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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타고난 최고의 싸움꾼 야곱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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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수비를 한다고 했지만 예리하게 허점을 노리고 무섭게 파고드는 정체불명의 존재로부터 허벅지에 일격을 맞았다. 마치 총에 맞아 총알이 몸을 관통한 것처럼 엄청난 고통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사람이 이렇게 죽는 구나”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며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구급차에 실려가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큰 부상을 당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절뚝거리며 걸음을 걸을 수 없었지만 그는 남다른 끈기와 인내심으로    버텼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걱정이에요. 마음 만 먹으면 잘할 텐데”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머리가 좋은 게 자랑이 아니라 정말 독하게 마음먹고 끝까지 버티는 게 그 사람의 능력이다. 뛰어난 실력자는 성공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 요행을 바라지 않는 이상 쉽게 성공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자가 봄에 활짝 꽃을 피우는 법이다. 그는 인생 최대의 싸움에서 일격을 맞고 휘청거렸지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는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다”고 간청했다. 그는 왜 갑자기 싸우는 도중에 자신을 공격한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축복을 요구했을까?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그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존재와 싸우기를 중단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그는 싸움의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직감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찾아오신 것은 놀라운 기적이고 은혜의 선물이었다. 그는 복을 받기 위해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를 속였지만 더 이상 속임수가 아니라 합법적인 복을 받기를 원했다. 그는 물질적인 복이 아니라 영적인 복을 갈망했다. 돈이나 권력처럼 왔다가 어느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함께 동행하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었다. 아이러니컬하게 그가 마음을 비우고 패배를 인정했을 때 싸움의 승리자가 되었다. 그는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건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충격과 기쁨을 주었다. 그가 부상을 당해 다리를 절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셨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있어 질병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 질병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마찬가지로 야곱은 평생을 절뚝거리는 장애자로 살아야 했다. 그는 비록 육적으로 강함을 잃어버렸지만 영적으로 강한 자가 되었다. 그는 상처를 볼 때마다 그날 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난의 떡과 고난의 물을 주어 겸손하게 하시고 깊은 관계를 맺게 하신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새 이름은 새로운 정체성, 즉 아이덴터티에 관한 복이었다. 정체성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사람은 청년의 나이를 지나 중년으로 접어들면 자기 내면에 쌓인 정체성에 맞춰 살기 마련이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면에 형성된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나 먼저(Me first)”가 가장 적합한 말이다. 항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몸부림치며 투쟁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에게 새 정체성이 부여되었다. 새 정체성에 걸맞은 삶을 살려면 그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과 목적이 바뀌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이기는 자, 승리자,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의미이다. 성경은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고 이스라엘의 의미를 설명한다. 야곱은 “발 뒤꿈치를 잡는 자”라는 뜻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 또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라는 뜻이다. 그는 싸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야곱이라는 이름이 그랬듯이 새 이름에도 싸우는 자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는 여전히 싸우는 자의 신분을 유지하고 겉으로는 크게 바뀐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싸워야 할 싸움의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속이고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해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헛된 싸움이 아니라 탐욕으로 가득 찬 자신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거룩한 싸움을 싸우는 위대한 전사로 다시 태어났다. 이스라엘은 개인의 이름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칭하는 집단적인 개념의 이름이다. 이스라엘은 그의 분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한 개인에 머물러 있어야 할 작은 그릇이 아니었다. 그는 새 이름에 걸맞게 마음을 넓혀 이스라엘을 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세상을 품는 영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할 운명을 갖고 다시 태어났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