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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김 원장 칼럼] 가을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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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 해가 마치 내 개인사 역사 속의 격동기를 지나온 듯 어떻게 한 해를 보냈는지 너무나 감감하다. 타주에서의 통역 출장업무 요청이 들어와 건강상의 이유로 한동안 쉬었던 일을 다시 시작 한다는 즐거움에 흥분하기도 했다. 하고싶은 일을 마음대로 못 하는 괴로움, 더 해야 할 일들을 병마와 싸우느라고 가슴 속으로 꾹꾹 참으면서 내색을 못하고 그래도 흉물스럽지 않게 살려고 웃음으로 살던 수많은 날들.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나 온 긴 세월동안 아픔과의 전쟁을 생각하면 지금은 진정 기적이라고 자랑 하고도 싶은 심정이다. 그래, 인생의 늦은 가을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기적의 맛이 바로 이런 건가 보다.  



잘못하면 헛 자랑으로 보이기 싫어 내 마음 한가운데 간직하고 키워온 신앙을 갖고 기도와 통곡으로 밤을 지새게 만들어 주신 그 힘을 믿으며 살아왔다. 나를 실험하는 고난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토록 많은 고통의 시간들을 버티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그래서 이제 젊음의 시절도 다 지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렇게 바쁘게 지내도 정말 되는거야?”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 들인다.  



힘없고 처량하게 서 있는 나무가지에 곧 파릇한 새싹이 돋아 나오고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꽃잎들이 피어나 새파란 청춘을 말해 주는 봄이 곧 오겠지. 지루할 정도의 피닉스의 뜨거운 여름을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래도 산과 바다로 활기차게 날아 다니는 청장년들이 있어 여름은 그들을 기다리게 한다. 봄이 있으니 여름이 있고, 여름이 있으니 가을, 겨울을 맞이하는 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순응이라는 법칙을 좋아한다.


  

젊을 때부터 좋아하던 가을이란 계절. 쌀쌀해지는 날씨에 옷깃을 여미고 사색과 책 읽기에 이만한 계절이 없고, 은은하게 뽐내는 추석의 달빛을 바라 보며 달콤한 사랑을 얘기하면서 걷기에 이 보다 더 나은 계절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 그렇게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이란 계절이 나이가 들고보니 젊은 시절에 느끼지 못했던 쓸쓸함과 처량함과 고독함이라는 이상한 감정으로 변질해 가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도 좋아 했던 가을이 작년에는 과연 나에게도 가을이 있었던가 되물어 본다. 추수의 계절과 함께 충만하고 넉넉한 가을이 아니고 움츠러드는 쓸쓸한 가을이 싫어서 어디에 묻어 두었던가. 세월이 화살처럼 빨리 간다고 하지만 인생의 가을은 더 빨리 달려 가고 있었다.



최근들어 자꾸 눈이 가렵고 비비고 나면 눈꼽도 아니고 눈 속이 까슬까슬 하다가는 꼭 딱지가 눈 속에 있는 것 처럼 거북하다. 안과 전문의를 소개받아 가 보았다. 어지간히 유명한 의사인가 보다. 의사는 한 명인데 기다리는 사람도 많고 직원들도 꽤나 되는 것 같다. 아무 탈없던 눈이니 이유나 알아 보자 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의사는 여러 번의 검사를 하더니 우리집의 습도가 얼마나 되는가고 물었다. 속으로는 “이 의사 참도 이상하네, 남의 집 습도까지 물어 보는 의사도 다 있어”.하면서 대충 대답했다. 집의 습도가 너무 건조해서 생긴 증상이라는 말을 듣고 나왔다. 앗차, 역시 내 눈에도 인생의 가을이 찾아 왔다는 말이로구나.  새까만 글씨의 영문 사전도 줄줄 찾아 내던 그 자랑스러운 눈이 이제는 집안의 건조한 공기로 눈이 나빠졌다니. 오호, 통재라, 눈에도 인생의 가을이 들어 오다니.  



오늘 밤에는 작년에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쳐 버린 가을이 그리워 청승맞는 쪽으로 생각이 깊어진다. 젊은 시절에는 너무 슬픈 노래라고 싫어했던 노래가 지금은 현실로 다가 온 노래를 불러 본다.  

     

 아~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아~ 아~ 뜸북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잃어진 그 사랑이 나를 울립니다.

 들녘에 떨고 섰는 임자없는 들국화. 

 바람도 살랑살랑 맴을 돕니다.


02. 10. 2014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