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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용의 기업열전] 세계인의 청량 음료 코카콜라 이야기- 금주법으로 사라진 '백만장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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펨버튼이 특허를 받고 시판에 들어간 신제품들은   그런대로 성공을 보았다. 어느 정도 자본을 마련한 펨버튼은 가솔을 이끌고 애틀란타로 이주했다. 패전후 막 4년여가 지난 애틀란타는 온통 재건의 열기로 뜨거웠다. 일부 주민들은 큰돈을 찾아 이리저리 물결처럼 흘러다니고 기회를 찾지못한 주민들은 실의에 빠진 채 맥없이 거리를 헤매는등 온 도시가 혼란스러웠다.

펨버튼도 이 열기에 휩싸였다. 펨버튼은 동업자 ‘돈'( R.G.Dun)과 함께 시내 요지에 대형 의약품 도매상을 차렸다. 사업은 그런대로 성공이었다. 펨버튼은 스팀으로 엘리베이터가 가동되는 대형저택을 사들였다. 그러나 운영미숙으로 사업은 1872년 3년만에 파산했다. 그후 펨버튼은 다시 약품도매상을 운영하며 신약개발에 몰두하여 머리염색약 ‘인디안 퀸 헤어다이’, 류마치스 치료제 ‘프리스크립션 47-11’ 간장약 ‘트리프렉스’, 강장제음료수 ‘진저린’을 개발하는 등 그의 실험실은 밤새 불이 꺼지지않았다. 그가 개발하는 약들은 그런대로 팔려나가 펨버튼은 1879년 부채를 모두 털어버릴 수가 있었다.


남미 인디안 코카잎을 신령초로 존중

어느날 펨버튼은 남미의 안데스 산맥 주변 페루 와 볼리비아 인디안들이 줄긴다는 코카(COKA)나무잎에 관한 논문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인디안들이 즐겨 씹는 코카 잎에는 심신에 생기를 줄뿐만 아니라 소화기능을 돕고 감각기능을 흥분시키는 성분이 있다고했다.

실제로 안데스 산맥 주변에 사는 인디안들은 적은 양의 음식을 먹고도 코카 잎을 씹으며 높은 안데스 산맥을 지칠줄 모르고 오르내린다고했다. 안데스 산맥 주변 인디안들은 코카 나무를 “신령스런 나무”라고 부르며 부족의 주요 행사 때마다 이 나무를 중앙에 모셔놓고 치성을 드린다고했다.

1876년 펨버튼은 영국 의학협회장 크리스티손 경 (Sir Robert Christison)의 코카잎에 대한 체험기를 게재한 영국의학협회 저널에서 읽고 다시 한번 코카 나뭇잎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78세였던 크리스티손 경은 점심식사를 거른 채 코카 잎만 씹으며 3,224 피트 높이의 ‘보어리츠’산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등산도중 전혀 피로를 느끼지도 않고 시장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갈증조차 느끼지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 노의학자는 정상에서 내려와 4마일 거리의 집까지 단숨에 걸어갔다고 말하고 코카 나무 잎이야말로 생명에 원기와 기쁨을 주는 신령초라고 극찬했다.


코카나무 잎 연구에 몰두하는 펨버튼

이후 펨버튼은 코카 나무 잎에 대한 문헌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의깊게 읽어갔다. 당시 많은 의사나 약사들은 아편이나 몰핀  중독을 치료하는데 코카나 알카로이드, 코케인의 작용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다. 펨버튼도 자신의 몰핀중독을 나름대로 치료하기위해 더욱더 관심있게 코카잎의  작용에대해 연구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이미 1855년 코케인의 의학적 사용을 법적으로 금하였으나 미국에서는 이에대해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코카잎과 코케인의 탁월한 약리작용이 밝혀지자 코케인을 주성분으로 한 유사 의약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코카타블렛, 코카스프레이, 코카연고, 코카피하주사 등이 의약품 진열대를 차지하고 의사들도 이를 적극 권장했다. 그중에서 1863년 코카와 와인을 주제로 프랑스에서 개발된 코카와인 ‘빈 마리아니(VIN MARIANI)’는 세계를 평정했다.


세계를 평정한 코케인 성분의 빈 마리아니 

코르시카 출신 안젤로 마리아니(Angelo Mariani)는 프랑스에서 보르도 산 고급 와인에 코케인을 섞어 5온스짜리 빈 마리아니를 시판했다. 안젤로 마리아니는 와인 5온스에 6밀리그람의 코케인을 혼합했다. 이 와인을 마셔본 사람들은 “인생이 즐겁고 근심걱정을 잊게할 뿐만 아니라 진통효과까지 있는 만병통치약” 이라고 빈 마리아니를 극찬했다. 드디어 빈 마리아니는 영국으로 건너가 빅토리아 여왕의 총애를 받고 다시 이태리로 건너가 교황 루이 13세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빈 마리아니는 미국으로 건너가 당대의 유명한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 대문호 에밀 졸라를 거쳐 드디어 대통령 그랜트 장군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당시 그랜트 장군은 기도 암으로 고통중이었으나 빈 마리아니로 그런대로 통증을 다스렸다고 한다. 안젤로 마리아니는 수출품에는 코케인 양을 조금 늘려 7.2밀리그램의 코케인을 섞어 사용자들을 더욱더 자극했다. 안젤로 마리아니는 프랑스의 세느 강변에 공장을 세우고  유럽 유명도시에 지사를 세워 빈 마리아니를 공급하는가 하면 아프리카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동남아시아의 사이공에 만병통치약을 공급했다. 그리고 미국에는 뉴욕에 공장을 세워 처남 쥴리우스 자로스에게 운영하도록했다. 이후 후세의 사가들은 이 빈 마리아니를 코카콜라의 원조인 코카콜라의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빈 마리아니가 미국시장을 강타하자 그간 코카 나무 잎의 약리작용을 연구해오던 펨버튼은 빈 마리아니처럼 와인과ㅡ코카 잎을 주성분으로 한 제품을 생산하기로 했다.


남북전쟁 후유증으로 몰핀 수입량 급증

당시 미국에는 ‘아미 디지즈’라고 부를 정도로 남북전쟁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이들중에는 전투에서 직접 부상당한 전상병들이 있는가하면 일부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정신불안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많았다. 이들중 일부는 펨버튼 처럼 아편이나 몰핀에 중독되어 신음중이었다. 조사에 따르면 1860년대 말 145,000파운드이던 몰핀 수입량은 1880년대 중반에는 500,000파운드에 달한  것을 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다. 펨버튼은 또한 성직자나 과학자, 의사, 약사, 학자등 많은 정신노동자들도 과도한 긴장상태를 완화하기 위해 코케인 제품을 애용할 소비자로 보고 이제품을 개발하면 시장성이 있다고 보았다.

펨버튼은 빈 마리아니가 코케인을 주성분으로 한 것과 달리 달콤한 프랑스 산 와인에  코케인 이외에  콜라 넛(KOLA NUT)성분을 추가했다. 콜라넛은 아프리카 가나지방 부족들이 콜라넛 나무에서 추출하여 복용하는데 효과는 코케인과 것과 비슷하다고했다.

1884년 펨버튼이  개발한 프렌츠 와인 코카는 시장에 내놓자 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펨버튼은 제품 판매 일주일후 지역신문 애틀란타 데일리 저널에  다음과 같이 광고를 냈다.


프렌츠 와인 코카를 개발하여 대성공 

“888 펨버튼 의 코카 와인 토요일부터 판매개시! 코카 와인 복용후 인생의 기쁨을 확인.신비스런 토닉과 복용자의 경험담을 읽어보시라.”라는 제목과 함께 아래에는 “나는 오랜 세월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그러나 펨버튼 박사의 프렌츠 와인 코카를 마신 날부터 불면증은 사라졌다. 같은 증상으로 고생하던 나의 환자 20여명도 이 토닉을 마시고 완쾌했다.”라는 인근 조오지아의 버어만 마을의 개업의사의 경험담을 게재했다. 이후 사가들은 이 프렌츠 와인 코카를 코카 콜라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프렌츠 와인코카는 코카콜라의 아버지

프렌치 와인 코카는 값이 무려 1달러라는 고액이었으나 하루에 770병이 넘게 팔릴 정도로 인기였다. 펨버튼은 이 코카와인의 성공으로 곧 백만장자의 대열에 들어설 정도였다.(당시 쌀 1파운드는 10센트,설탕 1파운드도 10센트)

그러나 그의 행운은 잠시였다. 당시 미국 사회에는 알코홀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하여 종교계를 통해 금주운동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조오지아같은 남부사회는 이 운동이 격렬했다. 애틀란타의 변두리 시골마을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복음주의자 샘 존스 목사는 애틀란타에서 알코홀을 추방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조오지아주에서 알코홀을 영원히 추방하는 법률을 제정하지않는 의회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리고 애틀란타 시 의회 의원들의 태만도 성토했다. 샘 존스 목사의 이같은 압력으로 조오지아 주 의회는 1885년 11월25일 금주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펨버튼이 사는 애틀란타와 풀톤 카운티도 이법을 따르기로했다. 향냄새가 가득한 프랑스 고급와인에 심신에 활기를 주는 코케인과 코카넛을 넣어 불티듯 팔리던 펨버튼의 프렌츠 와인 코카는 이제 약국의 진열대에서 사라졌다. 그의 백만장자의 꿈도 사라졌다. 이제 펨버튼은 프렌츠 와인코카를 대신할 신제품을 찾아 다시 실험실의 불을 밝혀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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