼] 하나님의 성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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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4:12-40:38은 성소(Sanctuary)가 중심주제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은 피로 맺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과 화목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의 법을 주셨다. 하나님의 법은 그들의 삶의 목적과 방향을 결정하는 생활양식이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에게 제사하는 일이다. 제사는 장소와 제사의 방법을 필요로 한다. 이런 맥락에서 성소는 매우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한다. 성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계신 곳을 찾아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시간과 장소의 벽을 넘어 어느 곳에나 존재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성소를 지을 것을 명령하시고 그들에게 성소를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인간의 본능은 하나님의 임재를 항상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과연 우리 중에 계시는지를 끊임없이 알고 싶어했고 수없이 하나님을 시험했다. 그들은 지도자 모세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고 나타나지 않자 불안과 초조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들의 신을 만들었다. 이방종교의 신을 모신 신전에 가면 항상 신의 모형이나 조각물이 있다. 눈으로 보기 원하는 인간의 심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비록 살아있는 모습은 아니지만 그들이 믿는 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다. 하나님이 계신 성소에는 하나님의 모형이나 조각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 즉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기독교는 눈으로 보여주는 것을 거부한다. 기독교는 눈으로 보는 눈의 종교가 아니라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귀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의 뒤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더 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눈으로 보고 확인하기를 원하며 물질적인 세계에 집착하는 것은 비극이다. 그러나 성소는 이런 비극적인 인간의 본능을 수용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서 직접 경험한 하나님의 임재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들은 그 소중한 만남의 경험을 잊어버리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기를 원했다. 아니, 자신들의 가슴에 만 담아 두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그 경험을 영원히 전하고 싶어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보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성소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산인 시내 산에 도착하여 그들과 하나님과의 사이를 구분하는 거룩함을 경험한다. 출애굽기에서 거룩함과 부정함을 가로질러 하나님과 인간의 영역을 연결하는 수단은 법의 계시와 언약의 성립으로부터 성소의 건축으로 발전한다. 성소는 부정한 곳에 위치한 거룩한 장소이다. 그 곳은 거룩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안전하게 거하시도록 허용한다. 고대 근동 신화에 따르면 산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세상의 중심이며 산에 있는 신전은 신이 거하는 곳으로 산과 도시와 신전이 하나의 동일한 개념으로 연결된다. 마찬가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 도시와 예루살렘 성전은 동일하게 취급된다. 거룩한 시온 산과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이고 생명의 물이 흐르는 곳이며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곳이다(시76:2-3). 성전은 선지자 학개, 에스겔(40-48장), 스가랴(1-8장)의 가르침의 핵심부분을 차지한다. 광야에서의 성소는 하늘과 땅이 만나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며 언약의 돌판을 보관하고 하나님께서 법을 선포하시는 곳이다. 고대 근동신화에는 신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신전을 건축하게 함으로써 이 세상의 창조의 완성을 이룬다. 마찬가지로 출1:1-15:21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애굽왕 바로에 대한 승리를 보여주고 그 후 성전 건축을 위해 하나님의 산으로 이동하는 여정을 기록한다. 그러나 광야에서의 성소의 건축은 창조의 시작이나 완성이 아니라 창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출24:15-18절에 모세가 산에 올라 6일동안 대기상태에 있다가 제7일째 되는 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막 건축에 관한 계시를 받는 것은 천지창조의 과정을 연상케한다. 출40:2, 17은 성막건축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때가 첫 해(New year)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환점을 이룬다. 성소의 건축은 세상의 재창조라고 할 수 있다. 모세가 건축한 성막(Sanctuary, 미쉬칸)과 솔로몬 왕이 건축한 성전(Temple, 베잇 하 미크다쉬)은 다르다. 모세는 왕이 아니다. 따라서 왕이 다스리는 예루살렘과 관계가 없다. 왕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성전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건물이지만 성막은 이동식 임시 성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이 동행한다. 어떤 장소이건 성막이 멈추는 곳은 거룩한 장소가 된다. 성막은 한 곳에 머물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끝없이 이동하는 하나님(God on the move)의 속성을 표현한다. 성막은 창조의 중심이 아니라 창조의 중심을 향해 이동하게 한다. 출15:17-18은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출애굽기를 비롯한 모세오경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향해 이동하는 과정을 강조함으로써 비록 우리의 몸은 현재라는 땅에 머물러 있지만 우리의 눈이 미래를 향하게 한다.                                            

B2BChurch.org 정기원 목사 (480)209-9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