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타고난 최고의 싸움꾼 야곱 141

싸움의 달인인 야곱은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얻기 위해 싸우고, 그 흔한 여행이나 휴가 한번 가보지 못하고 인생의 길을 허겁지겁 달려왔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바쁘다’는 이름의 적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맥없이 무너졌다. 돌이켜보면 그는 무엇에 쫓기는 듯 항상 바쁘게 살았고 허리를 졸라매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재산을 늘리려고 애를 썼다.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사는 집을 방문하셨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부랴부랴 집안을 치우고 청소하고 요리를 했다. 이에 반해 마리아는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겉에서 보면 아무 일도 하지않고 놀고있는 사람보다 열심히 혼자 일하는 사람의 사정이 딱해 보인다. 마리아는 언니가 혼자 쩔쩔매는 걸 보고도 도와줄 생각을 안 하다니 너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인가?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고 그녀가 더 좋은 편을 선택하였다고 칭찬하셨다. 마르다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성경은 그녀가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했다고 표현한다. 헬라어 페리스파우마이Perispaoumai)는 마음이 흩어지고 여러 곳으로 분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넓은 그릇에 가득 담은 콩이 쏟아지면 콩이 바닥에 사방팔방으로 튀어 흩뜨려지듯 그녀의 마음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으면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 일의 목적과 본질을 잊어버리기 쉽다. 어떤 상황에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이다.
마르다는 마음이 분주해 그녀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자기를 돕지 않는 마리아를 보고 몹시 기분이 상해 울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동생을 경쟁상대로 의식하고 예수님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경쟁의식이 생기자 마음에서 평안과 기쁨이 사라졌다. 예수님은 음식을 대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영적인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그 집을 방문하셨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오해가 된다. 바쁘다는 말은 거룩함과 대조를 이룬다. 마르다에게 부족한 것은 거룩한 영성이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가진 문제들이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났다. 바쁜 상태가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휴대폰이 잠시라도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과연 휴대폰 없이 몇시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우리는 세상의 소리와 유혹에 귀를 막을 수 있는가? 여러가지 대신 중요한 한가지를 하는 편이 낫다고 마르다에게 충고하신 예수님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을 제쳐두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보내셨다. 그것은 영적인 충전의 시간이고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소명을 확인하고 삶의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이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소중한 메시지를 주었다. “아무리 바빠도 하던 일을 멈추고 쉬세요. 그리고 말씀을 들으세요! (Stop, Rest, Listen!)”
야곱은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온 삶에서 많은 구멍과 허점을 발견했다. 남는 것도 손에 잡힌 것도 없었다.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하는 돈 몇 푼때문에 아등바등 살아온 자신이 부끄러웠다.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원하고 국회의원은 둘째치고 마을 사람들을 대표하는 이장이나 시의원이라도 해보려는 욕심 때문에 한치의 양보도 없이 경쟁자들과 피 터지게 싸웠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한 싸움에 불과했다. 그는 정체불명의 존재와 밤새 씨름하면서 이 싸움이 결국 하나님과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에서나 라반이 자신을 괴롭히고 힘들게 한 주범이 아니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자기의 욕망을 쫓아 돌진하는 사람에게 무슨 기쁨과 평안이 있을까? 행복은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선물처럼 찾아오는 법이다. 그는 이기적인 나, 세상의 욕망으로 꽉 찬 나를 무너뜨리고 다시 일어서야 했다. 그는 자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정면으로 맞섰다. 세상에 태어날 때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매달린 것처럼 그는 하나님에게 매달렸지만 어쩌면 그는 탐욕으로 가득한 자신에게 매달려 그 탐욕의 혹을 떼어내려고 발버둥친 것인지 모른다. 그가 에서의 발꿈치를 잡은 것은 불리한 전세를 뒤집기 위한 최후의 공격 수단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에게 매달린 것은 공격이나 수비의 형태가 아니라 자신의 약함과 패배를 인정하고 숨이 넘어가는 절박한 상태에서 전심을 다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도우심을 구하는 처절한 기도였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