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틀링깃트 족의 저항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1에이커 당 2센트, 총 720만 달러로 미국이 사들여
이 전투에서 승리한 바라노프는 모피뿐만 아니라 목재, 광물의 독점권을 갖고 왕처럼 행세했다. 바라노프는 아메리카 대륙에 또하나의 식민지를 세우기 위해 원주민 탐험대를 태평양 연안을 따라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진출시켰다. 바라노프의 선발대는 캘리포니아의 북부인 소노마 카운티 로스 (Ross)강 하구에 요새를 세우고 오리건주,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했다. 러시아 정착민들은 일대에 포도나무 농장을 세우고 한 세월을 보냈다.
1819년 바라노프가 총독임기를 마치고 귀국길에 사망했다. 18세기 중반부터 비버와 담비 등 재화가 되는 모피의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자연 러시아 아메리카 공사는 쇠퇴기를 맞았다. 알래스카에 본부를 둔 러시아-아메리카는 알타 아메리카의 식민지를 다루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다. 또한 동토의 땅 알래스카에서는 생활의 기본이 되는 식량을 자급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황금도 멸종직전이었다.
1867년 황제 알렉산더는 이제는 계륵이 된 알래스카를 동생 콘스탄틴 대공의 제안대로 1에이커 당 2센트에 미국 앤드류 존슨 대통령에게 미화 720만 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1867년 10월18일 마침내 합중국 미국의회가 이를 승인하자 싯가 항구 언덕에는 러시아 제국의 깃발대신 성조기가 바람에 날렸다.
맑은 강물에 ‘부드러운 황금 ‘비버가 풍부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북쪽으로 104.7여 마일 거리의 소노마 카운티에는 115마일을 흐르는 긴 강을 옛부터 이곳 원주민들은 ‘동쪽으로 흐르는 강’ 이라고 불렀다. 이 강은 년간 160만 에이커 피트의 물을 태평양 바다로 흘러보내며 강변 1,425 sq.마일의 땅을 비옥한 옥토로 만들어 강을 끼고 사는 원주민들을 포근하게 감쌌다. 옛부터 강물은 유난히 맑아 모피가 부드럽고 고운 비버 (Beaver)인 ‘삵’이나 수달같은 ‘부드러운 황금’이 풍부해 근처 원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동쪽으로 흐른다는 이 강물은 캘리포니아에서 새크라멘토 다음으로 긴 강이었다. 어느 순간 동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불리우던 긴 강은 러시아 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2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러시안 리버’라고 불리우고있다.
소노마 카운티의 동쪽으로 흐르는 긴 강에 외지인들이 처음 들어선 것은 1524년. 태평양 연안 탐험에 나선 스페인 탐험가 후앙 로드리게즈 까브리요 (Juan Rodriguez Cabrillo)는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산디에이고에 족적을 남기고 샌프란시스코 만을 감싸는 연안을 지나 북쪽 연안을 탐험하고 돌아오는 도중 ‘동쪽으로 흐르는 강’ 하구를 통해 내륙으로 깊숙히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나 도중 까브리요 일행은 엄청난 태풍을 맞고 서둘러 태평양 바다로 빠져나가 몬트레이 해안에 기항했다.
‘동쪽으로 흐르는 강’ 슬라빅 리버로 개명
러시안-아메리카 회사의 고위간부로 소노마 일대 러시안 정착촌 개척자 이반 쿠스코프 (Ivan Kuskov)는 1812년 이 강을 슬라빅 리버라고 이름지었다. 슬라빅 리버는 지금은 미국인들에 의해 다시 러시안 리버가 되었다. 이곳에 처음 정착한 러시아인들은 원주민들이 ‘동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불리우는 이 강을 슬라브 여인이라는 의미의 슬라비안카 (Slavyanka)로 불렀으나 쿠스코프가 슬라빅 리버로 개명했다.
맑은 물이 흐르는 러시안 리버에는 연어가 풍부했다. 자연 연어를 먹이로 하는 비버나 담비, 수달 등의 어족이 넘쳐나 이 일대는 고운 ‘부드러운 황금’ 비버모피를 탐욕스럽게 추적하는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었다. 쿠스코프는 1809년 태평양 연안 탐험차 샌프란시스코에서 67.1마일 거리의 오늘의 산타로사 부근 보데가 만 (Bodega Bay)까지 탐험한 후 다시 ‘동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돌아가면서 비버 모피와 수달 가죽같은 값비싼 재화 2,000여 점을 러시아-아메리카 회사가 있는 알래스카의 싯가로 가져갔다. 러시아-아메리카의 바라노프 총독은 태평양 연안 일대에 무진장 널려있는 비버같은 ”부드러운 황금’을 차지하기위해 ‘동쪽으로 흐르는 강’ 주변에 정착촌을 마련하고 그 일대를 식민지화 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아메리카 회사는 미국측 선박과 합동으로 다량의 비버를 사냥했다. 자연 러시아 제국 내에도 태평양 일대에는 비버가 많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태평양 연안 질 좋은 비버 사냥터로 소문나
1829년 허드슨 베이 (Hudson Bay, co)회사의 맥리드 (McLead)는 보데가 (Bodega) 만에서 북쪽 연안에는 비버가 풍부해 원주민에게 별다른 보상없이 다량의 비버를 사냥했다고 기록했다. 또한 전설적인 사냥꾼 어윈 영 (Ewing Young)은 푸타 여울 (Putah Creek)을 지나 1831년 3월 멘도시노 카운티 해변에서 비버 서식처를 몰아쳐 질 좋고 덩치가 큰 값비싼 비버를 많이 잡았다고 기록했다. 어윈 영 일행은 다시 슬라빅 리버 제방에 야영장을 차리고 강물에 비버잡이 덫을 놓았다고 기록했다.
슬라빅 리버가 유럽에 처음 소개되기는 1817년 러시안-아메리카 회사가 해도를 작성하며 해도 속에 슬라빅 리버인 슬라비안카 강을 기재하고부터이다. 이어 스페인측은 1827년 슬라빅 리버를 산이그나시오 (San Ignacio) 강으로 기재했다. 이어 1843년 러시아의 로스 요새가 철수하자 스페인은 이 일대를 스페인 영토라고 선포하고 슬라빅 리버를 리오 그란데 (Rio Grande)라고 기재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