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타고난 최고의 싸움꾼 야곱 135

야곱이 집을 떠나 라반의 집에 머문 지 강산이 두번이나 바뀌는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고향에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식구들과 함께 도주하자 잃어버린 테라핌을 찾기위해 맹렬히 그의 뒤를 추격한 라반을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그동안 쌓였던 미움과 적대감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얽히고 설킨 실타래처럼 꼬여버려 손을 댈 수 없는 편견과 오해를 훌훌 털어버리기 위해 마음을 열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을 사과하고 용서함으로써 문제가 일단락되고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다. 그들은 서로 해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는 언약을 맺고 돌기둥을 세워 증거를 삼고 하나님에게 맹세했다. 그는 라반의 축복을 받고 헤어진 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가나안을 향해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진작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하란에 있는 가족들에게 두 번 다시 안 볼 사람처럼 휴대폰에서 전화번호와 생일까지 다 지워버린 후 미움과 증오를 남기고 떠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박수갈채는 받지 못해도 새로운 미래를 향해 희망을 품고 떠나는 길에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를 달고 갈수는 없지 않은가?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떻게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끝낼 것인가이다”라는 앤드류 매튜스의 명언처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인데 이왕이면 쿨하게 헤어져야 뒤끝이 남지 않고 새로운 사람들과 더 좋은 만남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쉽게 끊을 수 없는 특수한 관계이니 말이다.
그에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에서와의 관계였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 챈 그를 향한 에서의 악감정이 쉽게 누그러졌을 리가 없었다. 학교 폭력에 관한 드라마인 “더 글로리”는고등학교 때 학교폭력을 당한 주인공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자들을 대상으로 통쾌한 복수를 함으로써 많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해온 복수를 보는 것은 마치 갈증을 식히기 위해 냉장고에서 꺼낸 사이다를 쭉 들이켤 때처럼 시원함과 청량감을 주고 피해자를 응원함으로써 대리만족을 얻게 한다. 엘에이에서 만난 한 여자 집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김 집사는 오랫동안 카지노에서 딜러로 일했는데 어느 날 카지노에 놀러 온 손님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 손님은 후에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가 되었다. “왜 하필이면 카지노에서 일하는 천박한 여자와 결혼을 하느냐?”는 시집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사람은 결혼을 했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은 개인병원을 운영했지만 적자 상태였기 때문에 카지노에서 버는 돈으로 병원 렌트비와 생활비까지 떠맡아야 했다. 얼마 후 남편이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여의사와 바람이 났고 점점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임신하여 해산할 때가 되자남편이 나타나 유산을 강요하며 배를 걷어차고 폭력을 휘둘렀다. 날마다 계속되는 폭력에 시달리던 김 집사는 강제로 이혼을 당하고 집에서 쫓겨나 심한 불면증과 공황장애를 앓게 되었다. 복수할 마음으로 칼을 가지고 그를 찾아갈까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고 결국 마음에서 그를 놓아준 후에 비로소 평안을 되찾았다고 했다.
우리는 피해자인 에서를 응원하고 그의 통쾌한 복수에 박수를 보내야하는가? 정치권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벌어지는 복수는 끝없이 계속되는 악순환을 보여준다. 용서와 관용이 따르지 않는 복수는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라반과의 갈등을 통해 미움과 복수가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를 깨달었던 야곱은 에서의 입장을 생각하며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그간 시간이 지나면 점차 농도가 약해지고 뇌리에서 사라질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어쩌면 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에서와의 숙명적인 만남을 앞두고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가 가나안의 주인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반드시 에서라는 장애물을 통과해야만 했다. 눈 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계속 도망자 신세로 숨어사는 것은 자신의 성격상 용납할 수 없었다. 에서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회개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을 넘어 화해를 통한 관계의 회복으로 발전해야 한다. 예수님은 형제 간에 다툼이 있을 경우 제사를 드리기 전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고 가르치셨다. 진정한 회개는 깨어진 인간관계의 회복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과 다투거나 오해가 생기면 심기가 불편하고 마음에 앙금이 남아있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우리는 미움과 증오 그리고 피의 복수로 얼룩진 세상에서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다. 용서가 없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