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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타고난 최고의 싸움꾼 야곱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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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대녕씨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중요한 건 나를 바라보는 거지요.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미련, 환상, 욕심과 욕망 등등 말이지요. 그게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더 집착하는 사람도 있어요. 노탐, 노욕이라고들 하지요. 얼마나 추합니까? 마치 간경화증 환자처럼 장기가 돌처럼 굳어져 버린 것처럼, 그리고 죽음을 생각합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갈만큼 큰 사건을 경험하지 않는 한 세월을 비껴가듯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동안 에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불같이 화를 내는 급한 성격이 많이 누그러져 한층 더 점잖고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에서는 야곱을 보자마자 달려와서 그와 입맞추고 울었다. 야곱을 죽이려는 살의나 원한 같은 복수의 감정은 그에게서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리브가가 그를 라반의 집으로 보내며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고 했던 말이 예언처럼 다가왔다. 야곱이 보낸 ‘반 클리프’ 목걸이 등 고가의 뇌물성 선물을 받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모르지만 에서는 외삼촌 라반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가 야곱을 보고 얼싸안고 입을 맞추고 흘린 눈물은 분명 화해의 눈물이었고 그는 관계회복에 진심이었다. 

에서는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고 말했다. 그는 야곱을 형제로 인정했고 네가 땀 흘려 쌓은 재산에 손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내게 있는 것이 충분하다(I have enough)”는 말은 자신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장자의 명분도 내어 주어 무일푼으로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살 거라고 예상했는지 모르지만 자신은 나름대로 부족한 것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이나 도우심이 없어도 자기 힘으로 충분히 잘 살고 있다는 말은 그다지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고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것을 반증한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지만 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았다. 야곱은 에서와 대화하는 동안 하나님을 3번이나 언급했지만 에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후회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른다. 그는 세상에서 돈 잘 벌고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만약 야곱이 지금 세상에 태어나 하이테크 분야에 몸을 담았다면 AI 인공지능의 시대를 개척한 천재들과 견줄만한 뛰어난 성취를 이루어 내고 돈 방석 위에 앉아 가장 돈 많은 10명의 부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 자신이 가진 천재성의 재능이나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티는 끈기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배웠다. 이에 반해 에서는 영적인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거나 알아차릴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렸다.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할 것인가에 관한 삶의 방식의 차이가 이렇게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만들었다.

야곱은 창33장10절에 “내가 형님의 얼굴을 보니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에서를 만나 화해하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높은 순위에 있는 인생 최대의 목표였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은 목숨을 잃어버릴 각오를 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하나님을 대면해서 보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에서의 얼굴을 보는 것 역시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는 하나님과 밤새 씨름한 뒤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지 않은 것에 대한 깊은 감사의 고백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에서의 얼굴을 보았지만 생명을 보전했다. 에서가 아무 조건 없이 그를 받아준 것에 대해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것처럼 감사했다. 형제와 화목한 것이 곧 하나님과 화목한 것이라는 걸 깨달었다. 에서는 “우리가 함께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가나안 밖에 있는 ‘세일’로 이동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그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고 먼 길을 오지 않았던가? 만약 에서와 함께 세일로 이동하여 그곳에 머문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아무리 에서와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길을 걷지 않는 그와 타협하여 가나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에서의 제안을 단 칼에 거부하면 가까스로 봉합된 관계가 굳기도 전에 깨져버려 산산조각이 날 것이 분명했다. 이럴수록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