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유형지 바스크 레돈도로 가는 나바호 족의 '멀고도 먼 길' – 양민을 살해하고 범인이라고 넘겨

비단을 찢듯 날카로운 비명이 한낮 요새의 지루한 정적을 깼다. 비명에 이어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한 손에 활을 거머쥔 나바호 전사가 급히 말을 몰고 요새 정문을 향해 말을 달렸다. 한 흑인 소년이 주저앉아 한명이 오른쪽 어깨를 뚫고 나온 화살을 뽑으려 버둥거렸다. 달리는 말 뒤편에는 붉은 먼지가 자욱하고.소년 곁에는 검붉은 피가 흥건했다.그리고 고통에 혼절한 흑인 소년의 손안에는 부러진 화살대만 쥐어져있었다.모두가 한 순간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흑인 소년이 지나치자 무슨 생각이났는지 나바호 전사는 팔다남은 담요를 둘둘 말아 말에 실었다.그리고 재빨리 말에 올라탄 나바호 전사는 앞서가는 흑인 소년 뒤로 말을 몰았다. 그리고 소년을 향해 활시위를 날리자 화살은 소년의 어깨를 관통했다. 순간 비명을 지르며 나뒹구는 소년을 뒤로하고 나바호 전사는 채찍을 휘두르며 말을 몰고 달아났다.
7월의 나른한 정적에 쌓여있던 요새는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쓸어지면서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흑인소년 짐은 브륵스 요새사령관의 시동이었다. 당시에는 사령관의 시동에 대한 공격은 사령관에 대한 공격으로 여겼다. 화살을 맏은 소년은 곧 주민들에 의해 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가슴 속 깊이 밖힌 부러진 화살은 제거할 수가 없었다.
사랑에 실패한 화를 살인으로 풀어
다음날 아침 브륵스 소령은 라르가스 추장을 요새로 불러 당장 자신의 시동을 공격한 범인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라르가스 추장은 태연히 앉아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계산했다. 이날은 브륵스 소령의 병사가 매뉴엘리토의 가축을 살해한지 만 6일만이었다.브륵스는 마뉴엘리토에게 병사들이 죽인 양에 대해 전혀 보상하지 않았다.라르가스 추장은 브륵스에게 지금 쥬니 마을에 가는 중이지 돌아와서 사건의 경위를 알아보겠다고 성의없게 응답했다. ‘짐’ 소년은 화살을 맞은지 사흘만인 7월15일 사망했다.
브륵스 소령은 쥬니 마을을 방문하고 7월21일 돌아온 추장 라르가스에게 20 일간의 여유를 주고 짐의 살인범을 인도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브륵스 소령은 나름대로 나바호 징벌을 위해 나바호족들의 촌락이나 방목장 ,농경지등을 세밀하게 조사했다.
한편 첩자 겸 통역 후안 루세로는 짐의 살인범은 투니차 산 근처에 사는 부유한 부족의 전사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 부족들은 부족원이 범인일 경우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타부족에게 범인을 양보하지않는 전통이 있다고했다.
첩자 루세로에 따르면 짐의 살인범은 화풀이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짐’을 살해했다고 전했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바호 전사는 마을의 어느 여인을 사랑했다. 몇 차례 구애도했고 어느 때는 외딴 곳에 살림터를 마련했으니 그곳에 가서 행복하게 살자고 애원도 했으나 여인은 이 전사의 사랑을 계속 외면해왔다. 어느 달 밝은 밤, 마을에는 축제가 열렸다. 곱게 차려입은 나바호들은 둥글게 자리잡고 북을 치며 찬가를 부르고 조상대대로 축복을 추는 땅을 깊게 딛으며 춤을 추고 밤을 즐겼다. 이날도 이 전사는 여인에게 사랑을 호소했으나 사랑을 얻지못했다. 드디어 이 전사는 여인의 옷을 찢어가며 여인에게 화를 내고 집에 돌아와 담요 몇장을 말에 싣고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요새에 나타나 담요 몇장을 길마당에 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화를 다스렸다. ‘짐’이 그의 곁을 지날 때 순간 화가 끓어오른 이 전사는 살인을 통해 화를 풀었다. 이후 마을로 돌아온 이 전사는 마침내 여인의 사랑을 얻고 두 사람은 어느 외딴 곳으로 달아났다고 루세로는 브륵스 사령관에 사건의 전말을 전했다.
20일 말미를 주어도 살인범 인도를 거부
브륵스가 말미를 준 20일이 지나도록 살인범을 내놓지 않자 브륵스 소령은 대대적인 나바호 징벌작전에 들어갔다. 우선 브륵스 소령은 나바호 족과 앙숙인 유타 족들을 충동하여 나바호 부족을 약탈하게 하는 한편 쥬니 족 출신 첩자 루세로에게는 뉴 멕시칸들을 모집하여 나바호 족에 대한 대대적인 첩보를 수집토록했다. 루세로가 고용한 첩자들에게는 최소한의 보수만 지급하고 대신 나바호들로부터 약탈한 노획품을 넉넉하게 나누어주기로 약속했다.
뉴 멕시코 주둔 사령관 갈란드 장군의 명령에 따라 마일즈(Dixon S. Miles) 중령은 9월20일 용기병대의 A중대와 5보병대의 C중대등 모두 124명의 병사를 이끌고 디화이언스 요새에 도착했다. 2일후 마일즈 중령은 나바호 족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힌 산도발을 소환하여 가능한한 많은 부족장들에게 9월9일까지 살인범을 인도하지않으면 큰 재앙이 따를 것이라 경고하도록 했다.
이후 산도발은 계속 요새에 나타나 살인범은 한때는 베어 스프링스에 나타났다가 지금은 라구나 네글라 근처의 깊은 동굴에 은신 중이라는 첩보를 날라오기도했다. 6일 산도발은 요새로 달려와 살인범이 추스카 근방에서 죽기살기로 저항하다 체포되었으며 다음날 살인범을 틀림없이 인도하겠다는 라르가스 추장의 약속을 전했다. 그러나 7일 산도발은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요새에 다시 나타나 살인범은 체포도중 입은 상처로 사망했다는 추장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추장은 이미 죽은 살인범을 요새로 운반할 마차를 빌려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일즈 중령은 추장의 제의를 거부하고 대신 시체를 싸도록 담요를 주었다. 그리고 8일 시체를 인도하겠다는 추장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살인범이라며 젊운 총상입은 시체를 인도
사체를 인도하기로 한 8일 늦은 아침 중무장하고 말을 탄 3백명-5백여 명의 나바호 전사들이 요새 근방에 모여들었다. 요새주위는 긴장감 마저들었다.
11시경 산도발을 따라 사망했다는 살인범을 말에 실은 나바호 부족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마일즈 중령은 나바호들의 간계를 의심하고 범인이라는 사망자를 조심스레 검시하기로했다. 즉시 요새 군의관 보좌인 매키(J.Cooper McKee)의 지휘아래 검시가 시작되었다. 옷과 얼굴, 머리가 온통 진흙투성이인 사망자를 우선 깨끗하게 씻었다. 검시결과 5피트 3인치 정도의 키에 18세가 넘어보이지 않는 사망자는 가까운 거리에서 왼쪽 눈과 복부에 총격을 받고 어깨는 날카로운 창에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사망자는 총격을 받은 후에도 얼마간 살아있었으나 7일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했다. 그리고 검시관은 사망자는 20세 미만으로 보이고 ‘짐’의 살인범은 40세 정도였다는 목격자들의 말을 감안할 때 이번 사망자는 살인범인이 아니라고 결론냈다.
나바호들의 이같은 기만에 대해 마일즈를 비롯한 병사들은 몹시 분개했다. 새로 부임한 나바호 대리인 요스트(Samuel M.Yost)는 즉시 나바호 부족장 회의를 소집하고 앞으로 나바호 부족을 대리하여 어떠한 역활도 하지않겠다고 선언했다. 브륵스 소령도 더 이상 나바호 족과 대면하기도 싫다는 마일즈 중령에게 이제 남은 것은 나바호에 대한 징벌 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두 번에 걸친 나바호들의 간계에 격분한 마일즈 중령은 다음 날 9일 명령 4호를 통해 “미 합중국을 모욕하고 무법을 일삼는 나바호족을 응징하기 위해 9일 오전 8시를 기해 병사들은 12일치 전투식량을 휴대하고 나바호족을 수색하러 나설 것”을 명령했다.
9월9일 아침,마일즈 중령은 기마소총대 A, I중대와 F중대,글기고 제 3보병대의 B중대와 C중대의 일부 분견대를 지휘하여 나바호 영토로 진격해들어갔다. 마일즈의 대부대는 첩보로 고용한 쥬니 인디안 루세로가 많은 뉴 멕시칸을 앞세우고 안내했다.
첫날은 요새 북방 12마일 지점의 이웰스 대위의 야양장 부근에서 야영하고 다음날 새벽 6시30분 병사들은 첩자들의 안내를 받아가며 서족으로 행진했다. 그리고 2시간 가량 전진한 후 완전 무장한 말을 타고 병사들의 뒤를 쫒던 나바호 전사 한명을 생포했다. 마일즈 중령은 첩자들의 보고와 포로를 심문한 결과를 종합하여 나바호들은 천연의 요새 세이 협곡 주변에 몰려있음을 확인했다. 이날밤에도 나바호들은 산발적으로 야영중인 병사들을 공격하며 귀찮게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