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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부드러운 황금', 모피찾아 몰려든 유럽 열강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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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을 풍요롭게 하려는 인간의 본성은 먹구름 가득한 비바람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 닻을 올렸다. 입맛을 돋구는 한 줌의 후추와 계피같은 향신료를 찾아 1492년 크리스토퍼 컬럼부스는 안보이는 나라 지구 반대편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로 무모한 뱃길을 탔다. 
컬럼부스는 인도가 아닌 바하마나 큐바같은 남아메리카에서 향신료 대신 유럽인들이 ‘부드러운 황금’이라 부르는 비버모피를 들고 귀국했다. 그 이 후 유럽사회에는 지구 반대편 안보이는 나라 남아메리카에는 무진장 ‘부드러운 황금’ 비버모피가 널려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만해도 안보이는 나라 남아메리카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일명 ‘삯’이라고 부르는 비버모피의 윤택이 나는 털은 빼어나게 아름답고 방수와 보온력이 뛰어나 ‘부드러은 황금’이라고 부를만치 그 가치를 인정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비버모피 패션은 이후 전 유럽에 퍼져나갔다. 영국의 촬스 왕은 귀족들은 의무적으로 비버모피 모자를 착용하도록 법률로 공포했다.
이러한 모피를 제공하는 비버나 담비, 해달은 어느새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에서 씨가 말랐다. 드디어 러시아인들은 유럽의 상류층 인사의 탐욕을 충족시켜주려 비버모피를 찾아 알라스카로 향했다. 얼마간 세월이 흘렀다. 알라스카에서도 더 이상 쉽게 비버를 구하지못하자 사냥꾼들은 더 많은 사냥감을 찾아 북아메리카로 발길을 돌렸다. 비버 찾기에 혈안이 된 탐욕스런 러시아의 사냥꾼들은 캘리포니아를 가로막은 로키산맥을 넘나들며 아피치들과 모피와 장총을 주고받았다. 
16세기로 들어서며 북쪽 소노라 일대에는 장총으로 무장하고 약탈한 말을 탄 아파치들이 너른 평원 소노라 일대를 장악했다. 또한 캘리포니아로 가는 콜로라도 강 유역은 북쪽에서 커누를 타고 흘러온 북방계 인디안들이 유마 인디안과 연합하여 소노라  일대에 점처럼 흩어져사는 스페인 정착민을 괴롭혔다.

아파치와 모피와 장총을 주고받는 러시아인
뉴스페인의 북방 소노라에서 캘리포니아로 나가는 길목 콜로라도 강 유역은 오래전부터 아타파스칸 (Athapascan) 언어를 사용하는 캐나다의 북방 부족들이 추위를 피해 커누를 타거나 육상으로 따뜻한 남쪽지방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들은 스페인 정착민에 쫓겨 조금 남아있는 피마 인디안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이들이 떠난 빈자리를 북방에서 흘러온 아파치 부족들이 재빨리 차지했다. 아파치 부족들은 그간 피마 인디안들이 적대시하던 세리 (Seri)부족, 유마부족인 퀘찬 부족과 연합하여 뉴스페인이 점령한 소노라 일대를 휩쓸었다. 소노라 지역의 스페인 전방초소는 사라지고 사라진 초소주위를 기마대는 말을 타고 지나가는 지역이 되었다. 이 무렵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스페인 육상 탐험대는 무주공산 캘리포니아를 점령하려 남진하는 러시아인에 앞서 캘리포니아를 선점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바하 캘리포니아의 스페인 정착민들이 콜로라도 강 건너 알타 캘리포니아로 진출하려해도 콜로라도 일대를 장악한 아파치나 유마인들의 약탈로 자연 발길을 돌려야했다. 

러시아 사냥꾼에게 막혀버린 앵글로 이주민들
자칫하면 알타 캘리포니아조차 러시아의 식민지가 될 처지였다. 만약 러시아가 알타 캘리포니아를 손에 넣는다면 이는 유럽사회에 엄청난 지각변동이었다. 당시 로키산맥을 통해 캘리포니아로 진출한 러시아인들은 원주민 아파치들에게 가공할 신무기와 화약을 제공하고 대신 질 좋은 비버모피를 취했다. 러시아 인들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았다. 러시아인들의 작전으로 자연 알타 캘리포니아에는 스페인 정착민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도움으로 신무기로 무장한 콜로라도 강 일대의 인디안들은 스페인 정착민들을 남쪽으로 밀어냈다.
캘리포니아의 서쪽해안을 장악한 러시아인들은 서쪽해안을 통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려는 앵글로 아메리칸을 철저 하게 봉쇄했다. 당시 러시아인들의 캘리포니아 봉쇄로 누구도 캘리포니아에 진출한 탐험대에게 보급품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심지어 노다지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노다지꾼들은 뉴멕시코의 리오그란데를 지나거나 투산이나 마리코파에서 모자라는 양식을 해결하고 힐라강변의 피마인들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향신료 대신 모피를 들고 나타난 탐험가
세계의 지도를 바꾼 것은 식탁에 오르는 음식에 풍미를 더하는 한줌의 후추나 계피같은 향신료였다. 일찌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귀족출신 기사나 병사들은 유럽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식탁에 맛깔스런 맛을 내는 후추나 계피같은 향신료를 들고왔다. 자연 소금이나 꿀이 조미료의 전부였던 유럽인들은 향신료가 식탁에 오르자 열광했다. 또한 바다건 너 이스람 족인 무어인들에게 수 세기 점령당했던 이베리아 반도의 포루투칼이나 스페인 사람들은 이들과 어울려 살면서 점차 이들이 사용하는 향신료에 익숙했다. 그러나 이들이 기독교 세력에 쫓겨나면서 이베리아의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맛을 내는 향신료를 식탁에 올릴 수 없었다. 그나마 지중해나 홍해를 통해 조금씩 들여오던 향신료는 오스만 투르크가 1453년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틴노플을 점령하면서 지중해 일대를 봉쇄하자 이마저도 끊겼다. 그간 향신료에 길들여진 유럽인의 식탁은 참담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부드러운 황금’ 비버모피를 찾아 바다를 건너다
유럽인들의 식탁을 풍요롭게하기 위해  1492년 크리스토퍼  컬럼부스는 이사벨라 여왕의 후원으로 향신료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인도 등 동남아로 출발했다. 불행하게도 인도가 아닌 바하마 인근에 상륙한 컬럼부스는 향신료 대신 유럽 상류층이 애호하는 비버나 수달 등의 모피를 한아름 들고 귀국했다. 이때부터    ‘미지의 안보이는 땅’ 남아메리카에는 ‘부드러운 황금’ 비버모피를 찾는 탐욕스런 인간들이 돛을 올리고 집채만한  파도를 헤치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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