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김 원장 칼럼] 흙 냄새를 찾아

무엇에 홀린 듯 몽롱한 기분이다. 특별히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복잡한 일에 얽매인 것도 아니다. 책을 읽어도 정신집중이 안되고 다른 일을 찾아서 재미있는 일을 해 보겠다고 해도 그것도 안된다. 이게 도대체 무엇일까?
두뇌에도 몸 속에도 산소가 부족한 탓인가 아니면 매일 같은 일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일의 연속 때문인가? 기분전환을 위해 영화관도 찾아 보고, 백화점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람구경도 해 보고 그래도 기분이 풀리지가 않는다. 이렇게 기분이 엉망이던 참에 바로 한주일 전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일어난 후덥지근한 바로 그 기분, 그것인가 보다.
해답을 찾았다. 그렇지않아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 그 어린 청소년들, 새로운 삶을 찾아 제주도로 이사가던 가족들, 구조되지 못한 귀한 생명들과 시신이라도 찾아 달라고 애통해 하는 유족들, 뉴스만 보고도 한동안 가슴이 미어지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왜 교통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차를 뒤에서 박은 젊은 녀석 때문에 이렇게 우울한 나날이 계속되는가 보다. 치료받는 일을 우선으로 하다보니 늘상 하던 모든 일들이 정지되고 해야 할 일들이 모두 바뀌어지니까 정신이 몽롱해진 기분, 풀리지 않는 일처럼 잔뜩 구름이 낀 정신상태가 되었다.
사람이 늘 계획하던 일들을 그대로 하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고 일할 것이 있으면 또 일을 맡아하고 하는 그런 수월하고 평범한 일들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 같은 이 변화를 경험해 보니 쩝쩝한 기분을 빨리 털고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 앉을 것 만 같은 묘한 기분이 엄습해 온다. 일어나야 된다. 이런 하찮은 일로 나를 구속하지 말자.!!
머릿속의 복잡한 노폐물도 배출해서 산뜻한 공기로 산소 공급을 충분히 해 주자. 몸속에 찌뿌듯하게 꽈리틀고 앉아있는 비정상도 모두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신선한 피톤치드 (Phytoncide) 의 공기로 바꿔야겠다. 이런 때 일수록 싫증나도록 매일 밟고 사는 아스팔트 길을 벗어나 보자.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흙길이 그리워진다. 치료없는 날을 골라 페이슨 (Payson)을 찾아갔다. 오래 전에는 종종 갔던 곳이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곳이다. 흙냄새를 찾아 가자. 햇살 환한 산길 속의 인적드문 숲속 길이 아직도 나를 반겨 주는가 싶어 더 없이 기쁘고 반가웠다. 그동안 나 자신을 잃고 정신없이 살아 오더니 바로 자신을 찾아 다시 만나는 일이 이렇게도 상쾌하게 느껴질까. 아! 이거였구나.! 자연을 만나고 신선한 공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곳. 풀포기 하나도 더 사랑스럽고, 이름모를 야생화 조차도 그립기만 하던 자연의 조화. 뺨을 때리며 지나가는 바람의 향기. 이 향기가 나의 마음을 울린다. 자연의 참 모습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가 보다. ‘나’를 빼고 살아왔던 나의 생활.
내 생활의 주인공인 ‘나’를 빼고 무엇을 위해 허둥지둥 살았을까 숲속 길을 걸으면서 인생을 배우고 왔다. 역시 머릿속을 비워야 인생을 배우게 되는가.
페이슨에 가면 늘 들르는 곳이 있다. 20마일 정도 더 들어가면 한참만에 보이는 커피집이 나온다. 마룻바닥이 걸을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나는 오래된 커피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녔으면 마룻바닥이 이렇게도 늙어졌을까.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집. 음식도 팔기 때문에 늘 붐비는 곳이지만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창밖에서 놀던 다람쥐들이 쫑긋쫑긋 함께 놀자고 눈맞춤이라도 하듯 아는 척을 한다. 우리를 기억하나?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이란 노래처럼 ‘마른 꽃 달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하는 노래 가사가 저절로 나올 만 하다. 외로움을 마시는 창가에 앉아서인가 시(詩) 한수가 저절로 읊어진다.
Payson
흙길을 걷고 싶어
페이슨을 찾았네
아스팔트 길로 덮여진 세상
흙길이 걷고 싶어 방황까지 하였다네
흙냄새 맡고 싶어
페이슨을 찾았네
모진 세상 모진 인심 버리고
흙냄새 맡고 싶어 가슴앓이 하였다네
바람소리 듣고 싶어
페이슨을 찾았네
사람소리 사람냄새 버리고
바람소리 듣고 싶어 눈물겨워 하였다네
05. 12. 2014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