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김 원장 칼럼] 가을은 깊어가는데…

피닉스의 끔찍한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되었습니다. 이곳의 가을도 조국의 산천에서 보던 멋진 단풍의 모습은 없지만, 한껏 가을을 맛보게 해주니 계절의 변화가 바쁜 일상에서 탈출 하여 자꾸 내 자신으로만 묶어 두려 합니다. 선선한 계절이되었으니 ‘나’ 자신을 돌아 보라는 뜻이 담겨 있겠지요.
가을이 오면 여름 옷에서 가을 옷으로 바꾸어 입듯 내 자신을 돌아 보는 귀한 시간을 가져보는 새벽시간은 역시 투명해서 좋습니다. 자기자신을 뚜렷하게 볼 수 있고, 맑게 비어진 머리가 내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듣게합니다. 새벽시간을 즐기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세상과 멀어져 ‘나’를 볼 수 있는 이 시간만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귀한 시간입니다. 한가위의 보름달도 아니건만 마치 달무리 현상의 모습을 한 휘엉청한 밝은 달이 유난히도 빛나고 멀리서 들려 오는 풀벌레의 울음 소리가 어찌 이리도 정겹게 들리는지, 저들도 생각이 있어 가을이면 찾아오는 것일까?
공간이 모자라 프로그램을 줄여야 새로운것을 저장할 수 있다고 통보해 오는 컴퓨터, 프린터의 잉크도 바꿔 넣으라고 신호가 들어옵니다. 아! 이제는 내 안에 꽉 찬 찌들고 답답한 일상들도 훌훌 나를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넣으라는 신호가 나에게도 온 것은 아닌지. 푸르던 나뭇잎들이 어느새 나목으로 변하는 자연의 섭리를 생각해 봅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 어쩌면 새로운 “나” 를 찾아 변화를 가지라는 뜻을 주는 계절인 듯 합니다. 변화되는 자신의 모습을 찾기위해 일상의 되풀이되는 소용돌이에서 버리고 떠나는 일은 새로운 삶의 출발이라고 했습니다.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일깨워 줍니다.
이 가을, 새로움으로 충전된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쳐 줍니다. 변화되는 삶이 아닌 삶은 죽은 삶이라고 했습니다. 다가오는 일에 순응하는 삶, 빛을 잃고 무디어지고, 찌든 물에 고여진 삶을 떨쳐버리는 용기, 도전이 계속되고, 자칫 퇴색해 버리기 쉬운 삶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며 변화하는 삶, 억지와 과시, 허세를 멀리하는 삶, 버릴 때 버릴 줄 아는 자연의 모습을 닮아가는 삶. 그저 얻어지는것이 아니고, 꾸준히 가꾸어 가는 자들에게 만 찾아오는 삶이겠지요.
세계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인도의 크리슈나무르티는 “삶은 놀라울만큼 깊고 넓은 그 무엇이다. 먹고 살기 위한 돈벌이에 그친다면 우리는 삶, 그 자체를 보지 못하게 될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 볼 줄 아는 삶, 부단히 노력하는 삶으로 날마다 새날이 되기를 바라며 “나” 를 돌아 볼 수 있기에 더욱 즐기는 이 조용한 새벽에 마음의 소리를 들어 봅니다. 가을은 깊어 가는데 무엇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수 있을까 조용히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가을하면 먼저 떠 오르는 생각들이 넘쳐 납니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독서의 계절, 사색을 즐기는 것도 깊어가는 가을이라야 더 멋이 있습니다. 하늘거리는 가냘픈 코스모스, 절개의 상징 국화, 우리들 만이 가질 수 있는 귀하고 멋진 가을의 모습입니다. 가끔씩 사람들로부터 실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넓은 나라에서 풍요를 누리며 살다보니 우리가 두고 온 것들, 누리며 살아 왔던 많은 것들을 무시하고 눈앞에 보이는 풍성한 것에 만 만족을 누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입니다. 우리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을 담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가을은 깊어 가는데 생각이 많아지는가 봅니다.
가을의 상징 국화를 볼 때면 떠 오르는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을 참 좋아합니다. 수천년의 역사에서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항상 상국(上國)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시인들이 미당(未堂) 서정주의 시를 읽고 나서 한국을 시(詩)의 상국(上國)이라고 극찬했다는 말에 우쭐해집니다. 감화력의 주인공 이라는 찬사와 ‘언어의 연금술사’라 칭함을 받는 이유 입니다.
국화옆에서
미당 서정주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던
머언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10. 13. 2014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602-361-3202 kccaz@ms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