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김 원장 칼럼] 가을에 띄우는 편지

경은아, 가을이면 스산한 기온에 따끈한 녹차 한잔 앞에 놓으면 누군가에게 마음 속의 이야기들을,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띄우고 싶은 마음이 안개꽃 처럼 피어 오른다. 짧고도 귀한 피닉스의 가을!! 낮이고 밤이고 늘 누군가에게 계속 편지를 띄우고 싶어 진다. 부지런히 바쁘게 사는 것 같지만 빠르게 사는 건 또 싫은 거야. 한가하게 새벽시간에 앉아서 편지쓰는 시간을 더 좋아하니 말이 되는걸까? 느림의 생활을 더 즐기는 것 같애.
먼 하늘 나라에 계신 부모님께도 아뢰고 싶은 말들이 많아 주소없는 편지를 띄우고 싶다. 부모님 뜻대로 남은 형제들이 아직도 요즘 세태로 말하자면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하고 바르게들 살고 있으니 걱정마시고 편안히 쉬시라고 할까봐. 옛날 학창시절 너무도 큰 사랑을 주셨던 선생님들께 안부 편지를 띄운다면 얼마나 반가워 하실까? “이 녀석 그리도 귀여워해 주었건만 결혼한다고 인사 오고는 감감소식이네.” 그러시겠지?
그리고 너희들과도 우매할 정도로 지켜오는 우정이 있어 유난히도 청명한 날씨 만큼이나 마음을 뚫어 볼 것만 같은 가을 하늘 때문에 이 진솔한 마음을 글로 띄워 보고 싶구나. 이렇게 오랜세월 다른 하늘아래 살면서도 너희들과 마치 옆에 있는 것 처럼 대화를 잃지 않고 살아 온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아직도 옛날의 그 마음이 여전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아마도 우리는 바보들이 아닌가 싶다. 어찌 변할 줄도 모르고 들쑥날쑥 할 줄도 모른단 말이냐? 몇 십년을 미주 땅에 살면서도 너희들과 같은 친구들을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이더냐.
경은아, 최근에 한국시단(詩壇)의 대모라고 불리는 홍윤숙 시인이 돌아가셨더구나. 우리보다 훨씬 윗세대였지만 그의 시 작품들을 읽으면서 새파란 나이에 감성에 빠지고는 했던 우리의 날들이 언제였던고. “내가 쓰고 싶은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지.
“머리 꼿꼿이 세우고 세상과 맞서는
은장도 서슬 푸른 시절은 이미 지났다
이제부터는 연푸른 잎사귀에
이슬 맺혀 잠시 반짝이고 촉촉이 젖어
아득한 먼 곳에 그리움 전하는
연보라빛 가을 들국화 같은
작고 애틋하고 따뜻한 시 쓰고 싶다
경은아, 너희 부부가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던 일도 다 끝냈으니 마음껏 인생을 즐길 때가 아니겠어. 한강변의 코스모스 밭이 장관이라고 하던데 코스모스 감상에 미당 서정주 선생이 노래했던 국화꽃 밭도 둘러보고 여유있는 삶을 즐기기 바란다. 이 가을 놓지고 싶지않은 보석 같은 날들이 아니겠니? 하지만, 이곳 피닉스에는 그렇게 가을정서를 흠뻑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곳이 없어서일까 한인들의 감정도 메마르고, 서로를 헐뜯고 해치는 일은 쉽게 하면서, 아끼고 존경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민족성인가 생각해 보는 날들이 많아졌다. 어떻하겠어, 인생이 그런것을.
시골길과 흙길이 그리워서 적당한 곳을 찾아 갈 때가 있어. 아패치 트레일이라는 곳인데 마치 옛날 자동차가 없던 시절 서울 변방의 오솔길을 걷던 기억을 되살려 주어서 더 정이 가는 길이기도 해. 그 어디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만나기 쉽지 않아. 시간만 허락되면 흙길을 밟으러 자연을 찾아 간다. 물도 있고, 산도 있고, 울창한 숲이 있으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니.
경은아, 우리가 결혼 결정하고 너와 둘이 만나서 남편될 사람을 소개 했잖아? 그 때 그 사람과 지금도 즐거울 때 웃고, 슬플 때 울고, 사랑할 때 깨 쏟아지고, 그러고 살지 뭐. 늘 함께 하면서도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은 너희들이 멋있고 재미있다는 그 유머러스한 남편 때문이야. 또 각자의 컴퓨터 방에서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는 이유도 있어. “지금부터 한 시간 후 쉬는 시간에 만나기” 하고 헤어지면 자기 방에서 운동게임을 보고 뉴스와 시사토크를 보고, 나의 경우는 지금처럼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는 시간과 책 읽는 시간이야. 나에게 녹차도 갖다 주고 간식거리도 배달해 오고 그래서 사는 재미가 있다고 해야할까?
살아 보니 인생도 결혼생활도 특별한 것 같다가도 또 별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더라. 사랑의 끈을 놓으면 안되고, 상대방을 최고로 생각해 주고, 끊임없는 배려야말로 행복한 결혼생활의 정석이라고 믿어. 너희도 우리도 건강하게 살면서 보람있는 삶을 끝까지 만들어 가자.
11. 01. 2015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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