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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감사기도에 절대자는 '풍요의 땅' 신천지로 응답했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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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 누수로 예정보다 6일 늦은 8월 5일 출항
스피드웰과 메이플라워 두 척은 1620년 7월말 출항 예정이었다. 스피드웰 호의 누수부분 수리로 부득이 1620년 8월 5일 3,200마일 가없이 너른 바다 대서양으로 들어섰다. 스피드웰 호와 동행하는 메이플라워 호는 길이 100피트, 폭 20피트에 돛대 3개의 180톤급 선박이었다. 1607년 선장 크리스토퍼 존스 (Christopher Jones: c 1570-c1622)는 존스를 포함하여 4명의 공동출자로 이 화물선을구입했다. 메이플라워 호는 주로 프랑스에서 와인과 꼬냑, 식초, 소금 등을 영국으로 실어왔고 또한 영국산 옷감을 유럽 여러나라로 실어나른 화물선이었다. 1609년 메이플라워 호는 노르웨이의 트론드하임 항구에 영국산 공업제품을 싣고간 대신 목재, 생선등을 영국으로 실어왔다는기록이 남아있다. 시속은 고작 2마일이었다.
스피드웰 호는 네렐란드 라이던에서 활약중인 선장 블러섬(Blossom)이 모험가 상인그룹이 모금한 자금으로 구입했다. 스피드웰 호는 신대륙에 도착한 후 1년간 잡은 대구를 염장한 후 영국으로 들여올 계획이었다. 청교도 측은 메이플라워 호를 북버어지니아 회사의 주선으로 임대하고 임대료는 출항전 모험가상인그룹(Company of Merchant Adventure) 측에서 지불했다. 대신 메이플라워가 영국에 돌아올 때 신대륙의 진기한 물품을 한 배 가득 싣고오기로 했다. 메이플라워 호에는 모험가 상인연합에서 선발한 퇴역군인 출신 마일드 스탠리쉬도 있었다. 그는 이후 정착민들을 중심으로 자위대를 조직하여 포악한 원주민들로부터 정착민을 지켰다. 그는 이후 신대륙에서 군인으로 성공했다. 크리스토퍼 마린은 청교도들이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꿈을 찾아 신대륙으로 향하는 모험가 상인 45명을 이끌었다. 이들중에는 1611년경 세익스피어가 저술한 희극 ‘템페스트’의 모델이 된 스테판 홉킨스도 있었다. (*템페스트는 복수와 응징이 아닌 관용과 용서와 화해가 주내용을 이룬다.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밀라노의 군주. 그는 마술에 심취하여 정사를 외면하다 정권을 동생에게 빼았긴 후 딸과 함께 외국으로 추방된다. 마침 딸의 결혼식에는 동생과 공모하여 자신을 실각시킨 나폴리 군주도 참석한다. 나폴리 군주의 귀국길에 자신의 마술 영향권을 지나자 프로스페로는 마법으로 폭풍을 일으켜 나폴리 군주가 타고있던 배를 침몰시킨다. 그러나 프로스페로 군주는 나폴리 군주에게 복수와 응징대신 관용과 포용으로 서로 화해한다.)

3차례 누수로 스피드웰 호 운항을 포기
두 배는 사우스햄턴을 떠나 순풍을 타고 뱃길 100여마일을 항해했다. 얼마 후  스피드웰은 다시 누수가 발생했다. 부득이 두 배는 수리를 위해 데본 (Devon)의 다아트마우스 (Dartmouth)항구에 기항했다. 스피드웰 호의 누수부분을 수리한 후 두 배는 다시 대서양에 들어섰다. 얼마 후 영국 영토의 끝자락인 랜드 엔드 (LAND’s End)를 조금 못미쳐 다시 3번째 누수가 발생했다. 그러자 청교도 지도자들은 누수부분을 수리한 후 다시 다아트마우스에서150여 마일거리의  플리머스 (Plymouth)에 기항한 후 스피드웰의 대서양 횡단은 포기했다. 스피드웰에 승선했던 30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 호에 옮겨탔다. 30명의 청교도 중 11명이 항해를 포기하여 19명만이 메이플라워 호에 옮겨탔다. 플리마우스 스피드웰 호에 적재했던 양식과 장비 일체를 메이플라워 호에 옮겨실었다. 이로써 메이플라워 호에는 남성 78명 여성 24명 등 모두 102명이 승선했다. 102명의 승객 중 청교도는 35명. 나머지 67명은 신대륙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청교도들이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모험가 등 상인들이었다. 스피드웰 호는 이후 수리한 후 스피드웰을 구입한 블러섬에 의해 매각되었다. (*스피드웰은 선장 레이놀드가 대서양 횡단을 기피하여 고의로 배를 누수시켰다고 의심을 샀다.) 

102명의 승객 대서양 횡단 나서다
메이플라워 호가 다시 대서양횡단에 나선 것은 1620년 율리우스 달력으로 9월 6일. 오늘의 달력으로는 9월 16일이다. 스피드웰 호의 누수로 근 한달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하늘은 맑고 푸르고 먼 바다 수평선 너머에는 무리진 흰 구름떼가 어른거렸다. 마침 불어오는 순풍을 타고 메이플라워 호는 바다한 가운데로 흘러들었다. 1,600스퀘어 피트의 비좁은 선실에 102명의 승객은 포개어 자리했다. 남편은 아내를 껴안고 아내는 아이들을 또 껴안고 지낼만큼 선실은 비좁았다. 네델란드 라이던 항을 출항한 지 46일만에 대서양에 들어섰다. 스피드웰의 누수로 바다를 떠도는 사이 준비한 양식이 많이 축났다. 
벌써 계절은 9월. 그래도 대서양 한 복판에 들러어설 때까지 바다는 고요하고 3개의 돛대에 순풍을 가득 담은 메이플라워 호는 시속 2마일로 대서양을 가로질렀다. 그러나 메이플라워가 대서양 중심에 들어섰을 무렵 갑자기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그리고 뱃전을 두드리는 강풍에 세개의 돛이 비명을 내며 사납게 흔들렸다. 얼마후 검은 하늘은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로 변했다.

파도와 폭풍우로 낙엽처럼 떠돌다
굵은 빗줄기와 집채만한 파도가 갑판을 들이칠 때마다 낙엽처럼 떠도는 메이플라워 호 선실은 공포에 떠는 여인네와 어린 아이들의 비명, 공포에 떠는 남정네들의 신음으로 가득했다. 이러한 악천후는 며칠간 계속되었다. 파도가 들이치는 갑판은 돛대를 움켜진 선원들의 고함소리도 폭풍우에 묻혀 버린 채 오직 광란하는 파도와 선창을 두드리는 요란한 폭풍우 소리, 그리고 갑판을 두드리는 굵은 빗소리뿐이었다. 폭풍우 속에 하늘을 가르는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공포에 질린 갑판을 미친듯 달리는 선원의 모습이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번쩍’하고 번개가 갑판을 내려치자 돛대 3개 중 중심돛대인 가운데 돛대가 부러져 갑판에 굴렀다. 돛대가 번개를 맞은 것이다. 내려꽂는 엄청 큰 파도에 상갑판이 파손되었다. 마침 네델란드에서 승선한 청교도 승객들이 신천지에서 꿈같은 집을 지으려 준비한 연장으로 선원들은 부러진 돛대를 다시 연결했다. 그리고 깨진 갑판도 수리했다. 들이치는 파도에 메이플라워는 방향도 잃은 채 광란의 파도 속을 헤맸다. 메이플라워에는 승객과 각종 자재 이외에 신천지에서 키울 살아있는 개, 돼지, 양, 염소 그리고  닭, 오리같은 가축도 실려있었다. 노를 젖는 21피트 길이의 보우트 2대와 원주민의 공격에 대비해 몇 문의 대포와 다수의 화승총도 실려있었다. 화물칸에서 미친듯 날뛰는 개, 돼지, 염소와 닭, 거위.
메이플라워가 낙엽처럼 떠돌 때마다 화물칸에 매여있는 가축들도 미친 파도처럼 날뛰었다. 갑자기 들이친 파도에 의사 사뮤엘 풀러의 시종과 청교도 신자 여인이 파도에 휩쓸려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청교도 신자의 시종으로 메이플라워에 승선한 존 호우랜드(John Howland: c1593-1673.2.23)는 상갑판을 덮친  파도에 4미터 바다속으로 빠져들었으나 선원들이 던져준 밧줄을 잡고 구사일생 목숨을  구했다. 호우랜드는 초대 지도자 존 카아버의 비서로 일했다. 존 카아버 지사 부부가 1621년 사망하자 그들의 전 재산을 상속받았다. 존 호우랜드는 함께 대서양을 건넌 엘리자베스 타일리와 1623년 결혼했다. 
메이플라워가 한줌 낙엽처럼 떠돌 때 새생명이 태어났다. 스테판 피셔 (Stephen Fisher)와 에리자베스 피셔 사이에 사내아이가 탄생했다. 대서양 바다 한복판에서 태어났다하여 이름을 오세아누스 (Oceanus)라고 지었다. 미친듯 날뛰던 폭풍우와 파도가 잠잠해졌다.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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