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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타고난 최고의 싸움꾼 야곱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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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스라엘은 예수룬(Yeshurun)이란 이름과 연관이 있는데 이는 야사르(Yashar)에서 왔고 야사르는 “일직선의, 똑바른(Straight)”이란 의미이다. 이 말에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구부러진 길을 걷지 않고 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이 세상에서 정도를 걷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철새처럼 권력을 따라 옮겨 다니며 여기저기 줄 대기에 바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려면 불이익이나 희생이 따르더라도 끝까지 자기 소신을 지키려는 확고한 의지와 믿음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로마서에는 인간의 죄에 대해 언급한다. 죄는 단순히 주어진 명령이나 법을 어긴 잘못된 행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못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것이 죄의 전부가 아니다.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는 우상숭배에 있다.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누구를 예배하고 섬기느냐 하는 예배 (Worship)가 가장 큰 문제이다. 죄는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피조물의 이미지로 바꾸는 우상숭배에 뿌리를 둔다. 결론적으로 죄는 단순히 하나님이 금지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새로 구입한 물건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우리는 즉시 반품조치를 한다. 인간이 인간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지 못하면 아무 쓸데가 없는 무용지물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도를 걷지 못하고 지도자인 모세가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절하고 하나님을 대신하는 신으로 섬겼다. 그러나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불의와 우상숭배로 인한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신실함을 보이셨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동일한 복을 받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축복의 약속을 주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 그를 부르신 목적은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 세계적인 한가족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언약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비롯되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도착하자 마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다. 그의 행위는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달랐다. 하나님은 그에게 기업의 유산을 약속하셨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세상의 상속자이고 그에게 속한 모든 믿는 자들이 세상을 기업의 유산으로 받는다고 기록한다. 창조의 목적과 계획을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창조의 프로젝트를 포기하거나 세상을 버리신 적이 없다.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들을 보내셨고 그를 통해 새 창조를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죽으면 천국으로 서둘러 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신앙생활을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는 이 세상이고, 중요한 시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며, 중요한 사람은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다. 그러나 에덴동산은 딱히 해야 할 일이 없이 배고프면 과일을 따 먹고 졸리면 아무 곳에나 누워 잠자며 게임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무료하고 지루한 장소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책임자로 아담을 임명하셨다. 에덴동산을 세상 끝까지 확대하여 세상 전체가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하라는 소명을 주셨다. 소명은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의미와 이유를 주고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한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에덴 동산에서 해고되어 쫓겨났다. 그 후 세상은 죄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악해지고 멸망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홍수로 인한 심판에도 세상은 여전히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아담과 동일한 임무를 주어 세상의 구원을 위한 통로가 되게 하셨다. 그 후 동일한 임무가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임무수행에 실패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통해 임무를 완수하게 하셨다. 구원은 결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나 탈출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구원을 의미한다. 구원의 목적은 인간 본연의 기능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새 창조의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여 세상의 구원을 위해 헌신하도록 하는데 있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의 언약(Covenant of vocation)이다.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과 함께 소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야곱으로 불리었다. 새 이름이 그의 이름이 되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숙성과정을 거쳐 명품 포도주가 완성되는 것처럼 마음 속에 널려 있는 쓰레기와 오물을 치우고 거룩한 영성으로 채우는 인고의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