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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악마의 길 250마일은 죽음의 길이었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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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암 바위틈에 빗물로 9개의 물 웅덩이가
키노 신부 일행이 목숨을 걸고 길을 들어 선 ‘악마의 길’은 옛부터 파파고 인디안이나 유마 인디안들이 교역을 위해 이용하던 험하고 척박한 길이다. 이길을 ‘악마의 길’이라고 부르기 전에는 토착민들이나 스페인 정착민들은 ‘죽음의  길’ (El Camino del  Muerto) 또는 소노라 트레일 (Sonora Trail), 소노이타 유마 트레일 (Sonoita Yuma Trail), 유마 카보르카 트레일 (Yuma Caborca Trail), 그리고 올드 유마 트레일 (Old Yuma Trail)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1870년 250마일에 이르는 남태평양 열차가 지나면서 악마의 길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끊기면서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는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간 ‘악마의 길’로만 기억되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 길을 처음 ‘악마의 길’이라고 부른 사람은 키노 신부라고 한다. 어느 기록에는 프란시스코 살라자르 (Francisco Salazar) 신부라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 신부에 대한 기록은 이름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악마의 길’은 카보르카에서 시작하여 완전 벗어나는데는 250마일, 그리고 극히 험준한 길은 티나하스 알타에서부터 130마일까지라고 한다.
‘악마의 길’ 남측 종점은 오늘날 멕시코 소노라 주의 카보르카 (Caborca)에 있다. 카보르카를 출발한 ‘악마의 길’은소노이타를 지나 퀴토바퀴토 스프링스 (Quitobaquito Springs) 그리고 시에라 피나카테 (Sierra Pinacate)의 용암층 벌판, 그리고 툴레사막 (Tule Desert)과 툴레산맥 (Tule Mountains )을 지난다. 그리고 토르디요 (Tordillo)산의 남측을 지나면 이 길은 티나하스 알타스 패스 근방을 통해 티나하스 알타스산맥을 가로지르기 전 티나하스 알타스의 빗물이 고인 물웅덩이를 지난다. 이곳에서부터 ‘악마의 길’은 유마 건널목이 있는 콜로라도 강에 이르기 전 힐라산맥과 서쪽 경계를 따라 ‘악마의 길’은 북서쪽으로 뻗어간다. 유마 건널목에서부터 ‘악마의 길’을 지나온 길손들은 콜로라도 사막을 건너 캘리포니아에 이를 수 있다.
 

황금도시를 찾던 디아즈가 최초로 횡단
뱀이 기어다니고 전갈이 나오고 도마뱀이 지나는 자갈투성이 ‘악마의 길’은 오랜 세월 이곳 토착민들이 이웃 부족과 교역하면서 종종 사용해온 험지였다. 토착민이 아닌 외지인이 이 길을 지나기는 1540년 7개의 황금도시를 찾아나선 바스퀘즈 코로나도의 부하 멜치오르 디아즈 (Melchior Diaz)가 보급선을 찾기위해 콜로라도 강변을 수색하면서 토착민의 안내로 이 길을 지난 것이 최초이다. 그리고 근 130년이 지나 키노 신부와 그의 경호대장 후앙 마테오 만히 (Juan Mateo Manje) 그리고 아담 길로 (Adam Gilo) 신부가 안내인의 안내로 1699년 2월 티나하스 알타스산 동편 가파른 화강암 사이를 흐르는 고인 빗물을 마시면 서 이 길을 지났다. 키노 신부가 이 길을 지나면서 이후 이주민들은 사나운 토착민들을 피해 바하 캘리포니아 (Baja California)를 돌아 콜로라도 강에 이르는 길을 단축할 수 있었다. ‘악마의 길’은 이후 1770년대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발을 디딘 후앙 보우티스타 디 안자 (Juan bautista de Anza)가 자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781년 콜로라도의 유마 건널목 근방의 퀘찬 (Quechan) 인디안 즉 유마 인디안들이 스페인 정착민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족들은 한때 ‘악마의 길’을 봉쇄하여 유럽의 이주민들이 ‘악마의 길’을 따라 캘리포니아에 이르는 것을 막기도 했다.  1853년 미국이 ‘악마의 길’ 일부지역을 멕시코로부터 사들이면서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이주자들이 이 길에 들어섰다가 갈증과 혹서에 의한 탈진으로 세상을 등지자 이 길은 자연 사람들이 기피하는 길이 되었다. 이 길을 지나간 어느 이주자는 ‘악마의 길’에 들어섰다가 불행하게 갈증과 탈진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수없이 늘어선 2,000여 개의 무덤과 탈색된 동물의 뼈를 보면 당시의 처참한 모습에 가슴이 저린다고 했다.
모두 250마일의 구간 중 가장 어려운 길은 멕시코의 소노이타 (Sonoyta)에서 아리조나의 유마에 이르는 130마일. 대부분 사망자들은 이 곳에서 탈수증과 탈진,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악마의 길’을 지나려면 1인당 최소 8리터의 물을 준비해야한다고 했다. 목숨을 잃은 길손들의 무덤은 유마에 이르는 30마일 지점에서 눈에 뜨이고 특히 티나하스 알타스 (Tinajas Altas)부근에는 65개의 무덤이 보인다고 했다. 정말 소름돋는 ‘악마의 길’이다.

갈증에 죽어간 2,000여 개의 무덤이 산재
정상에 있는 물웅덩이라는 의미의 티나하스 알타스 (Tinajas Altas)는 ‘악마의 길’을 지나는 길손에게는 생명수였다. 가파른 화강암 절벽 정상 부근에는 빗물이 냇물처럼 흘러내리면서 빗물이 고인 물 웅덩이 9개가 이어져 있었다. 이 9개의 물웅덩이에 있는 물을 모두 합하면 약 2만갤론. 7,600리이터였다. 그러나 날씨가 건조하거나 가뭄이면 물 웅덩이에는 모래가 켜켜히 쌓였다. 쌓인 모래를 파내려가면 가는 물줄기에서 물을 거둘 수 있었다. 여행객들은 찾아간 물 웅덩이에 물이 없거나 죽은 짐승으로 물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으면 근처 다른 물 웅덩이에서 물을 구했다. 그러나 오랜 가뭄으로 물 웅덩이에 더 이상 물이 없으면 갈증을 견디지 못한 길손은 덧없이 죽어야했다. 실제 1891년 미국 국경 측량대원은 티나하스 물웅덩이 근처에서 화강암 바위를 기어올라 물 웅덩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물을 찾다 사망한 세 사람의 광부를 발견했다. 사망한 3명의 광부는 물을 찾아 바위를 기어올라 물 웅덩이에 도착헀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물 웅덩이는 물이 마른 채 모래위에 낙엽만 쌓여있었다. 실망한 세 사람은 더  높은 바위에 있을 물 웅덩이를 향해 가파른 화강암 바위를 기어올랐다. 어느새 손가락과 손톱은 거친 바위로 인해 상처투성이에서 흐른 피로 범벅이되었다. 그러나 갈증에 시달리던 세 사람은 바위를 오르느라 기진맥진했다. 물 웅덩이 가까이까지 기어갔으나 탈진한 세 사람은 더 이상 물 웅덩이의  물을 마실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탈진한 광부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국경 측량대원이 이들을 발견했을 때 이들의 손가락은 바위를 기어오르느라 상처투성이였다. 물을 찾아 헤매다 죽은 길손들은 특히 티나하스 알타스 부근에 많았다. 혹자는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무덤만 65개에 달한다고 했다. 

2월중 ‘악마의 길’을 종단 힐라강에 이르다
다음 날 키노 신부 일행은 힐라 (Gila) 산맥을 끼고 북서쪽으로 계속 전진했다. 말과 짐을 실은 노새는 씹을 수 있는 풀 한 포기없는 황무지를 묵묵히 근 50여 마일을 산을 끼고 돌았다. 그리고 강물이 말라버려 온통 자갈투성이인 마른  강줄기에서 야영했다. 흐르는 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마른 강은 아니었다. 자갈 밑에 깔려있는 모래사이로 흐르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보였다. 모래를 조금 헤치자 금방 물이 고였다. 이곳은 남서쪽으로 길을 잡아 근 15마일 가량  거리에 있는 지금은 드립핑 스프링스 (Dripping Springs)로 알려진 웰톤 (Wellton)의 남서쪽이었다. 강바닥의 바위돌 오랜 세월   물살에 씻겨 대리석 모양으로 아름다운 바위사이의 고인 물은 성수를 담은 잔의 모양이었다. 키노 신부는 마른 강물사이를 비집고 나온 물 웅덩이를 ‘성수의 잔’이라고 불렀다. 이곳에서도 많은 산양들이 모래를 비집고 고인 물을 생명수로 삼아 목숨을 지탱하고 있었다. 다음날 일행은 북서쪽을 향해 20마일정도 전진하여 드디어 산페드로라고 불리우는 곳을 스쳐가는 힐라 (Gila)강에 도착했다. 이곳은 웰톤의 서쪽으로 힐라 강물은 힐라산맥에 이르기 전에 북쪽을 돌아 흘러갔다. 드디어 일행은 감히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악마의 길’을 넘는 대장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키노 신부와 일행은 대부분 유마 인디안과 그 부족사이에서 살아가는 완전히 외양과 언어가 다른 극소수의 피마 인디안을 볼 수 있었다. 유마 인디안들은 좋은 체격과 외양에 체격도 우람했다. 특히 여인네들은 균형잡힌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었다. 그리고 다른 인디안 부족과 달리 비교적 하얀 피부에 반듯한 의상을 갖추고 있었다. 키노 신부 일행은 불행하게도 나무와 풀이 시들은 2월달에 ‘악마의 길’을 지났다.
만약 꽃피는 4월이나 5월이였으면 잔인한 ‘악마의 길’ 주변에는 온갖 꽃들이 다투어  주위를 장식하는데.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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