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김 원장 칼럼] 이순신의 정신

미주에서의 ‘명량’ 영화가 오랜기간 상영할 것 같지는 않고 끝나기 전에 보기는 보아야겠고 영화관에 갈 날자를 벼르고 있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영화화 한 것이니 못봐도 할 수 없지 어찌하랴 하는 느긋한 마음이었다. 이씨조선의 마지막 임금 고종이 나라를 빼앗기는 비극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일제의 만행으로 민비의 살해과정을 읽고 있었다. 분하고 소름끼치는 일본인들의 무자비한 악행에 치를 떨고 분을 삭이기 힘든 순간들을 상세하게 알고 넘어가자는 마음으로 계속 읽어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디라고 한 나라의 존엄한 궁궐을 그것도 황후가 거처하는 안방까지 무례한 군화(軍靴)로 쳐들어 올 수 있단 말인가. 약소국가의 약하기 그지없는 고종시대의 몰락이 눈앞에 보여지는 순간이다. 더 미루지 않고 영화관을 찾아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역시 빨리 보고 오기를 잘했다. 마음이 통쾌하다.
그렇지 않아도 고국에서의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가 않다. 어수선하고 불안한 사건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병사들의 구타 및 인권 문제 등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북한에서 김정은이 주겠다는 화환을 받겠다고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나리께서는 황송하게도 북한땅까지 가서 화환을 정중하게 모셔(?) 와서는 국립현충원에 버젓이 세워놓은 모습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서늘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세월호 사건의 후유증 인가 아직도 세월호라는 이름을 가지고 수사권과 기소권까지 포함된 특별법 제정을 안해 준다고 단식을 하는 사람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지도력 없는 야당 지도권의 무능함과 더불어 여,야당 모두 우왕좌왕하는 모습들, 대통령 후보까지 했던 야당의원의 명분없는 단식투쟁 가담,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대통령에게 미루는 모습들로 21세기를 달리고 있는 고국의 모습이 마치 50-60년 전의 혼탁한 사회로 역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부지런히 뛰어도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기 힘든 이 시대에 나라와 국민을 먼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함에도 수준이하의 귀하신? 몸 의원님들이 펼치고 있는 가당치 않은 현실이 눈과 귀를 더럽히면서 꼴불견의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반대파들에게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 이순신에게 모진 고문을 하는 장면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한때의 충신을 그대로 두지 못하고 질투와 모함으로 역적으로 몰아 가는 되풀이되는 역사의 비극이다. 임진왜란 당시 국가의 지원이라고는 水使(수사)와 통제사라는 계급장 뿐이었으나, 23戰23勝을 기록하며 백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이순신을 두려워한 선조와 시기했던 원균, 일본 첩자의 모략이 맞물려 투옥당하고 혹독한 고문을 받게 된 이순신. 하지만, 이순신을 몰아내고 통제사 자리에 오른 원균의 함대가 왜군에 궤멸한다. 원균은 삼도수군 통제사에 오르지만, 등 떠밀려 부산포 진격을 감행하다 풍랑과 식수 부족, 왜병의 기습에 허물어져 170여 척에 달하는 선박을 잃었다. 白衣從軍(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통제사 再(재)임명의 통보를 받는다. 그로부터 2개월 후,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불과 12척의 배로 왜군 함대 133척에 역전승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이순신은 물길이 소용돌이치는 ‘울돌목’을 이용한 전술로 왜군을 침몰시켰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울돌목’의 회오리 물결은 볼 만한 장면중의 하나로 기억에 남는다.
명량 해전은 원균의 참패로 조선 수군이 거의 붕괴된 후 이순신 장군이 수군통제사의 재임명을 받은 직후의 전투이다. 1597년 9월 16일 아침 일본 수군 133 척의 함대가 급물살을 타고 공격해 왔다. 장군은 겨우 12척의 배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의 정신으로 왜군을 물리친 승전보 (勝戰報)다. 이 전쟁으로 당시 아군 함선의 피해는 한 척도 없었고 장병들의 사상자는 60 명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 수군은 함선 31척이 완파되고 장수급 10명을 포함해 3 천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명량 해전이 있던 1597년 9월 16일 이순신 장군의 일기에는 “이번 일은 천행이었다” 라는 한마디로 끝을 맺었다.
영화의 거의 끝 장면에 아들 ‘회’에게 들려준 말이 인상적이다. ‘백성이 나를 끌어준 것이 천행인지, 회오리가 몰아친 것이 천행인지 생각해 보거라’.
옛날에 배웠던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가(閑山島歌)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외워진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 수루에 홀로 앉아 / 큰 칼 옆에 차고 / 깊은 시름 하는 차에 /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가)는 / 나의 애를 끓나니>
08. 25. 2014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602-361-3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