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루즈벨트 댐 '태양의 계곡'에 번영을 가져오다(4)-댐 공사 축하 퍼레이드가 피닉스 시내를 누비다

피닉스의 한 여름은 뜨거웠다. 1903년 8월3일, 더위가 온 솔트 강 유역을 매섭게 달굴 때 솔트 강 유역 용수자 협회에 도착한 한통의 편지가 시원한 청량제가 되어 더위에 지친 주민들을 달랬다. 콜로라도 주 덴버의 연방 토지조사국에서 댐건설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파울러는 “미연방 내무성의 히치코크 장관이 협회가 제출한 댐공사 사업계획서를 승인하고 연방 토지조사국에 사업개시를 명령했다”고 편지를보냈다. 이 소식을 접한 온 주민들은 뜨거운 더위도 잊은 채 온 시내가 떠나가도록 환호하며 열광했다. 이제 솔트 강 유역에는 태초 이래 되풀이되던 홍수도 가뭄도 사라지고 영원한 번영만 약속되었다.
매립청 직원 도로측량용 노새와 마차를 구입
그로부터 10여일 후인 8월14일 사업개시를 알리는 구체적인 실체가 서서히 주민들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업을 주관할 공유수면매립청의 직원 뮤렌 (Charles P. Mullen)은 댐공사 용 시멘트를 생산할 공장을 짓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측량기사들과 함께 피닉스를 방문했다. 그는 공장 건설에 필요한 목재를 생산할 제재소가 들어설 시에라 안차스 (Sierra Anchas)에서 리빙스톤 (Livingston)까지 23마일의 새 도로를 내기 위해 측량기사들과 함께 왔다. 뮤렌은 측량작업에 필요한 노새 8마리와 2대의 마차, 그리고 삽과 여러가지 연장을 샀다. 그는 또한 각종 부식과 스토브까지 마련한 후 마차에 싣고 현장으로 마차를 몰았다. 그러나 댐 공사에 필요한 목재를 마련할 제재소는 톤토 베이슨에서 35마일 거리의 와일드 로즈 크릭에 처음으로 세워졌다.
이후 댐 공사를 위한 예비 작업이 속속 진행되었다. 우선 매립청은 댐이 들어설 부지 매수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톤토 베이슨의 일부 땅 주인들은 한사코 토지 매각을 거부했다. 또한 일부 땅주인들은 상시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던 땅을 에이커 당 30 달러를 요구하기도 했다. 매리온 브래드도크라는 사나이는 실제 1918년까지 토지매각을 거부하다 연방정부로 부터 5천달러를 받고 땅을 팔았다. 매립청은 토지수용대금으로 152,415.79 달러를 지불했다.
토지수용을 결사 반대하는 땅주인들
매립청은 이어 시멘트 공장이 들어설 톤토 베이슨 입구 반대편의 솔트 강변까지 이어질 전화선 공사 입찰을 공고했다. 전화선은 피닉스에서 부터 메사, 골드필드, 피쉬크맄, 리빙스톤까지 연결되고 입찰 마감일은 9월21일로 했다.
매립청은 댐을 축조하려면 대략 20만 배럴의 시멘트가 소요된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시멘트 업자들은 공사현장까지 배달하는 것을 전제로 배럴당 9달러를 주장하여 시멘트 대금만 1백8십만 달러가 되었다. 마침 톤토 베이슨 근방에서 시멘트 생산에 필요한 양질의 석회석 광산이 발견되었다. 또한 3마일 거리의 솔트 강변에서 운하를 공사하다 시멘트 제조에 필요한 점토도 발견했다. 이에 따라 매립청은 시멘트를 자체 생산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어 매립청은 자재와 노동력을 현장까지 운반할 도로공사에 나섰다. 글로브에서 공사 예정지까지는 대략 29 마일로 메사에서 현장까지 60마일 보다는 훨씬 가까웠다. 그러나 당시 글로브는 광산도시로 산업기반이 취약하고 주민수도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메사는 여러면에서 편리하나 거리가 멀고 산세가 험해 도로 공사비만 150,000 달러에서 200,000 달러에 달했다. 장차 댐 공사의 상업성을 내다본 솔트 강 유역주민들은 추가 공사비 100,000 달러를 자체부담 하겠다고 매립청과 타협을 보았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도로 신설 공채를 발행하려면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아야했다. 파울러는 이를 해결하기위해 서둘러 워싱턴으로 향했다.
가을철로 접어든 10월14일, 내무성의 히치코크 장관은 연방토지조사국의 왈코트 (Charles D. Walcott)에게 톤토 베이슨 댐 건설을 위해 간접시설 공사를 서둘러 시행하라고 매립청에 지시했다. 이로써 10여년 이상 끌어온 솔트 강 유역의 댐과 저수지 공사는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게되었다. 파울러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솔트 강 유역은 온통 열광에 빠졌다.
내무성 드디어 공사개시를 명령
전임 피닉스 시장 탈보트 (Walter Talbot)와 클라크 (Veron Clark)는 “남은 문제는 형식적인 본 계약뿐으로 이제 어려운 고비는 모두 지났다.”라고 보고 “오늘 이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온 도시가 이 하루를 즐기자”고 했다. 두 사람은 우선 지방 유지들로부터 돈을 추렴한 후 오후 3시 주청사 상무관 사무실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축하식을 알리는 포스터를 시내 곳곳에 게시하는 한편 한밤중 불꽃놀이 용으로 시내에 있는 폭죽을 모두 사들였다. 그리고 피닉스의 악대 파이오니어 밴드는 저녁 7시 축하행진을 하도록 준비했다.
오후 3시 상무관실 모임에는 탈보트와 클라크 이외에 세 사람이 더 참석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인사들은 우선 파울러에게 감사를 드리고 오늘을 축하하기 위해 온 솔트 강 유역주민들과 함께 흥겨운 밤을 갖자고 결의했다. 또한 아리조나에 오늘과 같은 축복을 내려준 루즈벨트 대통령과 히치코크 장관, 왈코트, 맥스웰, 데이비스 등 관계인사들에게 아리조나 주민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전문을 보냈다. 그리고 자리를 함께한 파울러에게도 위원회의 이름으로 감사를 표했다.
피닉스 파이오니어 밴드가 축하행렬을 선도
저녁 7시가 조금 넘자 피닉스의 파이오니아 밴드가 경쾌한 행진곡을 불며 샌터와 아담스 코너에 위치한 아담스 호텔을 지났다. 오늘의 축하식을 위해 휘황찬란하게 전등으로 장식한 아담스 호텔 주변에는 구름처럼 주민들이 몰려들어 오늘을 축하했다. 주민들은 밴드가 “뚜따,뚜따” 행진곡을 흥겹게 연주하며 아담스 거리와 퍼스트 거리, 와싱턴 거리를 행진하는 동안 환호하며 뒤따랐다. 주인을 따라 뛰쳐나온 강아지들도 영문을 모른채 함께 “컹, 컹” 짓어가며 날뛰었다. 그리고 상큼한 10월의 밤하늘에는 폭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화려하게 밤하늘을 밝혔고 주민들은 솔트강을 건너온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저녁 한때를 즐겼다. 이날의 축하행사는 7월4일 독립기념일 축하식과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잠시 후 화려하게 불을 밝힌 4층 규모의 아담스 호텔 발코니에는 아리조나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우선 주지사 브로디 (Alexander O. Brodie)를 비롯하여 호텔 주인 아담스 (John C.Adams), 판사 키비, 맥스웰, 파울러 등이 자리를 함께하여 주민들과 함께 환호하고 축하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댐 공사에 필수적이고 예산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시멘트를 자체 생산하려는 매립청의 계획에 시멘트 업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정부에 압력을 놓기 시작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