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10주만에 '악마의 길' 지나 LA 도착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1774년 2월8일 화요일 (출발 32일째)
날이 채 밝지않았다. 탐험대는 어둠이 완전 가시지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텐트를 거두었다. 해가 뜨자 떠나는 탐험대를 작은 무리의 유마인들이 뒤따랐다. 대원들은 힐라 강 제방을 따라 여울목까지 갔다. 그리고 여울목에서 노새 등에 실은 짐을 풀었다. 제1착으로 디 안자가 강을 건넜다. 대원들은 주위를 조심스레 경계했다. 그리고 디 안자는 누구도 의심할 필요가 없음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노새에서 내린 짐은 수백명의 유마인들이 등에 지고 앞서가는 팔마 추장을 따랐다. 오후 3시 힐라강 상류 콜로라도 강과 합류하는 지점을 건넜다. 그러나 이미 날이 어두워 일행은 콜로라도 강은 건너지 못했다. 그러자 현지 유마인 5, 6백 명의 남녀노소가 모여들어 여러가지 궁금한 것을 물었다. 디 안자는 모여든 유마인들을 줄세운 후 골고루 준비해간 유리구슬, 담배 등을 선물했다.
재난과의 희롱 : 10일간의 참혹한 여정 (1774년 2월9일~19일 10일간)
1774년 2월 9일 수요일 (출발 33일째)
새벽부터 호기심 어린 마을 주민으로 야영장 부근은 혼잡했다. 탐험대원들은 주민들을 헤집고 여울목으로 이동했다. 힐라강에서처럼 디 안자는 콜로라도 강을 건너며 주위에 보초를 세우고 경계했다. 6백여 명이 넘는 남녀 주민들이 소나 말, 노새 등 가축이 수심 3내지 4피트의 얕은 강물을 건너는 것을 도왔다. 강폭은 5백여 푸트였다. 노새는 짐을 진채 강을 건넜다. 대원들은 간신히 옷을 적시지않고 건널 수 있었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가르세 신부는 원주민 도움으로 강을 건넜다. 들판에는 싱그럽게 잘 자란 밀이며 옥수수, 콩이 풍성했다. 디 안자는 이곳 농부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여울목 하류의 비교적 높다란 제방에 야영장을 마련했다. 강물은 포플라 나무와 버드나무가 무성한 제방 사이를 도도히 흘렀다. 디 안자는 이곳을 푸에르토 디 라 콘셉숀 (Puerto de la Conception)이라고 이름지었다. 디 안자는 유마인들로부터 이곳에서부터 강 하구까지는 5일정도 걸리고 그곳에는 스페인 제국이 다듬은 바하 반도의 선교원에서부터 산디에이고까지 연결된 황제의 길이 있다는 이야기를 원주민들로부터 전해들었다.
1774년 2월10일 목요일부터 2월11일 금요일까지 (출발 34일부터 35일)
아침 일찍 장도에 올랐다. 몇몇 원주민이 앞장서자 이들을 따라 말이며 젖소, 그리고 짐실은 노새가 뒤를 따랐다. 길을 안내하는 원주민들은 가장 좋은 길을 골라 앞서 나아갔다. 그리고 탐험대원들과 가축들이 머물던 자리를 남은 주민들이 말끔하게 정리했다. 일행은 38마일가량 서북서 방향으로 나아가 맑은 물이 있고 목초가 넉넉한 산파블로(San Pablo)에 야영장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날 병사 한명이 손도끼와 창을 도둑맞았다. 동행한 팔마 추장은 아연 긴장했다. 원주민 사회에서는 이러한 연장과 무기는 마을의 공동자산이므로 자칫 도난당한 무기가 불화의 씨앗이 될 수 있기때문이다. 그러자 팔마 추장은 도난당한 물품은 되찾고 범인은 벌주겠다고 약속했다. 긴장속에서 전진하는 사이 뒤따르던 많은 원주민들은 점차 많던 호기심도 사라지고 또한 집에서 먼 거리까지 왔다고 생각했는지 많은 원주민이 되돌아갔다. 오후 늦게 일행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60여명의 유마인들들이 팔마 추장을 따르고 있었다. 일행은 이 마을에 야영장을 차렸다. 위급시 쉽게 서로 도울 수 있도록 텐트를 서로 가까이 차렸다. 그러나 며칠간 지금보다 20배는 많던 뒤따르던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가자 지금은 단촐해졌다. 이곳 주민들은 타지역 주민보다 약 5피트 3인치 정도로 키가 컸다. 또한 전신에 특히 얼굴에 짙은 문신을 즐겼다. 대부분 부끄러움 없이 전신을 노출시켰으나 남성만은 가렸다. 그리고 이들은 관개수로를 이용하여 밀이며 콩, 호박, 수박, 멜런을 실하게 재배했다. 이들은 유마 부족과 이웃해 사는 코자트 (Cajat) 부족이며 골프만의 120여마일 밖 하류에 살았다.
1774년 2월 12일 토요일 (출발 36일째)
일행은 너른 초원과 못이 군데군데 자리잡은 벌판을 지났다. 근방은 최근 내린 비로 초원이고 못이고 물이 풍성했다. 디 안자는 성인 올라야(Olaya)를 기려 이곳을 산타 올라야라고 이름지었다. 행군 중 디 안자는 만나는 주민들에게 유리구슬, 담배 등 원주민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나누어주었다. 그들로부터 대신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이들의 초대는 정중히 거절하고 대신 준비하는 야영장을 찾아오라고 했다.
이곳에서 팔마 추장은 탐험대원들과 마지막 밤을 함께 보냈다. 사실 팔마 추장은 디 안자와 그 일행을 충심으로 반겼고 디 안자도 예를 갖추어 팔마 추장을 존경하고 응대했다. 팔마 추장은 근 6일동안 탐험대를 안내했다. 탐험대와 생활하는 동안 팔마 추장은 디 안자, 그리고 가르세 신부 그리고 혼혈인이나 원주민 안내인의 입장을 진정으로 이해했다. 또한 디안자나 가르세 신부도 팔마 추장이나 원주민이 처한 입장을 이해했다. 사실 디 안자 사령관은 힐라 강이나 콜로라도 강을 건너는 것에 부담을 느꼈었다. 다행히 유마인들의 도움으로 별다른 사고없이 위험하다는 도강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이 지역을 아파치가 통제했다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사건이다. 이제 디 안자, 가르세 신부와 팔마 추장은 서로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이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