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루즈벨트 댐 '태양의 계곡'에 번영을 가져오다(10)-공사장 주변 3마일 '드라이 존' 이내 위스키 반입 금지

솔트 강 주변에 수로 즉 물길을 내는 공사가 한창이던 1800년대 말, 사업주들은 공사장 인부들에게 위스키같은 알코올 음료를 자진해서 공급했다. 사업주들은 알코올이 힘든 노동에 지친 인부들을 달래고 작업능률을 높여준다고 생각했다. 공사장 측에선 아예 하루 12온스에서 20온스의 위스키를 노동자들에게 배급했다.
그러나 공사장의 이런 관행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미국사회에 번진 알코올 기피증에 의해 알코올은 이제 금기물이 되어 공사장 주변에서 알코올을 지닌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아리조나 주는 1914년 처음으로 미국에서 금주령을 선언한 여러 주 가운데 하나로 알코올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인부들에게 하루 20온스의 술을 공급
루즈벨트 댐 공사가 한창일 때 매립청은 “제재소에서 거번먼트 웰까지 즉 작업장 주변 3마일 이내를 ‘드라이 존 (Dry Zone)’으로 선포하고 “이 구역 안에서는 알코올 성분이 함유된 음료수를 취급하지 못한다”고 선언했다. 누구든지 루즈벨트 댐에 관계된 사람이 합법적으로 술울 마시려면 작업장에서 3마일 거리의 아파치 트레일에 있는 피쉬 크릭이나 몰몬 크릭, 토어틸라 프랱 근방이거나 글로브 로 가는 길가에 있는 술집을 찾아 한잔 걸쳐야했다. 그러나 이런 술집은 일용 근로자들이 즐기고 현장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멀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사장 근방인 드라이 존 안으로 알코올을 들여오려는 근로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매립청 사이에는 항상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공사장에서 글로브로 가는 노상에는 공사장 인부들이 즐겨 찾는 술집이 있었다. 1906년 4월 한 아파치 노동자가 이 술집에서 진탕 술을 마시고 사망했다. 매립청의 강한 항의로 이 술집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문을 닫았다.
매립청 항의로 드라이 존 외곽 술집도 문닫아
또한 핀토 크릭과 솔트 강 합류지점에는 아주 오래된 술집이 있었다. 이 술집은 ‘공사장과 3마일 거리’인 드라이 존에 해당되지도 않고 인부들의 숙소인 캠프 촌과도 3-4마일 거리이고 더구나 공사장과는 12마일 거리였다. 어느 날 공사장 총감독 루이스 힐은 어느 공사장 십장이 이 술집에서 술에 취해 엉망이 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불같이 화가난 힐의 항의로 아주 오래된 이 술집도 결국 문을 닫았다.
힐은 텍사스 레인저 출신 보안관 홈스 (Jim Holmes)와 함께 드라이 존 안으로 몰래 반입되는 알코올을 단속했다.
1905년 어느 날 힐과 홈스는 드라이 존 안으로 들어서는 승합마차를 검문했다. 두 사람이 예상했던 대로 승합마차 안에는 와인 4병, 위스키 29병이 나왔다. 이 술은 루즈벨트 캠프 촌의 한 주민이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손님을 대접할 술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술은 모두 쓰레기 통으로 들어갔다.
피쉬 크릭과 톤토 크릭 근방에는 아주 우아한 바를 갖춘 고급 여관이 있었다. 매립청이나 오루크 건설회사 소속 엔지니어들은 주말이면 이곳에서 하루를 즐긴 후 승합마차 편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이때 엔지니어들은 공사장 내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공의 인물을 수취인으로 위스키를 주문했다. 힐과 보안관 홈스는 어느 주말 오후 드라이 존으로 들어오는 마차를 세우고 마차 안을 검색했다. 힐은 마부의 좌석 아래 발판밑에 교묘히 숨겨둔 위스키 한 상자를 찾아냈다. 이 위스키는 공사 현장에는 있지도 않은 “E.G. Lind”가 수령인으로 되어 있었다. 힐은 위스키병을 모두 깨뜨리고 E.G. Lind을 위해 두 병만 남겨두었다. 이 처럼 엄하게 단속해도 노동자들의 캠프 촌 곳곳에는 위스키 병이 나뒹구렀다.
가공인을 수령인으로 위장 밀반입
어느 날 힐은 Ladie’s Home Journal 이라는 잡지에서 진통제로 알코올이 함유된 약을 위스키같은 알코올 대용으로 약국에서 무절제하게 판매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힐은 이같은 처사를 막기 위해 타운 내 약국을 아예 매립청 촉탁의사 Ralph F. Palmer 가 인수하여 운영하도록 했다.
파머는 약국을 인수한 후 재고조사 과정에서 자마이카 산 생강에서 추출한 알코올 성분인 제이크 (Jake)가 50갤런이 들어있는 1배럴짜리 제이크 통 2개를 발견했다. 또한 파머는 한 고객이 레드 잉크를 두 케이스나 사가는 것을 보고 이후 이 레드 잉크가 환각성이 강한 알코올이라는 것을 알았다.
매립청은 루즈벨트 타운 내에 철옹성처럼 견고한 감옥을 세웠다. 1906년 2월 한 지역신문은 이 감옥은 지붕과 벽을 철근 콩크리트로 하고 바닥도 약 1피트 두께가 된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이 감옥은 여름철이면 오븐보다도 더 뜨거워 누구든지 이 감옥만 보고도 감히 죄를 지을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루즈벨트 댐 공사장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작업중 안전사고가 발생하는가 하면 더위와 힘든 작업에 지친 인부들은 사소한 일로 동료와 주먹잡이를 하고 감옥으로 끌려왔다. 또한 루즈벨트 타운 근방에는 살인, 자살, 그리고 각종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아파치 인디안 니얼 (Gilbert Neal)은 취중에 자신을 욕하는 멕시칸 울트레라스 (Juliana Ultreras) 라는 48세 여인을 총으로 쏘아 살해했다. 아파치 니얼은 술에 취한 채 루즈벨트에서 글로브로 향하는 글레이프바인 노상에서 울트레라스 여인에게 요기거리를 청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음식대신 니얼에게 “개ㅇ끼”라고 욕을했다. 이에 격분한 니얼은 그여인의 등에다 총을 쏘았다. 재판정에서 니얼은 만약 백인이 자신에게 욕을 했다해도 총을 쏘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알코홀에 유달리 반응이 강한 아파치
힐은 1911년 미 연방의회 소위원회에서 공사장 내에서의 금주령에 대해 증언했다. 힐은 알코올은 인디안 근로자에게서 유달리 더 심한 반응을 보인다고 증언했다. 그는 멕시칸을 포함한 여러 나라 사람에게 같은 양의 위스키를 마시게 한 후 살펴본 결과 아파치들이 백인이나 멕시칸같은 타 인종보다 더 강한 발작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그 이유는 당시 아파치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이 이유 일 것이라고 했다.
루즈벨트 타운 근방 솔로몬 빌에서는 교수형도 집행했다. 1907년 윌리암 볼드윈 이라는 잡역부는 빵을 굽는 로오라 모리스라는 여인을 강간하고 4살된 딸과 함께 살해했다. 멀리 숲속으로 달아난 볼드윈은 보안관 홈스와 아파치로 조직된 추격대에 의해 체포되어 글로브의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성난 글로브 주민들은 한밤중 손에 횃불을 켜들고 볼드윈을 빼내 자신들의 손으로 처단하려 했다. 그러나 홈스와 그의 보조원은 간신히 뒷문을 통해 볼드윈과 함께 탈출하여 솔로몬으로 피했다. 볼드윈은 이후 솔로몬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