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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탐험을 끝내고 140일만에 투박에 들어서다, 산 가브리엘 선교원에 도착후 양식 구하려 산디에이고로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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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4월 19일 화요일부터 5월 1일 일요일까지 (투박출발 102일부터 114일까지)
4월 22일 금요일 오후 일행은 현지인 안내인을 따라 동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살톤 바다 (Salton Sea)가 생긴 이래 저지대가 되어버린 황량하고 광활한 평원을 지났다. 가르세 신부는 확트인 평원을 바라보며 현 위치를 살폈다. 그리고 동남쪽에서 북서쪽으로 달리는 두개의 험준한 바위산 중에서 하나는 유마의 교차지점 가까이에서 시작되고 다른 하나는 일행이 지나온 왼쪽에 있던 산맥이 강 하구 근방까지 뻗어있음을 알았다. 
가르세 신부는 동쪽으로 뻗은 기세가 험한 바위산은 몬트레이까지 뻗어있는 것 같다고 기록했다. 가르세 신부와 일행은 12마일 가량 전진한 후 가르세 신부가 산안셀모 (San Anselmo)라고 부른 작은 연못 주위에 가축들의 먹이가 무성한 초원에 도착했다. 나이든 안내인은 이곳에서 야영할 것을 권했으나 어린 안내인의 반대로 일행은 다음날까지 계속 길을 달렸다. 대신 나이든 안내인은 전혀 거동을 거부했다. 그러자 한밤중 길을 나선 일행은 길을 잃고 물도 없는 초원에서 야영했다. 또한 어린 안내인조차 일행을 남겨둔 채 밤사이 사라졌다. 날이 밝자 일행은 상황이 심각함을 깨달았다. 가르세 신부는 탐험대를 위해 산 세바스티안과 라스 안구스티타스 (Las Angustias)사이에서 식수를 찾으려면 산 세바스티안으로 돌아가 새로운 안내인을 구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병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산가브리엘에서 얼마간 휴식을 취해 건강을 되찾은 가축이지만 또 다시 물도 없는 황폐한 사막을 헤맨다면 가축이 얼마나 견딜 지 모르겠다고 병사들이 반대할 것이 분명해 가르세 신부는 자신의 주장을 접었다. 안내인이 사라진 후 가르세 신부와 일행은 이틀간 식수도 없이 물을 찾아 헤맸다. 가르세 신부는 다음날 아침 2명의 병사를 보내 주위를 정찰했다.     
사막의 모래언덕을 넘어 달려간 병사들은 너른 황야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들은 저녘무렵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 5시 30분 가르세 신부와 병사들은 야영장을 정리하고 또 다시 지루한 길을 나섰다. 뜨거운 한낮이 오면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일행은 다음날 새벽 3시 반경 라스 안구스티아스에 도착했다. 그날은 무려 33마일을 달렸다.
다음날 일행은 포조스 디 라 알레그리아 (Pozos de la Alegria)와 엘 카리잘 (El carrizal), 로사리오 (El Rosario)를 향해 원주민들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방치된 길을 따라 달렸다. 한밤중 일행은 산타오라야 (Santa Olaya)에 도착했다. 
4월 25일 월요일 일행이 강과 좀 떨어진 곳에 있을 때 가르세 신부는 지니고 다니던 시계와 콤파스를 분실했다고 기록했다. 일행은 콜로라도 강과 힐라 강이 합치는 지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을 주민으로부터 지난 2월 유마에서 양식과 가축과 함께 남겨두고 간 과묵하고 진득한 병사 3명과 통역, 시종 등 동료들이 깊은 산속에 자리잡고 사는 코하트 (Cojat) 부족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엄청난 사고소식을 들었다. 
디 안자가 남겨두고간 3명의 병사는 필마 추장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디 안자가 병사들 중에서 특별히 선발한 병사들이었다. 가르세 신부와 일행은 소노라로 돌아갈 때까지 필요한 양식을 제외한 양식과 젖소같은 가축 16마리를 팔마 추장에게 기증했다. 가르세 신부의 이같은 처사는 디 안자 사령관이 도착하기도 전에 협의도 없이 처리되었다. 콜로라도 강과 힐라 강이 하나가 되는 지점에 가르세 신부와 일행이 나타나자 엄청난 주민들이 제방에 나와 먼 탐험길을 성공리에 마치고 제방에 나타난 가르세 신부 일행을 반겼다. 1774년 4월 26일이었다. 
가르세 신부는 ‘원주민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병사들을 신사적으로 다루며 기강을  잡고 사제들에게는 탐험대에게 평화와 성공을 이루도록 하느님께 경건한 마음을 갖도록 후원한 디 안자 사령관을 극구 칭송’하면서 그간 기록했던 탐험일지를 마감했다. 
유마 건널목에서 휴식을 취하며 디 안자 사령관의 도착을 기다리면서 가르세 신부는 계획했던 탐험을 성공리에 마치고 무사귀환했다는 소식과 자신의 일정을 세세히 기록한 일지를 연락원편에 알타수비대에 전달했다. 그리고 알타수비대를 통해 다시 자신의 안착 소식을 부카렐리 소노라 지사에게 전달토록 했다. 가르세 신부는 바닥난 식량을 시급히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가르세 신부가 알타 수비대와 부카렐리 지사에게 전령을 보낼 무렵, 디 안자 사령관은 북서쪽 300마일 밖 산타로사 강에 도착했다. 
4월 27일, 디 안자 사령관은 세라 신부와 함께 해협을 건너 북으로 난 길을 함께 지났다. 그리고 세라 신부의 요청으로 두 사람은 함께 지내면서 알타캘리포니아 원주민 사목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4일 후 디 안자 사령관은 다시 산가브리엘 선교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루 120마일가량 말을 달린 후 몬트레이와 산카를로스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디 안자와 동행한 병사들은 실제 3주간 근 7백 마일을 달렸다. 그리고 디 안자는 포톨라 캘리포니아 지사와 공병대위 겸 포톨라 지사 측근이었던 미구엘 코스탄소(Miguel Costanco: 1718-1814)가 개척한 소노라와 알타캘리포니아 간 황제의 길과 그간 일어난 원주민 사목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기록했다. 
미구엘 코스틴소는 지도제작 전문가 겸 공병대위로 일찌기 포톨라 지사의 캘리포니아 탐험대 일원으로 황제의 길 개척에 일조했다.        

<다음호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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