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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용의 기업열전] 세계인의 청량 음료 코카콜라 이야기- 코카콜라는 남북전쟁이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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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의 일상에서 우리는 수 없이 많은 과거를 접하게 됩니다. 지나간 세월이 누구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되고 또 귀중한 역사가 되겠지만 생활 속에서 만나는 역사를 보며 우리는 때로는 감동하고 때로는 가슴 아파합니다.

실제 우리가 마시는 한잔의 청량음료에도 마음 시린 사연이 침전되어 있고 한 모금의 담배연기, 식탁에 오르는 한 방울의 케첩에도 숨겨진 사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사용하는 비누를 들고 남북전쟁 당시의 병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사용하며 서부 대륙을 횡단하던 우편마차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5전짜리 주화에 새겨진 인디안 여인을 보며 미국의 서부진출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기업열전”에서는 일상의 생활속에 숨겨진 역사적 사실을  독자여러분과 나누려합니다. 많은 성원을 바랍니다. <이범용>


차타후치 강을 잇는 다리를 건너 북군 병사들이 까맣게 몰려왔다. 오후의 햇살은 유유히 흐르는 차타후치 강 물위로 물고기 비늘처럼 번쩍였다. 정오가 한창 지난 오후 2시경, 병사들과 함께 다리를 지키던 펨버튼 중령은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어들고 적군을 향해 튀어나갔다. 그를 따라 병사들도 단도를 꽂은 화승총을 치겨들고 북군을 향해 내달렸다. 알라바마쪽 강건너 북군 진영에서 쏘아대는 대포소리와 함께 이곳저곳에 화염이 치솟고 피아간 병사들의 비명은 매캐한 초연과 함께 강변에 가득했다.

앞장서서 적군을 향해 달리던 펨버튼 중령은 잠시 주춤했다. 아마도 적군의 총알은 그의 몸 어딘가를 가격한 듯 했다. 주춤거리는 펨버튼 중령을 향해 말을 탄 북군 병사가 칼을 내려치며 내달렸다. 펨버튼 중령도 순간 빼어든 칼로 적군의 칼을 막았다. “쨍그렁” 하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하늘에 튀었다. 칼을 휘두르던 적은 말과 함께 저만치 내달렸다가  다시 펨버튼 중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적군의 칼은 펨버튼 중령의 가슴과 배를 그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의 복부를 내리쳤다. 선홍색 핏방울이 하늘 가득 무지개 빛깔처럼 퍼질 때 펨버튼 중령은 비명과 함께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강변에 힘없이 몸을 뉘었다. 1865년 4월16일 일요일 부활절 축일날 오후였다. 복부에 맨 굵은 벨트 덕분에 천행으로 목숨을 건진 펨버튼 (John Stith Pemberton 1831.7.8~1888.8.16)중령은 이후 전상의 후유증을 모르핀으로 달래고 모르핀 중독에서 벗어나려 오늘날 세계인의 청량음료가 된 코카 콜라를 개발하게된다. 미국문화의 상징 코카콜라는 실은 남북전쟁이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이다.


약학대학때 약초학에 심취


펨버튼은 1831년 7월8일 조오지아의 작은 마을 녹스빌(Knoxville)에서 태어났다. 펨버튼은 고향 근방의 서던 버태닉스와 메콘에 있는 리펌메디칼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했다. 특히 서던 대학에 재학중일 때는 약초학을 깊이있게 공부했다.

1850년 19세에 약사면허를 받은 펨버튼은 이후 웨슬리안 대학생이던 클리포드(Ann Eliza Clifford)를 만난다. 두 사람은 1853년 결혼하여 1854년 유일한 혈육 차알스(Charles Ney Pemberton)를 둔다.

1855년 펨버튼 부부는 조금 큰 도시 조오지아의 컬럼부스로 이주한다. 펨버튼은 각종 의약품을 판매하여 많은 돈을 벌고 20에이커의 농장도 마련하여 옥수수, 감자, 사탕수수, 수박을 재배하면서 꿈같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1861년 남북전쟁의 회오리는 펨버튼 가정에도 몰아닥쳤다. 철저한 남부연맹 지지자인 펨버튼은 1862년 5월 지역방위군에 입대하여 중위로 임관한다. 펨버튼은 이어 컬럼부스에 있는 조선소의 노동자와 나이가 많아 정규군에서 제외된 병력을 추스려 펨버튼 기마대를 조직하고 중령 계급의 기마대장이 되어 컬럼부스를 지킨다.

  

남군에 입대 펨버튼 기마대장이 되다


5년간이나 계속된 전쟁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1865년 4월9일 남군의 버어지니아 북부지역사령관 리(Robert E. Lee) 장군이 북군에 항복한다. 조오지아 지역을 방어하던 남군의 콥(Howell Cobb) 소장은 북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정규군에서 제외된 주민 3,500 여명으로 차타후치 근방의 병기창이 있는 컬럼부스 방어군을 편성했다. 콥장군은 차타후치 강변에 참호와 엄폐물을 설치하고 병력을 길게 배치했다.

1865년 부활절날인 4월16일 일요일, 기마대장 펨버튼 중령은 대원들을 이끌고 다리를 건너 공격해오는 적들을 막으려고 강변에 마련한 참호속에서 적진을 살피고있었다. 

오후가 되자 북군의 윌슨(James H.Wilson)소장이 이끄는 병력은 차타후치 강을 건너 타일러 요새를 점거하고 남군과 격전을 벌이고 그날 밤 10시경 거의 완성중에 있는 전투함 잭슨 호를 건조중인 조선소가 있는 컬럼부스를 함락했다. 컬럼부스 전투는 남북전쟁 최후의 대규모전투였다. 


전상에서 회복 의약품 제조로 큰 돈 벌어


종전 후 펨버튼은 근 반년을 병상에 누워 상처를 치유했다. 다행히 1865년 11월 경 펨버튼은 일상에 복귀할 수가 있었다. 약사면허증을 소지한 펨버튼은 입대 전처럼 의약품 제조와 판매업에 뛰어들었다. 뉴욕으로 달려가 국내에서 제조한 신약은 물론 유럽에서 수입한 의약품을 구입하여 조오지아는 물론 남부일대에 판매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전상의 후유증인 통증에  시달리는 펨버튼은 다른 상이용사들처럼 몰핀으로 통증을 다스려야했다.

어느 정도 재력을 확보한 펨버튼은 실험실을 갖추고 신약개발에 열중했다. 그의 연구실겸 실험실은 한밤에도 불이 꺼지지않았다. 본래 약초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펨버튼은 이때 기침약 <Globe Flower Cough Syrup>, 혈액 정화제 <Extract of  Stillinga>, 향수 <Sweet Southern Bouquet>를 개발했다. 1800년대말은 식품의약청같은 기관이 없어 특허만 내면 의약품 제조가 가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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