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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김 원장 칼럼] 대보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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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도 참으로 모자란다. 모자라는 사람인가 보다. 해마다 오는 대보름 이건만 왜 그리도 계획도 생각도 항상 늦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스러울 뿐이다. 갑자기 다 늦은 저녁에 내일이 대보름이라는 생각이 떠 오른다 날자를 보니까. 미국에서 사니까 한국의 전통을 모두 잃어 버리고 산다는 핑계, 그 느낌 자체가 싫어서 간단하게라도 모양새는 지키고 싶다. 뭐 그런걸 언제 다 지키고 살겠느냐고 웃어 넘길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우리의 전통 만은 지켜가고 싶어서 유난을 떨고 싶은가 보다.



무엇이라도 만들어 밥상 위에 올려 놓고 무늬만이라도 정월 대보름의 느낌을 만들자 마음먹고 부엌에 나갔다. 늘 잡곡밥은 해 먹는데다 마침 팥도 삶아 놓은 것이 있고, 얼마 전에 사다 놓은 좁쌀도 있으니 오곡밥 만드는 데는 문제가 없네. 시어머니가 며느리 살림 검사하듯 냉장고 안을 조사하니 무나물도 가능, 시래기나물 대신 먹으려고 삶아 놓은 무청잎으로 들기름 넣어 조물조물 무쳐 볶아 놓으면 시레기 나물 흉내는 내겠지. 취나물 한가지 만이라도 더 있으면 참 좋겠다. 대신 콩나물에다 느타리와 새송이 버섯으로 버섯무침 해놓고 내일 점심상은 “대보름 상이요” 하고 남편에게 자랑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 샘 솟는다.  



정월대보름에 잡곡밥과 9가지 나물을 먹는 이유는 나무 아홉 짐을 하고 밥 아홉 그릇을 먹는다. 한가할 때 잘 먹어 두어 그 해 일년 일할 것에 대비한다는 뜻이기도 하며 성씨가 다른 집에서 오곡밥을 얻어 오라는 것은 남의 집 곡식을 고루 먹어 비타민 결핍증과 과다증이 걸리지 않도록 한 선조들의 지혜라고 하니 대보름의 뜻이 이렇게 담겨 있었음도 새로 배웠다.  

대보름날의 나물 반찬들 중에서도 늘 좋아하고 기억에 남는 것은 시래기 나물이다. 들기름으로 느끼하지 않게 맛있게 볶아 내 주시는 엄마의 그 시래기 나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김장날이 지나고 나면 무청을 따로 주렁주렁 엮어서 뒷마당 처마끝에 매달아 놓으시고는 필요할 때면 시래기 나물을 볶아 놓으시고 밥먹기 싫다고 까탈스럽게 투정대다가도 “시래기 나물 해 놓았다” 하시면 금방 일어나서 먹고는 하였다. 그랬던 엄마의 품이 그립고, 매화를 좋아하시던 엄마의 마음이 그립고, 맛을 만들어 내는 엄마의 손맛이 몹시도 그리운 밤이다. 어떤 반찬 보다도 귀한 시래기 나물, 그리고 엄마의 손끝 맛, 보석보다도 더 아끼고 싶은 어린시절의 추억이다.  



시골생활도 안 해 보신 엄마는 어떻게 무청을 엮어서 시래기를 만들 줄 아셨을까? 옛날 어머니들은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도록 태어나셨는가 보다. 시래기는 농촌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알았는데 나는 왜 시래기 나물을 좋아할까? 방학 때면 고향으로 내려가는 아이들을 부러워하지를 않나, 유달리도 입맛 까다로운 내가 시래기 나물을 좋아하지 않나 아무래도 나에게는 시골과 연관되는 유전자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현대에 와서는 시래기는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칼슘, 철, 미네랄과 함께 비타민 A, C, B1, B2 등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해서 귀하게 대접 받는 시대가 되었으니 세상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이국생활에서 맞이하는 명절은 늘 옛 것을 그리워하고 엄마가 해 주시던 그 맛을 그리워하면서 아련한 옛 맛에 빠져 들게 만든다. 몇십년을 미국에서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 주는 음식으로 살아 오던 남편이었다. 아내가 해주는 불고기를 엄마의 그 옛 맛이 아니라고 자신의 손 맛을 탓 하더라는 아내의 푸념을 들어보니 엄마의 손끝으로 만들어 주던 옛 맛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고향이 경상도인 어느 60대 초반의 남편이 아내가 만들어 준 김칫국이 고향에서 먹던 김칫국 맛이 아니라고 아내와 한판 싸움을 했단다. 진한 멸치국물에 푹 끓여 낸 옛적 엄마의 김칫국 맛이 얼마나 맛있었기에 싸움을 다 했을까. 김칫국 때문은 아니겠지만 나중에 들으니 그들은 이혼을 이미 오래 전에 했다고 한다. 오! 잊지 못할 멸치 김칫국이여!!! 



02. 17. 2014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