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타고난 최고의 싸움꾼 야곱 145

소설가 김형경은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라는 부재가 붙은 소설 “남자를 위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fight or flight)는 경쟁을 기본 원칙으로 살아가는 남자들이 중요하게 사용하는 생존법이다. 딱 봐서 상대가 만만해 보이면 한판 붙고, 게임이 안된다 싶으면 재빨리 도망쳤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인간 유전자는 그 방식을 최고의 생존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내가 잘 하는 것 중의 하나.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내 생각은 싸우는 것 자체를 못 하는 남자들이 많다는 거다. 싸워봐야 도망쳐야 할 상대도 잘 본다. 싸울 만하면 싸우는 거고, 그러다 깨지고, 멍든 거 아물 때쯤이면 또 싸워보고 그러면서 피할 상대도 알게 된다.” 야곱은 ‘싸우거나 도망치거나’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과 밤새 씨름했던 것처럼 그 자리에 꼼짝않고 서서 불리한 경우에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버티기로 작정했다. 에서가 심한 욕설을 하면 말없이 듣고, 때리면 맞고, 수갑을 채워 연행하려고 하면 속옷차림으로 바닥에 드러누워 완강하게 저항하기 보다 순순히 따라가 밤새도록 심문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남자답게 행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에서가 다가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앞으로 나가 에서의 면전에 섰다. 입바른 소리를 하거나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고 호들갑을 떨며 비위를 맞추는 것은 생리에 맞지 않았다. 더 이상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상대에게 절을 하는 것은 항복을 의미한다는 걸 알면서도 미안하다는 말대신 에서에게 바짝 엎드려 큰 절을 7번이나 했다.
그는 에서를 만나기 전 사람들을 시켜 고가의 선물을 미리 전달했다. 그러니 그것은 단순히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한 뇌물성의 선물이 아니었다. 이권사업을 따내기 위한 뇌물이건 또는 상대방을 내편으로 만들기 위한 선물이건 야곱은 상대방에게 선물을 준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의 것을 가로채기에 익숙한 그는 자기 것을 남에게 주는 데는 극도로 인색했다. 그런 그가 에서에게 준 고가의 선물에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사과와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돈이나 고가의 귀중품보다 인간관계, 특히 형제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더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걸 깨달었다. 그는 선물을 고사하고 받지 않으려는 에서에게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풀고 많은 소유를 주셨다고 말하면서 의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다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에서를 위해 복을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33장11절에서 그는 “내가 형님께 드리는 복을 받으소서”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에서를 형으로 불렀다. 그가 에서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그가 가로챈 복을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가로챈 복을 돌려주고 에서가 이를 흔쾌하게 받아들일 때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 에서는 몇 번을 고사하다가 강권에 못 이겨 그가 주는 복을 받았다. 에서는 조급하고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그동안 그는 몰라볼 정도로 성숙하고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가 몸을 바짝 낮추고 땅에 엎드려 에서에게 7번 절을 한 것 역시 아버지에게 받은 복을 되돌려주는 복의 역전을 상징한다. 우리는 상대방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과를 받고 없던 일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상대방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하는 것이 문제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한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본다. 행동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진심으로 사고했다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에서를 발톱에 낀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형제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는 에서를 “나의 주님, 나의 형제”로 불렀다. 그는 진심으로 에서와 화해하여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했다. 이에 대한 에서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오랫동안 복수를 꿈꾸며 그를 추격했던 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달려와서 반갑게 그를 맞았다. 가족이 남북으로 흩어져 어디에 사는 지도 모르고 가슴앓이를 하며 잃어버린 30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이산가족이 극적으로 상봉하여 서로 끌어안고 펑펑 솟구치는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하는 것처럼 에서는 야곱을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에서에게는 돌아온 탕자를 보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맨 발로 뛰어나가 그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 아버지의 진솔함이 보였다. 에서는 야곱을 나의 원수가 아니라 나의 형제라고 불렀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뒤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겸손과 긍휼함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과연 야곱을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에서도 야곱처럼 하나님을 만나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을까?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