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칼럼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유형지 바스크 레돈도로 가는 나바호 족의 '멀고도 먼 길' – 추위와 기아에 지쳐 무조건 항복

new1.jpg



황금물결이 출렁이며 누렇게 곡식이 익어가던 들판이 벌써 몇 번이나 불바다가 되었던가. 살찐 양이나 말, 소가 도륙되고 끌려간  적이 몇 번인가. 그토록 용감하던 전사들은   활 한 번 제대로 당기지 못하고 죽어가고 부녀자나 어린 아이들은 울부짖으며 손발이  묶인 채 짐승처럼 끌려갔다. 무서운  백인 병사들을 피해 들짐승처럼 바위 틈이나 나무 숲에서 목숨을 지켰던 나바호들은 이제는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11월로 접어든 파란 하늘에는 벌써 대륙을 달려온 찬바람이 가득하고 언제부터인가, 새들은 무리지어 남쪽으로  날고 있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눈보라가 사정없이 내리치는 겨울이 성큼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추위를 가릴만한 변변한 옷이나, 배가 고파  칭얼대는 어린 아이들에게  끓여줄 낱알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곡식이 있다해도 적이 두려워  연기를 내고 불을 피울 수도  없었다. 그나마  몸을 거두었던 초막은 모두 불타지 않았던가.  이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길은 무조건  손을 들고 백인들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 뿐이다.

초췌한 모습의 나바호 전사 몇 명이 디화이언스 요새를 찾았다. 잔뜩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한 전사들은 조심스럽게 나바호 대리인 요스트(Samuel M.Yost)와 마일즈 중령을 만나자고 했다. 요스트와 마일즈를 만난 전사들은 이제 백인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겠으니 더 이상 징벌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30일간 휴전기간중 모든 걸 처리하라

11월6일 마일즈와 요스트는 인디안 총감독 콜린스 (James L .Collins)에게 나바호 부족들이 화평을 간청한다는 사실과 함께 가능하면 나바호들과 다시 평화협정을 맺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콜린스는 나바호에 대한 3차례의 징벌작전은 충분하지 않아 더욱 강력한 징벌작전을 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콜린스는 즉각 요스트에게 나바호들의 요구에 응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보냈다.

11월 22일 콜린스는 본빌 대령을 만나 나바호 족과의 전쟁 종료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들의 고유권한임을 확인하고 요스트 대리인에게 나바호 부족장 15명 내지 20여 명을 알부퀘키로 데려와 자신과 직접 면담하도록 통보했다. 

콜린스가 본빌을 만나 이같은 결정을 하기 전인 11월20일 요스트와 마일즈는 나바호 족 대추장 자르시라스 라르가스, 아르미호, 호레로와 바그본시토 등 비중있는 부족장들을 요새로 불러 30일 간의 휴전을 맺었다. 그리고 휴전기간 안에 브륵스 사령관의 시동 ‘짐’의 살인범을 잡아 요새로 압송하고 요새에서 약탈해간 군용 가축을 돌려주는 한편 뉴 멕시칸 포로도 모두 풀어주도록 했다.

30일간의 휴전기간 안에 이 조건을 모두 이행한 후 정식으로 평화 협정을 맺기로했다.


8개항의 휴전 추가조항을 제시

요스트와 마일즈로 부터 나바호 족과의 휴전안을 보고 받은 콜린즈와 본빌대령은 불같이 화를 내고 미 합중국의 위대한 힘을 아직도 모르는 나바호족과의 휴전안은 무효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콜린즈와 본빌은 뉴 멕시코 영토 내에 사는 모든 주민은 나바호의 약탈로부터  안전이 보장될 수 있도록 8개 추가조항을 이행할 때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고 했다.


콜린스와 본빌대령이 마련한  8개 추가조항은

1) 나바호 족의 현재 동쪽 국경을 다시 조정하고 2) 1858년 메리웨더 지사와 평화협정을 맺은 이후 약탈한 14,000 달러에 해당하는 가축에 대한 완전한 변상 3) 변상은 전부족이 공동책임지며 4) 나바호가 소유중인 전쟁포로는 즉시 송환하고 5) ‘짐’ 소년의 살인범은 즉시 압송하며 6) 미합중국은 필요시 나바호 영토내에 병력을 주둔하고 7) 나바호 족은 전 부족을 대표하는 대추장을 선출하고  8) 부족으로부터 배척받는 산도발과 그의 부족이 새로운 동쪽 경계 근방에서 거주할 수 있게 허용한다 등 모두 8개 사항이었다. 

12월10일 콜린스와 본빌은 휴전에 필요한 추가조항을 요새로 내려보내고 자신의 허락없이 나바호 족과 30일 간의 휴전을 맺은 나바호 대리인 요스트를 심하게 견책하는 경고장도 함께 동봉했다. 

한편 마일즈와 요스트는 콜린즈와 본빌의 요청대로 영향력있는 부족장 20여명에게 알부퀘키에서 콜린스와 본빌을 만나 휴전협정안을 체결하도록 설득했으나 이미 백인들을 믿지않는 부족장들은 한사코 알부퀘키로 가기를 거부했다.


전 부족은14,000 달러를 변상하라

나바호 부족장들이 면담을 거부하자 콜린스와 본빌이 직접 요새로 내려가 나바호 부족장들을 만나 담판 짓기로 하고 12월 14일 요새로 향했다. 한겨울 뉴 멕시코의 날씨는 무척 추웠다. 콜린스와 본빌은 눈조차 뜨지못할 정도로 심한 대륙을 달려온 눈보라를 헤치며 일주일 만인 21일 요새에 도착했다. 그리고 4일 후에 25명의 부족장들은 8가지 추가 조항을 받아들여야 했다. 

회의에 앞서 나바호들은 콜린스와 본빌로부터 그간의 행실을 심하게 질타 당했다. 그리고 부족장들은 두 사람으로부터 나바호와 백인간의 화평은 나바호들이 백인의 말에 무조건 순응할 때만 이루어진다는 훈시를 들었다.


풍요를 주던 땅도 빼앗기다

콜린스와 본빌이 제시한 휴전에 따른  추가조항은 많은 문제점이 있었으나 나바호들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했다. 우선 기존 영토를 변경한다는 것은 이제 나바호들에게 가축을 기르고 옥수수같은 곡물재배를 포기하고 미국정부의 보조만으로 살아가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요스트도 이제 나바호들의 약탈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바호들은 대략  2십5만 마리의 양과 6만 마리의 말을  동쪽 경계 즉 투니차 평원과 추스카 계곡에 연이은 산근처에서 키웠다. 그리고 콜리타스, 베어 스프링스, 추스카, 오호 칼리엔테와 라구나 네그라 같은 비옥한 땅에서는 옥수수, 콩, 밀같은 농작물을 키우면서 나름대로 풍요롭게 살아왔다. 이제 풍요를 주던 땅을 포기해야만 했다. 1만2천여 명에 달하는 나바호들의 생명을 지켜주던 비옥한 땅은 이제 백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또한 나바호들은 백인들이 주장하는대로 전부족이 공동으로 14,000 달러에 해당하는 가축을 뉴 멕시칸에게 변상해야만 했다.

나바호들은 그런대로 추가조항을 지키려 노력했다. 1859년 1월 초, 나바호들은 6,000 마리의 양을 14,000 달러에 해당하는 변상의 일부라고 요새로 몰고 왔다. 그리고 리오 그란디 근방에서 납치되었던 뉴 멕시칸도 풀어주었다. 그러나 어려서 납치되어 수십년간 나바호들과 살아온 포로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이들은 “이들은 내형제며 나의 친구다. 내가 자란 고향를 떠나 어디로 가란말이냐”하면서 나바호 땅과 부족을 떠나려 하지않았다. <계속>


new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