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태산같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54

천사는 그녀에게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이 말에는 2개의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것은 그녀의 과거와 관련된 질문이고 그녀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묻는 것은 미래와 관련된 질문이다. “너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너의 출발지와 최종 목적지는 어디이며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네가 정착해서 뼈를 묻어야 할 장소는 어디인가?”라고 천사는 그녀에게 물었다. 쉬운 질문처럼 들리지만 결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아리송한 질문에 그녀는 말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나는 내 여주인 사라를 피하여 도망하는 중입니다.”라고 첫번째 질문에만 짧게 대답했다. 그것은 그녀가 의도했던 대답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녀는 “나는 가나안에서 왔고 애굽으로 가는 중입니다. 애굽이 내가 가야 할최종 목적지입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사라와 자신의 관계를 언급했다. 왜 그랬을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여 몸은 자유를 얻었지만 정신은 오랫동안 애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예상태에 머물렀던 것처럼 그녀는 사라에게서 도망하여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사라의 지배아래 있었다. 60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이 뒤따라오는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감히 싸워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쉽게 무릎을 꿇는 나약함은 노예근성이 그들의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노예는 주인과 싸워 이길 수가 없다. 하갈은 노예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가련한 여인인가? 그러나 하갈이 사라의 노예였건 아니면 사라와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던 경쟁자였건 상관없이 사라와 맺은 관계는 그녀에게 독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약이 되었다.
그녀는 천사의 두번째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애굽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혼란에 빠져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천사는 몸과 마음이 따로 국밥처럼 서로 다른 곳으로 이끄는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그녀를 보고 사라에게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이 아니라 사라에게 돌아가라고 명령했을까? 사라와의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녀는 사라에게 돌아가야 했다. 도망간다고 해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든지 피할 방법이 없다면 정면돌파를 시도해야 한다. “사라에게 돌아가라. 그리고 그녀에게 복종하라” 천사는 너의 최종 목적지는 애굽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집이라고 그녀의 잠든 영혼을 깨웠다. 아브라함을 떠나서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찾을 수 없다.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축복의 통로인 아브라함에게 돌아가라. 가야할 최종목적지가 있다는 건 희망과 위로를 준다.
그녀가 아브라함의 자식을 낳고 쉽게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맺은 것은 축복이다. 이스마엘이 약속의 씨는 아니지만 그는 분명 아브라함의 혈통을 잇는 아브라함의 씨이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라는 우산 아래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게 할 것이다”라는 천사의 축복을 받고 그녀는 다시 사라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라 너의 씨라고 말한 것은 하갈의 자손을 강조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세가지 축복 중 그녀에게는 자손에 관한 축복이 주어졌다. 천사가 “하나님이 네 고통을 들으셨다”고 말하며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을 하갈에게 주었고 그 이름은 다시 아브라함에 의해 주어진다. 하갈로부터 천사와의 만남을 전해들은 아브라함은 천사의 명령에 순종했고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돌아보시는 분임을 깨닫고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생각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으로 인하여 괴로워할 때 하나님은 고통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돌아보시고 구원의 손길을 펴시지 않았던가?
사라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갈을 이용했던, 하갈이 애굽 사람이던, 이스마엘이 여종의 아들이던 관계없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다. 하나님은 하갈이 광야에서 고통받을 때 그녀를 구원하셨다. 그들은 죄를 짓고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신다. 그들은 하갈과의 극심한 갈등으로 인한 아픔과 고통을 감수해야 했고 온 집안이 혼란스러운 소용돌이에 휘말렸지만 이 일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더 높은 곳으로 믿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갈은 단순히 자식을 낳아주는 기계가 아니라 생명을 가진 인격체였다. 그들은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존중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과 용서를 기초로 하는 은혜의 공동체를 세워가려면 섬김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경험한 것은 축복이었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