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사막의 배' 낙타, 아리조나 황야를 달리다(5) 다시 낙타를 찾아 중동으로

웨인은 데이비스 장관에게 무사히 배가 도착했음을 알리기 위해 작은 쪽배에 옮겨타고 뱃전을 넘나드는 파도를 헤치며 육지로 향했다. 그리고 데이비스 장관에게 “낙타를 실은 서플라이 호는 지중해의 거친 파도를 뚫고 무사히 미대륙에 도착했음을 귀하에게 보고하게 되었음 기쁘게 생각합니다. 출발할 때보다 한 마리가 더 늘어난 34 마리의 낙타가 무사히 도착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정박한지 이틀이 지나도록 낙타를 하역할 거룻배는 서플라이 호 곁에 댈 수가 없었다.
항해중 1마리가 늘어나 34마리가 도착
5월2일 웨인은 낙타를 운반할 2척의 거룻배를 간신히 서플라이 호 곁에 대었다. 선원들은 낙타를 밧줄로 연결하고 공중에 매달아 범선에 옮기려 했으나 거친 파도 때문에 제대로 옮겨실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낙타 하역에 며칠을 허비했다. 웨인과 포어터는 드디어 거룻배로 낙타를 하역 하겠다는계획을 포기하고 대신 물결이 조용한 강하구로 이동하여 낙타를 실어내기로 했다.
두 사람은 서플라이 호를 미시시피 강 하구 사우스웨스트 패스에 정박하고 5월14일 작은 범선에 낙타를 옮겨실었다. 미시시피 강하구의 물살은 그런대로 낙타를 옮겨실을 만했다. 그날 저녁 8시경 34 마리의 낙타는 인디아나놀라의 해안가에 마련된 우리로 모두 옮겼다. 다행히 낯선 땅 미국에 첫발을 디딘 34 마리의 낙타 중 한 마리가 발에 약간의 상처를 입고 세 마리가 항해 중 오랜 결박으로 다리에 약간의 부종을 보였을 뿐 나머지 낙타는 그런대로 건강했다.
데이비스 장관은 낙타 34 마리가 무사히 미국 땅을 밟았다는 웨인의 보고에 뛸듯이 기뻐했다. 더구나 낙타구입비로 가져간 2만 달러 중 단돈 8천 달러만 집행하고 1만2천 달러가 그대로 남아있다니 더 많은 낙타를 구입할 수 있지 않은가. 데이비스는 한 차례 더 중동으로 나가 낙타를 데려오기로 했다. 데이비스는 해군 성으로부터 서플라이호를 이용해도 좋다는 양해를 받았다. 그러나 웨인 소령은 이미 도착한 낙타로 낙타부대를 설립해야 하므로 대신 포어터와 히프를 2차 낙타구입 책임자로 추천했다. 그리고 이번에 함께 미국 땅을 밟은 낙타몰이꾼 중에서 3명을 다시 데려가 낙타를 돌보게 하라고 조언했다.
다시 중동으로 떠난 서플라이 호
2차 낙타구매팀 책임자가 된 포어터는 우선 재무성으로부터 받은 1만 달러를 중동지역에서 사용하기 편하게 프랑스 돈으로 환전했다. 그리고 연봉 2천 달러(실 경비는 별도)에 히프와 계약을 맺고 동행하기로 했다. 포어터와 히프는 지중해에서 작전중인 소함대에 군수품을 전달할 서플라이호 편으로 7월 뉴욕을 떠나 이탈리아의 라 스페지아 항을 향해 출항, 9월11일 도착했다. 포어터는 데이비스 장관이 이집트 총영사 드 레온에게 부탁하여 낙타의 외부 반출허가를 태수로부터 확보했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유효기간과 낙타조달지역에 문제가 있어 대신 터키의 스미르나에서 낙타를 구하기로 했다.
서플라이 호가 라 스페지아에서 군수품을 하역하는 동안 히프는 여객선 편으로 스미르나로 향했다. 10월19일 히프는 포어터에게 이미 낙타 20마리를 확보하고 지방 영주로부터 낙타 6 마리를 선물로 받아 모두 26 마리의 낙타를 손에 넣었다고 연락했다. 히프는 또한 확보한 낙타는 지난 번 제1차 낙타 구매시 사용했던 우리에 안전하게 보관중이라고 했다.
히프는 포어터가 스미르나에 도착하기전 나머지 14 마리의 낙타를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이태리 사람을 조수로 고용한 후 함께 지방으로 내려가 낙타를 수소문했다. 낙타 값은 지난 번에 비해 값이 많이 오른 대신 낙타들은 좀 더 건강해 보였다. 히프는 또한 낙타 안장과 낙타 덮개를 한 벌에 13 달러 50 센트에 현지 주민에게 특별 주문했다.
스무하루 동안 겨우 35 마일 항해
라 스페지아에서 하역을 마친 포어터는 스미르나를 향해 배를 몰았다. 그러나 서플라이 호는 유난스레 거친 해풍에 가랑잎처럼 너른 바다를 맴돌면서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뱃전에서 소리치는 선장과 선원들의 고함소리는 파도소리에 묻혀 버리기를 며칠. 서플라이호는 스무하루동안 겨우 35 마일을 항해하는등 파도와 싸우면서 스미르나에 간신히 입항했다.
히프는 나이가 3, 4년 정도된 젊은 낙타 44 마리를 확보한 채 포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히프가 확보한 낙타는 숫놈 쌍봉 낙타 2 마리, 숫놈 단봉낙타 3 마리, 단봉.쌍봉 혼혈종 한쌍, 그리고 암놈 단봉 낙타 37 마리로 모두가 젊고 건강한 낙타였다. 암놈 대부분은 임신중이라 3, 4개월 내에 모두 새끼를 낳을 예정이라고 했다. 낙타의 안장과 덮개도 모두 마련되고 이제 떠나는 날 만 기다리게 되었다.
포어터는 출항에 앞서 배에 실려 대서양을 건널 낙타 44마리를 돌 볼 현지인 10명을 11월15일자로 고용했다. 성인 9명과 1명의 소년은 월 급여 15 달러에 최소 6개월간 고용토록 했다. 그리고 계약 만료시에는 50 달러의 퇴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들 중에는 이후 서부 변방에 이름을 남긴 하지 알리(Hadji Ali), 조오지 카라람보 (George Caralambo)도 이 때 미국 땅을 밟았다.
월급 15 달러에 현지인 10명 고용
낙타 44 마리를 태우고 서플라이 호는 거친 파도를 뚫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파도가 어찌나 심한지 포어터는 출항하고 보름이 지나도록 옷을 벗고 침대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뱃길은 거칠었다. 서플라이 호는 말타에 들려 잠시 바람을 피하고 휴식을 취했다. 낙타들은 파도에 배가 휩쓸릴 때 부상을 입지않도록 갑판에 단단히 결박해 놓았다.
서플라이 호를 부셔버릴 듯 맹렬하게 내려치던 바다가 어느 정도 가라안자 배는 순풍을 달고 대서양을 넘어 텍사스로 향했다. 예정보다 2주나 앞서 서플라이 호는 1857년 1월30일 미시시피 강 하구에 도착했다. 포어터는 44 마리의 낙타를 확보하고 히프에게 2천 달러를 지불했음에도 재무성에서 받아간 1만 달러중에 아직도 돈이 남아있었다.
항해 중 낙타 3 마리가 죽었다. 그중 2 마리는 쌍봉 낙타였다. 쌍봉 낙타 1 마리는 서플라이 호가 바람을 피해 말타에 피항 중 갑자기 죽었다. 아마도 배가 파도에 흔들릴 때 너무 놀라 사망한 것 같다고 했다. 나머지 2 마리는 밥도 잘먹고 아주 건강했다. 그러나 이 2 마리도 별다른 징조없이 갑자기 죽었는데 이 두마리도 놀라서 사망한 것같다고 했다.
41 마리 낙타 미국 땅을 밟다
왜곤 마스터 알버트 레이가 텍사스로 낙타를 데려가기 위해 수와니 (Suwanee ) 호를 몰고 미시시피강 하구로 달려왔다. 며칠 후 41 마리의 낙타는 작은 범선에 실려 텍사스의 인디아나노라 해안가 우리로 옮겨져 1857년 2월10일 병참장교 바케렌(W.K.van Bakkelen)의 지휘아래 우리로 옮겨졌다. 무사히 임무를 마친 포어터와 히프는 뉴욕으로 가서 데이비스 장관에게 그간의 일정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스케치에 능한 히프는 여행 중 작성한 세밀한 스케치를 보고서에 첨부하여 함께 제출했다.
서플라이 호가 스미르나에 정박중이던 1856년 11월, 미 본토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 제임스 부캐넌 (James Buchannan)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꾸며진 조각에서 그토록 낙타부대를 실전에 배치하기 위해 애쓰던 데이비스는 국방장관 직에서 물러나고 대신 존 B .프로이드(John B.Floyd) 가 새 국방장관에 발탁되었다.
한편 캠프 버어디에서 바쁘게 낙타부대를 창설하던 웨인소령도 그 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