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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투박 마을에 수비대 들어서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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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둔지선정 병력모집에 골몰하는 지사
수비대 신설에 따른 제반문제는 파리라 지사의 몫이 되었다. 우선 50명의 병력을 모집하고 수비대가 주둔할 최적의 장소를 선정해야 했다. 정착민의 안전과 보호는 물론 전략적으로 피마 인디안과 아파치를 제압하고 방어와 공격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보급품 조달에도 무리가  없어야했다. 신병모집은 비교적 무난하게 끝낼 수 있었다. 병사들은 폭도들과 실전경험이 있는 마을 의용군에서 선발했다. 수비대의 보호를 받지못하는 대부분 정착촌은 자체 의용대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 의용군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마을마다 다르지만 고작 월 1페소 정도. 신설 수비대가 병사를 모집하자 실전경험이 있는 많은 의용군들이 응모했다. 또한 피마 인디안 약탈로 집을 잃은 많은 젊은이들이 지원했다. 40명의 병력은 쉽게 모집했다. 나머지 10명의 병사도 북부 피마지역 오포데피 (Opedpi) 지방에서 쉽게 모집했다. 이들은 4월 1일자로 정식으로 병적에 올라 봉급을 수령하게 되었다. 초대 사령관은 예수회 발타사르 신부가 추천한 34세의 벨다레인 (Juan Tomas Beldarrain 1718~1759) 대위를 임명했다. 5월로 접어들 무렵 벌써 수비대 병력은 임시 수비대 사령부가 있는 산타아나 일대를  순찰했다.

아파치와 피마에 대항할 2개 분대 건의
수비대 주둔지 선정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보다 안전하게 보급품 조달을 위해 지형적으로 산이그나시오와 가깝고 산타아나 (Santa Ana)와도 소통에 무리가 없어야 했다. 북부 피메리아 알타에 익숙하지 못한 파리라 지사는 이 지방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개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파리라 지사는 4월 7일 루이스 사릭의 항복을 받아내고 투박에 아직도 주둔중인 카르피오 대위에게 의견을 구했다. 파리라 지사의 의중을 타진한 카르피오 대위는 3일 후인 10일 최전방을 누비며 살아온 역전의 용장들을 모임에 초대했다. 이들의 생생한 의견을 청취하여 파리라 지사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모임에는 아리바카에서 폰테스 중위와 연합하여 루이스 사릭을 격퇴한 우레아 (Urrea), 의용군 소위출신인 살라자르 (Joseph Ignacio Salazar), 투박 동쪽 산타리타 산에서 광산을 개발 했던 의용군 소위 출신 파딜라 (Francisco Xavier Padilla)와 그 외에 루이스 사릭과 혈전을 벌인 의용군 출신 올귄 (Antonio Olguin), 에스피노자, 병참장교 출신 로메로 (Ignacio Romero)가 모임에 참석했다. 카르피오 대위가 주재한 이번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전원 총독의 수비대 신설 목적이 무엇인가부터 알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두시간 여 계속된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파리라 지사가 북쪽 피메리아의 피마인들만 의식해서 수비대를 신설한다면 이것은 커다란 오산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파리라 지사는 피마인들보다 더 잔인한 아파치 부족을 주시해야한다고 했다.  
이들은 이번 수비대 신설을 통해 아파치와 피마인들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방어망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박을 예로 들면서 투박을 지키던 수비대가 이동하자 그 빈 자리를 보고 아파치가 쳐들어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살라자르등 회의 참석자들은 신설 수비대의 50명 병력을 10명 증원하여 60명으로 하자고 했다. 이를 30명씩 2개 분대로 나누어 한 분대는 산타아나 북서쪽 투포 (Tupo)에 두어 아파치를 견제하고 나머지 30명으로 구성된 분대는 투박에 두어 피마인들을 견제하면 어떠냐는 의견을 내었다. 두곳 모두 경작할 수 있는 기름진 땅과 가축을 기르기 좋은 초지와 물이 풍부한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참석자 전원은 만약 수비대를 신설한다면 수비대 주위를 높다란 흙벽돌 담으로 방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설 수비대에 흙벽돌 담은 필수 
4월 11일 카르피오 대위는 모임에 참석했던 역전의 노장들, 즉 원로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파리라 지사에게 보고했다. 파리라 지사는 더 많은 주위인사들의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다. 파리라 지사는 4월 19일 1720년부터 프런테라스 (Fronteras)요새에서 36년간 변방을 누빈 에스카란테 (Francisco Xavier de Escalante) 중위와 1726년부터 최변방 수비대를 지킨 모라가 (Joseph Moraga) 소위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에스카란테 중위는 투박은 스페인측 입장에서는 아파치들의 습격을 방어하는데 더 없이 중요한 요지라고 했다. 투박이 아파치들에게 뚫린 후 몇차례 내륙까지 아파치들이 밀려온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투박은 수비대 주둔에 최적지라고 했다. 에스카란테 중위는 예를 들어 호전적인 북부 피마인들을 방어하기에는 투포 (Tupo)에서 투박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다고 했다. 그러나 투박에 수비대가 들어서면 북부지역 피마인들이 서부지역을 비롯한 타 지역 피마인들과 연합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수비대 주위에 흙벽돌 방어벽은 필수라고했다.
모라가 소위는 10명의 병력을 추가로 충원한 후 60명의 병력을 30명씩 나누어 2개 분대로 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에스카란테 중위의 주장대로 투박이 전략상 요충지라고 말했다. 모라가는 투박이나 알타계곡에 분대를 세워 가축이나 재물을 약탈하는 아파치나 피마인들을 방어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는 약탈한 적들을 수비대를 통해 달아나지 못하게 제압해야한다고 했다. 또한 신설 수비대에 흙벽돌 담을 쌓을 것을 계속 주장했다.

선교원 사제들의 의견도 참작
파리라 지사는 주위에서 더 많은 조언을 구하기로했다. 우레스 (Ures) 선교원의 세델메이어 (Sedelmayr) 신부는 산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델 박의 투산이나 산타 카타리나에서 북쪽으로 12내지 15마일 지점이나 투부타마나 카보르카, 사릭 계곡중에서 어느 한 지점이 어떠냐고 했다. 가스파 스티거 (Gaspar Stiger) 신부는 수비대가 2개의 분대로 운영된다면 한 분대는 산타 카타리나 지역이나 투산이 적임지이고 나머지 하나는 오쿠카 (Ocuca)라고 답했다. 얼마 전 바버뀌버리 (Baboquiburi)의 폭도들과 일부 파파고 인디안들이 합세하여 산타크루즈 강 상류 정착민들 그리고 산루이스 계곡이나 구에바비 선교원의 가축을 약탈하자 스티거 신부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수시로 투박이나 구에바비 또는 인근 지역에 수비대가 주둔하여 약탈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5월 25일 세그레서 (Segresser) 신부는 수비대 2개가 세워진다면 1개는 투산의 북부 피마인들의 땅이나 그 아래 산타 카타리나 지역이 최적지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최적지는 사릭이나 근방 아리소나 (Arisona) 지역이라고 했다. 근 20여년간 투산의 산 하비에르 델 박에서 사목한 세그레서 신부는 투산에 수비대가 주둔하면 파파고 인디안들을 굴복시키고 강가의 인디안 부족인 피마인이나 아파치들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5월 25일까지 파리라 지사는 어느정도 주위의 원로들로부터 충분히 의견을 청취했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장고에 들어갔다. 일주일 후 파리라 지사의 결심은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이제 수비대 주둔지를 발표할 시간만 남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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