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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탐험을 끝내고 140일만에 투박에 들어서다, 산 가브리엘 선교원에 도착후 양식 구하려 산디에이고로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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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4년 3월 23일부터 4월 9일까지
500여 마일 밖, 이교도들의 땅에서 외딴 고도처럼 서있는 산가브리엘 선교원은 생각보다도 더 열악했다. 사제를 포함하여 선교원  안에 거주하는 몇 명 안되는 정착민과 일부 선교원 사람들은 하루 옥수수 토틸라 3장으로 겨우 허기를 달랬다. 24명의 병사와 통역과 안내인, 시종 등 50여명의 탐험대원과 노새, 말, 젖소같은 많은 가축이 선교원에 밀려들자 사제를 포함하여 선교원에 의탁해 생활 하던 주민들은 당장 밀려든 탐험대원들 뒷치닥거리에 당황했다. 갑작스런 방문객들에 대한 반가움과 기쁨도 잠시였다. 모자라는 식량에 전전긍긍하며 하루를 버티는 선교원 사람들은 언제나 바하 반도를 출발한 보급선을 기다리며 먼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이 이제는 일상이었다. 
선교원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 디 안자 사령관은 즉시 이에 대한 대응책을 서둘렀다. 마침 바하캘리포니아를 출발한 누에바 갈리시아라는 프리게이트 함이 많은 보급품을 싣고 산디에이고 수비대에 도착했다는 소식이다. 디 안자는 도착 다음날인 3월 23일 가르세 신부와 함께 산디에이고로 달려가 누에바 갈리시아 선장 페레즈를 만나 당장 부족한 양식을 청하기로 했다. 더 이상 산가브리엘 선교원 측에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서였다. 디 안자와 가르세 신부는 3월 24일 4명의 병사와 양식을 실어올 7마리의 노새를 몰고 산디에이고로 출발하기로 했다. 산가브리엘 선교원 측도 몬트레이 수비대에 의존하여 일용품을 구걸해 연명하는 입장은 마찬가지였다. 디 안자는 만약 산디에이고 측이나 누에바 갈리시아의 페레즈 선장이 양식지원을 거부한다면 일정량을 차용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출발하기 전날 3월 23일 밤 산가브리엘 일대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건너야할 강은 도도하게 흐르는 물줄기로 뗏목이나 말, 노새는 건널 수 없었다. 디 안자와 가르세 신부, 그리고 동행할 4명의 병사와 말과 노새는 수위가 낮아질 때까지 하루 더 선교원 측의 군 식구가 되었다. 일행은 하루 내내 선교원에 머물면서 무기를 손질했다.

1774년 3월 25일 금요일부터 3월 31일  목요일까지 (투박 출발 77일부터 83일)
이틀이 지나자 높아진 강물이 낮아졌다. 노새나 말이 어렵지않게 강을 건널 수 있자 가르세 신부는 4명의 병사들과 함께 3월 25일 산디에이고로 향했다. 가르세 신부는 산디에이고 수비대 사령관    페드로 파아저스 (Pedro Fages)와 누에바 갈리시아 프리게이트함 선장 돈 후앙 페레즈 (Don Juan Perez)에게 보내는 간절한 편지를 갖고 120마일 거리의 산디에이고로 출발했다. 가르세 신부는 ‘이번 알타캘리포니아 탐험은 왜 중요한가’를 설명한 디 안자 투박사령관의 친필 편지를 휴대했다. 또한 가르세 신부는 소노라의 부카렐리 지사가 탐험대의 위급시 인근지역의 스페인측 관료에게 긴급지원을 요청할 수있는 편지도 휴대했다. 디 안자 사령관이 왜 당초의 계힉을 바꾸어 가르세 신부와 동행하지 않았는지 정확한 내용은 어디에도 언급이  없다. 다만 이후의 행적으로 보아 되도록이면 가르세 신부와 마찰을 피하기위한 배려로 보인다. 가르세 신부 일행이 산디에이고로 출발하는 25일 날씨는 쾌청했다. 산가브리엘에 남은 대원들은 빈약한 배식에도 별다른 불평없이 지루하게 무기를 손질하며 하루를 보냈다.
가르세 신부 일행은 5일 후 3월 30일 산디에이고에 도착했다. 그러나 가르세 신부는 캘리포니아의 모든 선교원을 관장하는 후니페로 세라 신부를 방문하는 과정이나 후앙 페레즈 선장과의 면담, 수비대 사령관과의 대면 등은 일체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페레즈 선장은 대부분 화물을 몬트레이 수비대에 운송하기 때문에 디 안자가 요청한 모든 화물의 6분지 1 배분은 거절했다.

4월 1일  금요일
산디에이고로 간 7마리의 노새는 다행히 페레즈 선장의 배려로  9부쎌 (* 필자 주: 1부 쎌은 7리터나  8갤론)의 옥수수와 먹을 수 없는 마른 고기, 상당량의 밀가루, 콩 3부쎌을 싣고 산디에이고를 출발했다. 4명의 병사와 양식을 실은 7마리 노새는 4일 후인 4월 5일 산가브리엘 선교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가르세 신부는 식량을 싣고 돌아가는 7마리의 노새무리를 따르지 않았다. 가르세 신부는 세라 신부와 함께 오는  4월 5일 월요일 산가브리엘 선교원에 돌아오겠다고 병사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가르세 신부는 수요일까지 산가브리엘로 출발하지 않았다. 대신 가르세 신부는 예정보다 5일 늦은 4월 11일 탐험대가 있는 산가브리엘 선교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가르세 신부의 도착을 기다리던 디 안자 사령관은 가르세 신부가 도착하기 하루 앞선 4월 10일 몬트레이로 출발했다. 디 안자는 또한 콜로라도를 향해 출발한다는 가르세 신부에게 산디에이고로 돌아오라고 전령 2명을 뒤쫒게했다. 그리고 디 안자는  뒤쫒는 전령 2명에게 알타 수비대를 통해 부카렐리 지사에게 편지를 전하도록 했다. 그리고 디 안자는 지사에게 보내는 편지에 힐라 강과 콜로라도 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통해 돌아오겠다고 했다. 

4월 6일 수요일
가르세 신부와 세라 신부는 산디에이고를 출발하여 탐험대가 기다리는 산가브리엘 선교원으로 향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길은 질척거렸다. 건너야할 강이나 내는 수위가 높아 산가브리엘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5일이나 걸렸다. 가르세 신부와 세라 신부가 4월11일 산 가브리엘 선교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디 안자 사령관은 전날 몬트레이로 떠난 후였다. 디 안자는 가르세 신부의 늦은 도착으로 그가 회망하던 샌프란시스코 강물을 따라 콜로라도 강까지 이어졌다는 새로은 길을 찾을 수없어 매우 실망했다. 원주민들은 옛부터 샌프란시스코 강과 또 다른 거대한 강사이에는 호수가 있다고 전해졌다. 디 안자는 이 강줄기를 따라 콜로라도 강까지 이어지는 새길을  찾고자 했다. 
산가브리엘 선교원에 돌아온 가르세  신부, 페레즈 선장은 싣고 온 화물의 6분지1을 지원해달라는 디 안자 사령관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디아즈 신부에게 전했다. 콜로라도 강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해 디아즈 신부는 유순하게 가르세 신부의 제안에 동의했으나 나머지 병사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그리고 디 안자의 콜로라도강에 이르는 새길은 존재하지않는다고 단언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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