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부드러운 황금', 모피찾아 몰려든 유럽 열강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부드러운 황금’ 비버모피를 찾아 바다를 건너다
컬럼부스가 닻을 내린 바하마에는 유럽인들이 열광하는 모피를 가진 비버(Beaver)가 많이 서식했다. 비버는 흐르는 강물에 스스로 나뭇가지를 구해 댐을 짓고 물속에서 생활하는데 비버의 모피는 뛰어난 방수와 보온효과를 지녀 모두들 아꼈다. 비버의 털은 유난히 부드럽고 고와 유럽의 상류층 인사들에게는 신분을 상징하는 필수품같은 존재였다.
포루투칼의 모험가들은 새로 발명한 항법과 개량된 갤리선을 이용하여 향신료무역에 뛰어들었다. 1497년 바스코 다가마는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 후 후추 등 향신료 무역의 길을 텄다. 그 후 바스코 다가마는 20척의 선단을 꾸려 아예 향신료의 본고장 인도의 캘리컷 항구를 점령했다.
비버모피 제조기술은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당대 최고였다. 러시아의 유일 수출품이 비버 같은 동물의 모피였다. 그러나 전 대륙이 한대성 기후인 시베리아의 비버는 러시아인들의 남획으로 15세기경에 이미 고갈상태였다. 설상가상 북유럽의 스웨덴 등 여러나라들의 바이킹들이 선단을 꾸려 북극해를 비롯한 시베리아 연안의 비버를 싹쓸이하면서 비버 멸종에 한 몫했다.
비버 사냥에 혈안이 된 유럽의 탐욕자들
포루투칼과 스페인제국이 남아메리카에서 금과 은같은 지하의 노다지에 혈안이 되었을 때 네델란드나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미지의 땅 북아메리카에서 금과 은같은 노다지는 물론 유럽산보다 체구가 큰 비버사냥에 열을 올렸다. 특히 수출품의 대부분을 모피에 의존했던 러시아제국은 시베리아 대륙에 비버 등 사냥감이 줄어들자 극성스럽게 비버를 찾아 전 세계로 발길을 돌렸다. 그간 러시아의 사냥꾼들은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에서 비버 (beaver), 담비 (marten), 늑대 (wolf), 여우 (fox) , 다람쥐 (squirrel), 토키 (hare), 곰 (bear)같은 짐승을 사냥했다. 당시 시베리아까지 통치하게된 러시아제국은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북극 여우 (artic fox), 시라소니 (lynx), 검은 담비 (sable), 해달 (sea otter), 흰 담비 (stoat)를 무차별적으로 포획한 후 그 모피를 수출했다.
1623년 러시아에서는 검은 여우 모피한장이면 무려 40내지 50루불을 호가하는 50에이커 땅을 살 수 있었다.
별장 1채와 맞거래되는 검은 여우 모피 한장
농노 4인 가족의 1년 수입이 1 루불에도 미치지 못하던 시기를 감안하면 모피는 실로 ‘부드러운 황금’임이 분명했다. 이같은 ‘부드러운 황금’ 모피 한 장이면 멋진 별장이나 말 5마리, 소 10마리, 양 20마리를 구할 수 있었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노다지 취급받던 사냥감이 급감하자 러시아 당국은 새로운 사냥터 확보에 나섰다.
덴마크 태생 러시아인이며 러시아 해군인 비투스 베링 (Vitus Bering: 1681년 덴마크에서 태어나 1741년 12월 19일 괴혈병으로 베링섬에서 사망)은 1725년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로부터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이 연결되었는지 확인하라는 명을 받았다. 베링은 탐험끝에 시베리아 대륙 동쪽 끝 데즈네프 곶과 북아메리카 대륙의 프린스 오브 웨일즈 사이에 폭 85킬로미터의 해협을 발견했다. 베링은 이 해협을 자신의 이름을 빌려 베링해협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베링은 연면적1,717,854km2의 알래스카대륙을 발견했다. 알래스카의 내수면은 13.77%로 비버나 담비, 해달 등이 서식하는 ‘부드러운 황금’의 보고였다.
자신의 이름을 따 베링 해협으로 이름지어
베링은 1733년 표트르 1세 황제의 명을 받고 시베리아 연안 2차 탐험에 나섰다. 탐험을 시작한 지 7년만에 배 2척을 건조한 베링은 그 후 본격적인 탐험을 시작했다. 1741년 알래스카를 발견한 베링은 알래스카 일대를 탐험하고 비버와 해달 등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모피를 싣고 귀국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모험가들이 ‘부드러운 황금’ 비버모피를 차지하기위해 알라스카로 몰려들었다. 얼마 후 알래스카의 코디악 섬에는 정착 촌이 형성되고 모피 수출을 전담하는 무역소가 마련됐다. 사냥꾼들은 값비싼 비버나 담비 등 사냥에 능한 원주민 알류트 족에게 사냥을 시키고 일용품으로 답례했다.무리한 사냥으로 목표물의 개체수가 줄어들자 사냥꾼들은 원주민들에게 더 깊고 차가운 바다속에 들어가 해달이나 비버 등 목표물을 잡아오라고 강요하여 양측에는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2만5천명이 학살, 전염병으로 2천명으로
양측 사이의 전쟁으로 사냥꾼들은 저항하는 알류트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백설이 뒤덮힌 알래스카 너른 벌판에는 비버들이나 해달 등 사냥감이 흘린 붉은 피와 러시아 사냥꾼들의 공격으로 죽어간 알류트 원주민들의 흘린 피가 붉게 물들었다. 면역력이 전혀없는 알류트 등 원주민들은 사냥꾼들의 학살과 사냥꾼들이 전파한 전염병으로 속절없이 죽어갔다. 러시아의 사냥꾼들이 들어올 때 25,000여명이던 알류트 족들은 18세기 중반 2,000여명에 불과해 근 90%가 사라졌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