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악마의 길' 지나 '늘 푸른 겨울의 땅' LA 도착: 산타오라야에서 휴식 후 부대를 다시 짜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1774년 3월 9일 수요일부터 3월10일 목요일까지 (투박 출발 61일, 62일째)
오후가 되자 일행은세바스티안 (Sebasmtian) 연못이라고 이름지은 연못으로 향했다. 일행은 비교적 편한 길을 따라 15마일 정도 전진했다. 그리고 칠흑같은 어둠이 오기전 일행은 좋은 목초지에 가축들이 풀을 뜯게 풀어놓았다. 그러자 3마일 내지 4마일 가량 뻗어있는 긴 모래둔덕이 나왔다. 일행은 말에서 내려 사막을 걸었다. 사막의 검은 밤 은 유난히 별들이 총총했다. 눈물이 마구 흐를 정도로 슬프게도 별은 빛나게 별똥별은 떨어졌다. 새벽 1시경 일행은 초목이 유난히 잘 자란 늪지대에 도착했다. 염분으로 짭자름한 물은 쉬지않고 흘렀다. 디 안자는 이곳을 안내인 타라발의 노고를 기려 산세바스티안 (San Sebastian)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일대를 순례자인 Pregrino라고도 불렀다. 마침 근처 들판에는 원주민 임시거처가 있었다. 일단의 원주민들은 이동 천막에서 나와 탐험대를 보더니 무작정 달아났다. 디 안자 사령관은 달아나는 원주민 무리를 정지시키고 가져간 유리구슬이나 담배를 나누어주었다. 얼마후 안내인 타라발은 원주민중에서 한 여인을 데려왔다. 그리고 얼마후 몇 명의 남성과 지도자로 보이는 추장이 다가왔다. 타라발과 원주민들은 깊게 포옹하며 재회를 기뻐했다. 타라발이 모하비 사막을 지나 떠돌 때 목숨을 건져준 원주민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염분으로 농사가 불가능하자 산과 들에서 사냥으로 연명하는 코하트 부족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작은 머리에 약간은 검은 피부로 주로 나체로 생활했다. 대신 여인네들은 선인장에서 추출한 섬유로 허리 아래를 가렸다. 그러나 이들은 유마부족과는 앙숙이었다.
1774년 3월 11일 금요일부터 3월 14일 월요일까지 (투박 출발 63일부터 66일)
일행은 늦으막한 오후 물기로 촉촉한 너른 황야를 지났다. 겨우 3마일을 지나자 어둠이 몰려왔다. 일행은 축축한 땅에 야영장을 마련했다. 어둠 사이로 먼데서 짐승들 울음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려왔다. 다행스럽게 야영장 주위에는 가축들이 뜯을 수 있는 잡초들이 무성했다. 그러나 염분이 녹아든 잡초나 물을 마신 가축 2마리가 죽었다. 일행은 이곳에서 3일 거리에 바다가 있고 5일거리에는 스페인 정착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대해 디 안자 사령관은 그곳은 아마도 산디에이고 (San Diego)이거나 산 가브리엘 (San Gabriel)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날이 채 밝기 전에 일행은 야영장을 정리하고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보레고 (Borrego) 산줄기를 따라 걸었다. 산줄기는 거칠었다. 산 자락을 힙겹게 기어오르자 먼지가 하얗게 피어오르는 건조한 평지를 지났다. 그러자 농경지가 보이고 이어 물이 흐르는 작은 내를 건넜다. 이처럼 근 20여마일을 지난 이른 오후 일행은 제법 물줄기가 거센 보레고 계곡의 산펠리페 (San Felipe) 냇물을 디 안자는 산그레고리오 (San Gregorio)라고 지었다. 이곳에서 만난 코하트 인들은 자신들은 타 지역에서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탐험대가 원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타라발 안내인은 한발 앞서 원주민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에서 산디에이고 인들이 사냥할 때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타라발은 그들을 디 안자 사령관에게 데려왔다. 마침 물냄새를 맡은 노새가 흥분해서 소리를 내자 놀란 원주민들이 달아났다. 다음날 대원들은 노새를 비롯한 가축에게 넉넉하게 물을 마시고 맘껏 풀을 뜯게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3월 14일 월요일 새벽, 일행은 서-북-서쪽을 향해 작은 제방을 타고 발길을 옮겼다. 제방길은 점차 높아졌다. 근방은 온통 녹색으로 들판은 목초가 무성했다. 포도나무를 비롯한 잘 자란 야채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길게 늘어선 계곡의 제방에는 버드나무가 바람에 몸을 떨었다. 일주전에 비해 대원들은 지금 이같이 빼어난 전원을 지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제 대원들이나 노새나 가축도 갈증과 기아에 허덕였다는 사실은 먼 옛날의 꿈으로 여겼다. 이제 고난과 재앙의 시간은 지나갔다. 그리고 대원들은 목적지 산가브리엘 선교원이 가차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름 모를 작은 내를 건너며 일행은 20여마일을 다시 전진했다. 그리고 일행은 야영이 적합한 장소를 잡아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이곳을 산타카타리나 (Santa Catharina)라고 이름지었다. 이곳 원주민들의 언어는 타 지역 언어와 완전히 달랐다. 언어뿐만이 아니라 체형도 달랐다. 이들은 디 안자가 보아온 유마 부족이나 코하트 부족보다 왜소하고 약해보였다. 그리고 극소수만의 원주민이 활이나 화살을 소지하고 다녔다. 대신 이들은 전쟁이 나면 원주민 전사들이 사용한다는 뭉툭한 몽둥이를 들고 다녔다. 병사들은 원주민들이 먼 거리에서 적이나 짐승같은 목표물을 정조준하여 던지면 정확히 타격하여 상처를 준다고 했다. 병사들은 이들이 몽둥이를 던져 토키를 잡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또한 이곳 원주민도 코하트 부족처럼 병사들이 타는 말을 두려워했다.
1774년 3월 15일 화요일 (투박 출발 67일째)
날이 밝자 일행은 ‘졸졸’ 느리게 물이 흐르는 작은 냇물을 따라 북서쪽으로 접어들었다. 길을 따라 걸으며 일행은 근 200여명 가까운 원주민과 마주했다. 이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이 팔과 다리, 온 몸을 흔들며 의사소통을 했다. 일행은 좁다란 계곡을 따라 전진한 후 오늘의 카요트 계곡 (Coyote Canyon)을 지났다. 그리고 야트막한 바하캘리포니아 (Baja California) 산자락을 지났다. 며칠동안 좋은 풀과 맑은 물로 건강을 되찾은 가축들도 성큼성큼 산자락에 올랐다. 앞장서서 대원들을 인도하던 타라발이 갑자기 정지했다. 무언가 수상한 것이 전방에 나타났는지 타라발과 함께 있던 병사가 급히 수색조를 보냈다. 실은 타라발도, 함께있던 병사도 신경과민이었다. 일행은 뒤따르는 원주민과 함께 계곡을 지났다. 마침 길게 뻗은 소나무와 도토리 나무가 산비탈을 덮은 언덕이 나오자 멀리 하얀 눈이 뒤덮힌 높다란 산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이 얼마를 진행하자 흐르는 계곡물은 양쪽으로 나뉘어 흘렀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물줄기는 캘리포니아 만이 아니라 필립핀 바다라고 부르는 태평양으로 빠져든다고 했다. 마침 날이 어두워졌다. 일행은 디 안자 사령관이 이후 ‘산카를로스 길’ (El Puerto Real de San Carlos)이라고 이름 지은 곳에 야영장을 마련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