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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북미주 지형을 바꾼 염장대구와 비버모피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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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찾은 유대인, 염장대구로 거액을 만지다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대륙에서 비버모피는 최고의 인기상품이었다. 특히 귀족 등 상류층에서 인기였다. 프랑스에서는 귀족이나 상류층은 마땅히 비버모피로 만든 모자를 착용해야 했다. 영국은 왕명으로 상류층 인사에게 비버모피로 만든 코트같은 의류를 착용토록 법령으로 정했다. 또한 비버가 짝짓기 철인 봄에 상대를 유혹하려 내는 강한 향기는 고급 향수의 재료나 약재로 사용됐다. 이처럼 귀한 비버모피를 찾아온 유대인들, 특히 상행위에 밝은 네델란드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은 비버모피를 찾아 강을 건너고 들을 달려 외딴 외지를 찾았다. 특히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유대인 추방때 네델란드를 찾은 유대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천지를 향하는 네델란드인에 편승했다. 이들은 이재술을 발휘하여 매사추세트 만에 가득한 대구를 염장한 후 유럽에 팔아 떼돈을 벌었다. 그리고 일부는 다시 비버모피를 찾아 당시 오지였던 펜실베이니아로 진출했다. 비버 사냥꾼들은 더 많은 비버잡이와 델라웨어 강 인근에 사는 원주민과 비버모피 교역을 하기위해 이처럼 먼거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다시 필라델피아에서 북상했다. 사냥꾼들 중에는 이재에 밝은 유대인들이 주를 이루어 이들은 이곳에 유대인 마을을 세웠다. 이미 북미대륙에는 프랑스, 네델란드, 영국, 스페인, 러시아 등 여러나라의 탐욕스런 사냥꾼들이 비버잡이를 위해 대륙을 누볐다.

윌리암 펜의 하사받은 숲은 펜실베니아가 되다
유대인을 따라 퀘이커 교도들도 펜실베니아(Pennsylvania)에 많이 몰려들었다. 특히 퀘이커 교도이며 해군 제독의 아들 윌리암 펜은 영국 찰스 2세에게 빌려준 상환금 대신 1681년 델라웨어 강변의 너른 땅을 하사받았다. 허드슨 만을 처음 찾은 헨리 허드슨은 1609년 필라델피아 만을 따라 델라웨어 강으로 들어섰다. 그의 탐험 보고에 따라 1615년 네델란드 탐험가 코르넬리우스 헨드릭슨은 델라웨어 강을 따라 올라와 오늘의 필라델피아에 정착했다. 이후 그를 따라 많은 네델란드 비버 사냥꾼들이 이곳에 정착했다. 1643년 한때 스웨덴인들이 인근에 식민지를 건설했으나 1655년 네델란드에 의해 모두 추방되었다. 다시 1664년 영국이 이곳을 점령했다. 
영국 해군 제독 윌리암 펜 (1621.4.23-1670.9.16)은 올리버 크롬웰 사망 후 왕정이 복구되면서 찰스 2세를 호위하여 망명지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같은  인연으로 윌리암 펜은 찰스왕에게 영국 해군 증강을 위해 무려 16,000파운드를 빌려주었다. 오늘의 가치로 3백만 파운드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그의 아들 윌리암 펜은 옥스포드 대학 출신으로 젊은 시절 퀘이커 교도가 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마침 찰스 국왕은 윌리암 펜에게 아버지에게 진 빚 16,000파운드 대신 펜실베니아의 델라웨어 강변의 너른 땅을 주었다. 그리고 그곳에 퀘이커 교도뿐아니라 국적 불문하고 누구든 종교의 자유를 누리도록 했다. 제독의 아들 윌리암 펜 (1644.10.14-1718.7.30)은 1682년 펜실베니아의 델라웨어 강 주변 46만 스퀘어 마일스의 거대한 땅을 변상받고 이곳을 종교의 자유가 넘치는 정착지로 바꾸었다. 그는 또한 델라웨어 원주민과 평화조약을 맺고 추장 타메벤스와  조가비구슬을 나누며 친교를 다졌다. 이후 윌리암 펜은 지명을 뉴 웨일즈 또는 ‘나무 숲’이라는 의미의 실베니아 (Sylvania)로 지으려 했으나 찰스 왕은 윌리암 펜의 ‘펜(Pen)’을 추가하여 펜실베니아가 탄생했다. 윌리암 펜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이민자를 모집했다. 많은 정착민들이 비버사냥과 종교자유를 위해 모여들어 1685년에는 무려 인구가 9천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탐욕스런 이주자들이 원주민의 땅을 차지하려 인디안들을 마구 살해하자 이에 환멸을 느낀 윌리암 펜은 1701년 고국으로 돌아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윌리암 펜과 그의 부인 한나 (Hannah)에게 명예시민권을 증정했다. 2010년 기준 미국정부가 외국시민에게 명예시민권을 증정한 인사는 영국의 전 수상 처칠(1963년)과  알바니아의 테레사 수녀 (1996년) 등 7명뿐. 명예시민권을 수여하려면 의회의 승인과 대통령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말린 대구로 한밑천 잡은 정착민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천지를 찾는 유럽인이 있는가하면 한 밑천하려는 탐욕스런 럽인도 많았다. 이들은 주로 ‘부드러운 황금’이라고 부르던 비버잡이나 큰 입을 가졌다는 대구잡이에 종사했다. 유대인이 많이 모여든 네델란드는 옛부터 포르투갈이나 피레네 산맥 근처 바스크 부족들처럼 대구를 즐겨잡고 먹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네델란드인이나 이곳에 정착한 유대인과 바스크 족들은 염장하여 건조시키는 기술이   발달하여 예부터 말린 대구를 즐겼다. 이들은 대구를 바다의 빵이라고 부르며 금식일이나 특별한 종교일에는 고기나 누룩이 든 빵을 금하기때문에 대구를 즐겨 찾았다. 또한 안식일에는 불을 피우거나 요리를 할 수 없어 전날 요리한 대구튀김을 즐겼다. 뉴네델란드가 있는 동북부와 매사츄세트의 케이프 코드 (Cape Cod)만에는 입이 커서 대구라 부르는 살이 실한 대구가 지천이었다. 바다에 고기가 너무 많아 배가 지나가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바다에 나가면 어부들은 그물대신 양동이로 대구를 퍼나를 정도였다. 이곳 대구는 크기가 1미터정도로 무게는 30킬로정도였다. 입이 큰 대구는 입을 벌린 채 물속을 헤엄치며 오징어, 새우, 꽁치같은  물고기를 닥치는대로 먹었다. 산란철인 12월에서 3월이 되면 바다에 알을 낳고 뿌린 허연 정액으로 바다는 흰색일 정도로 변했다. 양동이로 건져올린 대구는 소금에 절여 말린 후 먹기도하고 유럽으로 수출했다. 또한 대구잡이 어부들은 대구가 건조되는동안 하천이나 해변에서 조개를 주으면서 원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단검이나, 도끼, 주전자같은 생활용품과 비버모파를 교환하여 한 밑천 잡았다. 자연 이들도 수입이 좋은 모피사냥꾼이 되어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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