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김 원장 라이프칼럼] 그리움

어제 집에 들어 오면서 밤 하늘에 높이 떠 있는 달을 보고 “아! 참,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네” 하고 미리 나물이며 오곡밥 재료를 준비해 놓지 못한 스스로를 나무랬다. 어쩌면 이것이 한두번도 아니다. 준비해야지 하다가는 가까이 닥쳐 오고 나서야 “앗차, 장 보는 것이 너무 늦었네.” 하다가는 대충 흉내 만 내다가 보내기를 벌써 몇번이던가. 대보름이라고 흉내는 내고 싶었다.
오곡밥 재료가 다 있지는 않아도 늘 잡곡밥은 해 먹으니 콩과 팥, 백미대신에 현미, 찹쌀을 넣고 다른 잡곡이 없어 밤, 당근, 버섯을 넣고 만들었더니 모양새는 닮은 오곡밥이 되었다. “비슷하게 밥은 해 놓았지만 갖추어진 나물이 하나도 없잖아, 어떻해!” 그래도 어쩌랴. 미리 만들어 놓은 도토리 묵으로 김치 송송 썰어서 김 부셔 넣고 한 접시, 그리고 무채를 만들어 기름에 살짝 볶으니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괜히 우리의 명절을 기억하고 싶은 내 유난스러움의 한 장면이다.
대보름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면 그 해의 소원이 이루어 진다니 저녁 먹고 밖에 나가 일년중 가장 멋진 대보름달을 바라 보며 소원을 빌었다. “부패한 정치인들 이 모인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지켜 주소서. 멀리에서 흩어져 사는 가족들과 우리의 건강 지켜 주소서. 약하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게 해 주소서. 그리고 내년에는 꼭 우리의 명절을 잊지 않고 준비해서 이웃들과 함께 나누게 해 주소서.” 좋아하는 시래기 나물도 없고, 고사리, 도라지, 호박오가리, 취나물, 말린 가지나물도 없이 초라한 대보름날의 저녁상이었지만 저렇게 큰 달을 바라보면서 소원을 말한 나의 마음은 달덩이가 내 마음에 들어 온 듯 가슴 한 가득 채워진 즐거움을 느꼈다.
오늘은 저 보름달로 내 마음이 한껒 부풀 었지만 내일이면 다시 눈이 시리도록 맑은 태양이 우리의 삶을 내려다 보겠지. 나이를 먹으면 한가지 이상한 것이 추억 과 그리움이 항상 불어 난다. 나이 먹음 과 그리움, 추억은 같은 분량인가 보다. 온갖 나물과 오곡밥 만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모두 모여 북적이며 준비하는 모습, 먹으면서 얘기가 꽃피는 가족들과의 대화, 아이들은 밥 먹고 밖에 나가 불놀이하는 모습들, 이런 모습들이 더 그리운 것이 사무쳐 나물과 오곡밥 타령을 한 것이 아닌가 마음을 달래 본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내년 정월 대보름 에는 몇집만이라도 함께 모여서 오곡밥 과 나물들을 해 먹어야지” 했던 것이 바로 얼마전인데 그 일년이 왜 이리도 빨리 오는가 말이다. 어디에다 무엇을 매달아 놓았기에 뭘 그리 찾겠다고 이리도 쉼없이 달려가는가. 그래서 일년
에 한번 오는 대보름 명절도 대충 때워 나가는 삶이 싫어졌다.
금년에는 겹겹이 쌓여있던 그리움이 보자기를 풀어 놓는 듯 펼쳐진다.
그리운 것이 어디 하나 둘일까.
우리의 삶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연속 이라고 했던가. 늘 무엇인가를 그리워 하며 살고 있다. 아리조나 사막에는 항상 단비가 그립다. 인생의 때가 덜 묻어서였을까 만나기만 하면 괜히 웃음 이 배어드는 친구가 그립고, 아무 말 없어도 마음과 마음이 통했던 그런 친구 가 몹시 그립다. 어수선한 조국의 모습 을 보면서 결혼전에 양지회 바자회에 참석했다가 바로 앞에서 뵌 적이 있는 주위를 눈 부시게 했던 육영수 여사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사람은 가진 것으로 또는 치장함으로 남에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나이어린 시절이었지만 그 때 깨달았다. 창간호 부터 수집해 놓은 신문과 학창시절부터 쌓아 놓은 책들을 아버지는 어느새 그들을 큰 덩어리로 몇개씩 묶어 다락에 올려 놓는 수고를 하시면서도 한번도 딸에게 듣기 싫은 말씀을 안 하시던 아버지가 너무도 그립다. 겨우 단발머리 를 벗어 난 대학 신입시절, 거인 처럼 보였던 문학계의 큰 선생님들의 문학의 밤에 어린 나를 불러 자작시를 발표하게 했던 큰 사람들이 몹시도 그리운 밤이다.
대보름의 저녁상도 제대로 준비해 놓지 못한 찌질함도 잊어 버리고는 달빛 때문에 솟아 오르는 그리움들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눈가에 촉촉함을 만들어 준다. 꾹꾹 참으며 묻어 두었던 그리움의 조각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내 가슴에 방망이 질을 한다. 살아 온 삶의 연륜이 쌓여 가는 소리가 가슴에 들리는 듯 하다.
그리움으로 가득 찬 내 삶의 소리, 그 소리가 왜 오늘 밤에는 연륜을 만들어 가는 고독한 밤이라고 가르쳐 줄까.
2월6일 2012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