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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김 원장 칼럼] 안중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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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긴 겨울동안 움추려 있다가 날개를 펼치고 일어나는 계절,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의 계절이지만 3월이 되면 여러가지 생각들이 슬픔을 머금게 한다. 1910년 3월 26일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죽음을 생각하게 하고, 1919년 유관순의 3.1절 만세운동이 떠 오른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비가 오늘 낮에는 제법 줄기차게 내리는 것을 보고 시원한 빗줄기는 좋았지만 날씨는 우중충해 가슴 아픈 대한민국의 굴곡진 역사를 생각하면서 더 우울해 졌다.  


요즘 일본의 아베 총리가 한국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에게 조차도 모자라는 언행으로 연일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물론 해외에 나와 있는 동포들까지도 그의 군국주의 사상과 발언에 대해 미움을 사고 있다. 전쟁이 끝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반성은 커녕 주위의 아시아국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묘하게도 변명으로 일삼고 있다. 지도상의 동해병기 문제라든가 위안부 기림비 마저도 사사건건 방해공작을 펼쳐 세계가 알고 있는 자기들의 수치심을 막아 보려고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옛날에 우리에게 저지른 참상을 생각하면 쉽게 마음 먹고 어떻게 한 방에 쳐 부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마는 21세기의 국가와 국가 간의 외교관례상 함부로 실수를 저지를 수 없는 답답함이 우리들의 가슴을 짓누른다. 조용하다 싶으면 한 번씩 독도문제를 들고 나올 때에도 한 번에 입을 막을 수 없는 현실이 우리의 아픔이다.


일본에게 당했던 우리의 역사를 생각하면 안중근 의사의 거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당시 억눌려 있던 국민들에게 큰 위안이었다고 믿어진다. 안중근 의사에 관한 역사를 늘 관심있게 읽으면서 똑똑하고 용감하고 기개있는 우국충정 (憂國忠情)에 가득 찬 젊은이가 있어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만든다.  


안중근(1879~1910)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권총으로 세 발을 명중시키고 ‘만세’를 부르며 체포 되었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았고, 3월 26일 뤼순(旅順) 감옥에서 당시 31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스스로 지난 30년을 안중근 의사에게 미쳐서 살았다는 박삼중 스님은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기념관’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액자를 소개했다. 스님은 “사진 속 글은 안 의사가 순국하기 이틀 전인 1910년 3월 24일 면회 온 두 아우 정근과 공근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액자 속의 글이 궁금해서 자세하게 읽어 보았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보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고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액자 속에는 안중근 의사의 장인 (掌印손바닥 도장)이 찍혀 있다.  왼손 약지(넷째 손가락) 첫 마디가 없다.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맹세하며 손가락을 끊었다고 한다. 


31세의 젊은 나이임에도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이 이룬 거사를 마치고 만세를 부르는 그 의연함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안 의사의 당당하고 모범적인 언행에 중국 감옥소의 교도관들도, 심지어 그를 경호하던 일본경관들까지 그의 행동에 감동을 받았다는 실화는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길이길이 알려졌 으면 하는 좋은 귀감이다.

그가 남긴유묵(遺墨)들 중에 유독 나의 마음을 흔드는 대목이 있다.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속에 가시가 돋는다)’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이런 정신으로 살아 온 그의 정신이 담긴 일생이 역사에 묻히지 말고 후세 들이 배우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어느 젊은이가 “안중근 의사는 어느 과(科) 전문의였냐”고 묻는 일은 없어야겠다.  



3월을 우울하게 만드는 어느 날에 

03. 01. 2014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