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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태산같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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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에 대한 반응
아브라함은 그가 처한 여러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었다. 그의 믿음은 확고했고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믿음이 항상 한결 같이 평온한 상태에 있지는 않았다. 믿음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계속 움직이고 이동하며 배가 암초에 부딪혀 부서지거나 물 속에 가라앉듯 뜻하지 않은 위기와 역경을 만나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오르고 내림을 반복한다. 거센 파도가 일류 항해사를 만든다. 파도와 풍랑과 싸워 이기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평범한 항해사의 수준을 뛰어 넘을 수 없다. 문제가 있어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필사적인 노력이 따르고 병에 걸려 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병에 관한한 의사 못지 않은 풍부한 지식을 갖게 되는 법이다. 도전과 응전이 역사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고난에 대한 반응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한 사람의 믿음을 완성하는 기본 동력이 된다.

믿음의 완성을 위해 도전과 응전을 필요로 하는 아브라함에게는 사도바울이 평생 자신을 괴롭히는 병을 몸에 달고 살았듯이 자기 몸에서 태어난 자식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었다. 그동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그는 86세가 되었고 10살 연하인 사라도 어느덧 76세의 나이가 되어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후사를 약속했지만 10년을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답답한 건 아브라함이나 사라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은 인내하고 기다리기를 원했지만 사라는 기다림을 포기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강구했다. 우리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빠른 길을 찾는 경향이 있다. 지름길을 택해 목적지에 빨리 갈 수 있다면 굳이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 길이 더 멀리 돌아가는 길이 되거나 아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잘못된 길이라면 어떻게 할까? 사탄은 바보같이 기다리지 말고 지름길을 선택하여 빨리 가라고 우리를 유혹한다. 참을성 없이 성급한 우리의 마음을 노리고 공격한다. 우리를 눈에 보이는 지름길이 결코 빠른 길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소식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뒤섞여 있다. 눈에 보이는 좋은 소식이 나쁜 소식일 수 있고 나쁜 소식이 오히려 좋은 소식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야 그 소식의 실체를 알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소식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사람이 동료에게 “오늘 나에게 기쁜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 데 어느 것을 먼저 들려줄까?”하고 물었다. “기쁜 소식은 내삼촌이 그렇게 집을 사라고 말해도 안 듣더니 마침내 드디어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는 거야. 그런데 나쁜 소식은 그동안 같이 골프치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통해서 집을 사기로 했다는 거야. 나에게 집을 안 사고 다른 사람에게 가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배신을 때리니 내가 말은 못하겠고 미치고 환장하겠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지?” 하나님의 말씀에는 듣기에 따라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뒤섞여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그 땅을 즉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한 뒤 돌아와 그 땅을 소유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정확히 말하면 가나안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 40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가나안 땅을 소유하는 건 기쁜 소식이지만 400년을 기다려야 하는 건 나쁜 소식이다.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하는 데 400년이라니?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100살을 넘기기가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400년은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기간이 아닌가? 내가 죽고 난 뒤 누가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될 지 모르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일 뿐이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 결과를 알 수 없고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는 건 아이러니 한 일이다.    

아브라함은 400년이라는 오랜 기다림을 필요로 하는 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우리의 생각과 계획을 뛰어 넘는다. 우리가 쉽게 하나님의 일을 예측할 수 없는 이유이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의 노예생활을 하도록 허락하셨을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나쁜 소식은 그들에게 약이 되는 좋은 소식이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기 때문에 목축업에 종사하던 그들은 고센 땅에 따로 거주하며 애굽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다. 그들은 길거리를 떠도는 나그네 신세를 떠나 애굽의 우산아래 있으면서 비바람을 피하며 외세의 침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를 가져왔다. 지금 눈에 보이는 나쁜 소식이 시간이 지나서 보니 나쁜 소식이 아니고 반대로 기쁜 소식이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있다. 어리석지만 시간이 지나야 뒤늦게 깨닫는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