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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태산같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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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뒤늦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나그네 중 한 명을 나의 주님이라고 불렀다. 영적인 눈이 열리자 그의 눈에 하나님의 존재가 포착되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의 집을 찾아오셔서 함께 식사하고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은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충격을 준다. 하늘 위에 계시는 줄 알았던 하나님이 직접 누군가를 찾아오신다는 게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 같이 듣고 말하고 행동을 하거나 움직이지 못한다. ‘튀르키예’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그곳에서 2년 가까이 생활한 사람이 현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믿는 알라 신은 듣거나 말을 하지 못해서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는데 당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즉각 응답받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치고 놀라워요.” 우리가 영적인 귀를 열고 귀를 기울이면 세미하고 나지막하지만 따뜻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고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로 지내며 극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해 신음하고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은 고통의 소리를 듣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시지 않았던가? 천국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듯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다.

방문의 목적나그네들은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은 사라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사라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수사학적 질문이었다.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아브라함은 사라가 장막에 있다고 얼버무렸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1년 뒤 사라가 아이를 낳을 것이다.”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말이 두번 반복된다. 이는 이 일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예정되어 반드시 일어날 일임을 입증한다. 사라는 장막 문 뒤에서 이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웃었다. 사라가 웃고 혼자 독백하는 말을 들으신 하나님은 웃지 않았다고 애써 부인하는 사라에게 네가 웃었다고 말씀하셨다. 사라의 웃음은 늙은 나이에 아이를 낳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고 미리 단정짓고 하나님을 완전히 믿고 신뢰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웃음이었다. 그것은 체념에서 나오는 일종의 허탈한 웃음이었다. 생리가 오래 전에 끊어져 공장 문을 닫은 지 오래 되었고 남편도 흘러가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 구실을 전혀 못하는데 무슨 수로 아이를 낳을 수 있지? 그녀는 자신에게 반문했다.

아브라함 당시에 사람들은 여자가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려면 2개의 지위와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이다. 결혼하여 자식이 없는 여자는 어머니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불행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자식을 낳는 일이 어디 쉬운가? 자기 삶에서 목숨을 걸고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어 하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아이를 가질 거라는 기쁜 소식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라에게 “하나님에게 가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하나님은 물으셨다. 
우리 눈에는 기적으로 보이는 많은 일들이 영적인 세계에서는 기적이 아니라 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보고 받아들이려면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한다. 1년 뒤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삭이 태어났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으로 사라의 웃음과 연관이 있다. 자식이 없어 고통받던 그들의 슬픔과 아픔은 이삭으로 인해 기쁨의 웃음이 되었다. 그들은 세상이 무너질 정도로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은 기쁨과 놀라움과 의심과 감사의 눈물이 뒤섞인 웃음이었다. 

세천사가 일어나 길을 떠나려고 하자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기 위해 함께 따라 나갔다. 하나님은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1년 후에아이가 태어날 거라는 기쁜 소식과 함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그를 찾아오셨다. 아이가 태어날 거라는 소식은 아브라함과 관계가 있지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 하나님은 왜 그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알려주시고자 했을까? 아브라함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친구로 불리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친구는 말못할 고민이나 비밀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함께 고민하고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시고 내 명령대로 행하는 자가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였고 선지자였다. 선지자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예측하고 내다보는 선견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메시지를 전하는 대변자이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